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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퀸콩 Nov 13. 2023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어려운 이유

내가 괜찮으면 된다



나의 관점에서 아이를 키우기 힘들다는 지점은 오래 참고 기다려주는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사회적 규범과 규칙을 가정에서 잘 가르치고 어떤 것은 이해를 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유 없이 그냥 해야 하는 행동들을 좋은 습관으로 만들어주고 일상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쳐 주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를 하고 이를 닦고 옷을 갈아입히는 것이 왜 힘들까?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데 하기 싫다고 고집을 부리고 떼를 쓴다. 이때부터 육아는 힘들어진다.  


이런 일들의 것을 어떻게 얼마나 받아주느냐에 따라 정말 많은 결과들이 생기는 것 같다. 허용적인 부모와 엄격한 부모 두 가지로 나눈다면 나는 엄격한 부모에 속하는 것 같다. 사실 이중에서도 나는 지나치게 엄격한 엄마이다.


모든 부분에서는 아니지만 가만히 돌이켜 보면 나는 정해진 규칙과 약속을 지키지 않는 지점에서 지나치게 분노를 하게 된다. 아이와 학업적인 부분에서 가장 많이 힘든 지점은 바로 숙제이다. 숙제는 약속이다. 선생님 그리고 나와의 약속이고 따라야 하는 규칙이고 하기 싫음에도 불구하고 참고해야만 하는 시간을 알게 해주는 숙제인 것이다.


이것은 쌓이게 되면 습관이 되고 나중에 시간이 갈수록 절대 바뀌지 않는 한 인간의 성품이 된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받아쓰기 수학문제 몇 개 틀리는 것은 얼마든지 허용할 수 있다. 연습이 필요한 부분이면 연습을 하면 되는 것이고 그래도 안되면 그건 그냥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더 잘하는 것을 찾아서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의 경우 사교육은 선행학습을 하고 유명한 학원을 들어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아이가 부족하고 필요한 것을 적절히 채울 수 있고 그것을 꾸준하게 할 수 있는 아이 맞춤 학원을 찾아서 다니고 있다.


아직 초등학생이기 때문에 하기 싫은 공부를 미루고 싶을 수도 있고 규칙을 어기고 약속을 어길 수도 있는 것인데 나에겐 그것만큼은 절대 허용할 수 없는 너무 높고 엄격한 기준과 잣대를 아이에게 들이대고 있다.


왜 그런 것일까? 분노하는 내 모습을 보며 너무 괴롭다. 지나치게 혼을 낸 후에도 아이에게 미안함이나 죄책감 같은 마음도 들지 않는다. 그것조차 이상하다. 그저 그 순간 올라오는 분노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고 오지 못하면 점점 더 겪해지고 감정처리가 점점 힘들어진다. 어느 순간 아이는 느낀다. 엄마가 정상이 아니다.


완고한 고집을 부리다가 결국 꺾어진다. 이걸 보며 한편으로 알고 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아이에게 처리되지 않는 저 감정들이 어느 시점 폭발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정신 차려 보려 하지만 또다시 그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나는 그런 환경에서도 잘 자라서 잘 살고 있다는 큰 착각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얼마나 힘들고 아팠는지 과정을 잊고 살고 있었는데 아이를 통해 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이다. 하지만 꼭 한 번은 겪어내야 할 엄마의 성장통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육아를 하면서 힘들다고 생각하고 느끼는 지점을 바꿀 수 있는 노력과 공부가 필요하다. 그렇게 될 때 나는 아이를 키우는 것이 힘들지 않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그런 과정 또한 잘 감당하며 성장하는 사람이 되어 아이가 행복한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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