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런하다
가을이 열매 맺고 추수하는 계절의 대명사이긴 하지만 실은 여름도 만만치가 않다. 수박과 참외, 자두, 복숭아, 포도, 토마토, 블루베리 같은 탐스러운 과일과 채소를 맛볼 수 있는 계절이 바로 여름이다. 예로부터 폭염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과일에서 얻었다. 땀으로 인해 빼앗긴 수분을 차갑게 보관한 과일로부터 보충했다. 요즘은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정성껏 키운 남의 집 수박을 들고 나오다 걸려도 꿀밤 한 대로 용서가 되던 시절이 있었다. 서리라는 단어의 의미가 도둑질보다는 장난질에 더 가깝게 닿아 있던 탓에 짜릿한 스릴과 정겨운 인심이 여름을 채우고 있었다. 감자와 옥수수, 고추와 호박, 가지, 그리고 오이, 또 양파와 마늘. 다 거론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먹거리가 지천인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할머니 댁 가마솥에는 항상 찐 감자와 옥수수가 데워져 있었다. 갈 때마다 습관적으로 솥뚜껑을 열어 그 아득하고 따스한 온기를 기어이 확인하는 버릇이 들었다. 졸지에 농사짓는 처가를 만난 나는 체력도 부족한 데다가 눈치와 의지도 없었다. 그래서 밭농사에 조금도 기여하지 않으면서 매번 귀한 과일과 채소, 곡식을 얻어다 먹었다. 마치 준 거 없이 자연에게 받기만 하는, 탐욕스럽고 뻔뻔한 인간과 같이.
어릴 적에 목에 칼이 들어와도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두 가지 있었는데, 가지와 굴이었다. 생굴의 그 비린내와 마치 콧물을 연상시키는 식감은 도무지 타협 불가였다. 왜 어른들은 자기 취향을 아이에게 강요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굴 맛의 매력을 강제로 주입시키려는 시도는 가히 폭력적이었다. 푸석거리는 가지의 식감도 폭력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특히 한국에서 불호 음식의 대표 주자가 된 이유는 볶음과 무침 위주인 조리 방식 때문이란 주장도 있다. 생으로 먹었을 때는 스펀지처럼 푸석대고, 요리했을 때는 흐물거리는 가지의 식감을 싫어하는 것은 어린이에겐 어쩌면 당연지사였다. 특유의 향미 또한 가지를 비호감, 밥경찰의 대명사로 만드는 데에 일조했다. 식욕을 확 떨어뜨리는 보라색 빛깔은 또 어떠한가. 오죽하면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을까. "다듬이처럼 생긴 저 형광색 방망이를 어떻게 먹는단 말이에요." 그래서 가지볶음이 밥상에 올라오면 여지없이 단식 투쟁을 벌이곤 했다. 맨밥을 먹을지언정 타협할 수 없었다. 무더위가 식욕마저도 집어삼킨 어느 여름이었다. 반찬은 단출하게 된장찌개와 가지무침, 김치 정도가 올라왔을 것이다. 여느 때와 같이 반찬 투정을 하던 나는 미처 엄마의 표정을 살피지 못했다. 에어컨도 없던 시절,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도 자식을 먹이기 위해 가스불 앞에서 땀을 흘려가며 밥을 차리던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평소에는 마냥 어리광을 받아주던 엄마가 그럼 먹지 말라며 밥그릇을 치웠다. 당당하게 단식을 선포하던 기세는 수그러지고, 단호한 엄마의 태도가 서러워서 그만 눈물이 찔끔 났다. 엄마는 달래 주지도 않고 잠시 두더니 옆에 앉아 된장찌개를 밥에 말아서 먹여 주었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뭐야, 왜 맛있지?‘
처가에 다녀왔다. 식사를 마치고 과일도 먹고 슬슬 일어설 때가 되면 장인어른은 여지없이 가지와 호박 따위를 바리바리 싸 주신다. 사람에 치이고 증오하다가 더이상 회사를 다니기 싫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막연한 상상에서 그치던 것이 구체적인 계획으로 진지하게 발전하던 참이었다. 만약 대안이 있었다면 실제로 그만두었을지도 모르겠다. 생채기가 더 이상 흠집에 불과한 작은 상처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을 때 이미 녹초가 되어 불능 상태에 빠졌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자 아내는 잠시 접어두었던 강아지 산책을 재개하자고 했다. 일찍 귀가해 봤자 무기력하게 스마트폰이나 쳐다보고 있을 것이 뻔했다. 차라리 강아지와 함께 초록으로 가득한 시골 풍경을 눈에 담는 것이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었다. 못 보던 사이 콩과 깨의 키가 크게 자라 있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면 장모님이 수북한 고봉밥을 담고 계셨다. 시장했던 나는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허기와 관계없이 실로 꿀맛이었다. 조미료도 들어가지 않아 밋밋하고 슴슴한데 왜 이리 담백하고 맛깔난지 알 수가 없었다. 모두 밭에서 직접 기른 천연 식재료로 구성된 밥상에는 놀라운 힘이 숨겨져 있었다. 일단은 속이 편했다. 고기나 가공식품을 먹었을 때의 부대낌이 전혀 없었다. 가지볶음에 젓자락이 계속 갔다. 새콤달콤하게 맛을 낸 가지냉국을 그릇 채 들고 마시려다가 체면 차리느라 그만두었다. 헛헛한 마음이 분명 무언가로 채워지고 있었다. 처가에서의 식사가 나를 부지런히 치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여행지에서, 쇼핑몰에서, 고급 레스토랑에서, 혹은 운동장이나 베개 위에서 힐링하고 있을 테다. 나의 그것은 단출하지만 정갈한 사 인 밥상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마치 엄마가 떠 먹여주던 된장찌개와 할머니가 쪄 놓은 감자, 옥수수처럼 내 영혼을 풍요롭게 살찌워 가며.
챙겨 주신 가지를 튀겨 어향가지를 만들어 먹었다. 가지를 어슷하게 잘라 소금을 뿌려 잠시 두었다. 봉지에 전분가루와 튀김가루, 가지를 넣고 버무린 다음 기름에 튀겼다. 노릇하게 튀겨진 가지를 한입 베어 물었다. "가지야, 너 원래 이렇게 단 맛을 갖고 있었니." 겉은 바삭한데 속은 촉촉한 가지가 즙을 뿜어냈다. "어때? 튀기니까 제법 먹을 만하지?" 마치 가지가 이렇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음식도 조리법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고! 자네 인생도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물렁거릴 수도, 단단할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 기름에 마늘과 파를 볶다가 간장과 설탕, 두반장, 참기름을 넣고 소스를 만들었다. 그렇게 완성한 어향가지를 맛본 아내는 엄지 손가락을 추켜세웠다. "여보, 이참에 나 식당이나 차릴까?" 생뚱맞은 내 말에 아내가 썩소를 날리며 말했다. "어디서 개수작이야." 인생이란 단 한 번도 고르고 질서 정연하며 가지런하지 않았다. 늘 혼란과 불확실성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누군가 질서는 아름답지만 파괴는 신선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구워 먹든 삶아 먹든 튀겨 먹든 요리사는 결국 나다. 새로운 레시피를 익히듯 생을 요리하는 법을 가지에게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