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 파스타

알레르기

by 아옹다옹하다

오전 5시부터 고양이 두 마리가 애절한 소리를 내며 잠을 깨운다. 일어나서 밥그릇을 보면 웬걸, 사료가 그대로 있다. 같이 놀자는 건지, 사료 말고 더 맛있는 무언가를 달라는 것인지, 아니면 친절하게 모닝콜을 해주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아내는 나보다 더 늦게 잠들고 그만큼 늦게 일어난다. 어떤 날은 10시가 넘도록 늦잠을 즐기기도 한다. 잠이 달아나버린 탓에 소파에 누워 스마트폰을 본다. 아주 간혹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쓸 때도 있다. 공짜로 거저 생긴 듯한 나만의 시간. 꼭 생산적인 무언가를 하지 않고 시간을 허비해도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을 것만 같다. 무료하고 나른한 토요일의 이른 아침을 사랑한다. 아내가 일어날 때가 되면 슬슬 식사 준비를 한다. 주말 아침 식사의 메뉴는 고정되어 있다. 파스타를 유독 좋아하기에 일어나자마자 어떤 파스타를 만들 것인지부터 고민한다. 크림, 토마토, 올리브유 등의 소스를 기반으로 해서 재료는 무얼 사용할지를 정한다. 그중 가장 애정하는 것은 바지락이나 새우를 사용한 알리오올리오 파스타이다. 얼마 전 비교적 값비싼 파스타 면을 구매했다. 좋은 면일수록 면 표면이 거칠어서 소스를 더 잘 머금고, 전분이 많아 유화 작용이 잘 일어난다고 한다. 또한 저온으로 건조하여 밀의 풍미가 잘 살아난다고. 역시 사람이든 식재료든 거칠고 차갑게 단련해야만 비로소 풍미를 갖게 되는 것일까.

가을은 새우의 계절이다. 추석 전후로 집 근처 양식장에서 흰다리새우를 사다가 가족들과 소금구이를 해 먹는다. 2kg 정도는 소분해서 냉동실에 얼려 놓고 요리할 때마다 사용할 만큼 새우를 좋아한다. 파스타를 만들 때는 올리브오일에 새우 머리와 껍질, 양파, 마늘, 토마토를 넣고 볶는다. 새우 머리를 으깨면 걸쭉하게 흘러나오는 내장이 요리의 감칠맛을 책임진다. 머리와 껍질을 꺼내고 새우 몸통을 볶다가 삶은 면을 넣고 요리를 완성한다. "여보, 다 됐어. 밥 먹어." 한 번에 불러서 나온 적이 없기 때문에 밥상을 차리기도 전에 미리 호출해야 한다. 아내도 몇 번 속더니 바로 나오지 않고 꿈지럭거린다. 나를 부르던 엄마도 분명 속이 터졌을 텐데, 어떻게 짜증 한 번 안 내고 상을 차렸던 것인지 존경심이 든다. 눈곱도 떼지 않고 서로를 대면하며, 무심함 속에 녹아 있는 익숙함과 친근함이 새삼 감사하게 느껴진다. 탄력이 넘치는 새우와 면을 크게 한입 넣고 우걱우걱 씹는다. 새우 특유의 짭조름함과 마늘과 페페론치노의 알싸함이 한 데로 뭉쳐 미각을 자극한다. 꾸덕하게 소스와 한 몸이 된 파스타 면이 마치 새우처럼 입 안에서 파닥거린다. 그 순간만큼은 근심과 상념이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 '맞아, 사람이란 이토록 단순한 존재였지. 왜 나는 그동안 필요하지도 않은 관념들을 끌어다가 스스로를 괴롭히고 양식장에 가뒀던 것일까.'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킨다. 음식 냄새가 빠져나가듯 의식 안에서도 환기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신나는 음악에 리듬을 타며 로봇청소기가 집안 구석구석을 누빈다.


새우를 좋아하는 내겐 잔인하게도 새우 알레르기가 있다. 다행히 심각한 정도는 아니라서 몸 상태가 좋을 때는 괜찮다가 피곤하거나 면역력이 떨어지는 날엔 즉각 반응이 나타난다. 두드러기가 나고 몸에 열이 오르기 시작하고 심할 때는 호흡이 가쁘기도 한다. 땅콩이나 오이 알레르기 정도라면 안 먹고 참을 수도 있겠지만 새우는 거부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무식하게도 그냥 먹는다. 내 안에서 거부반응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이렇듯 좋아하는 것들 중에서 내게 해로운 것이 존재한다. 몸의 면역 시스템이 일부 음식에 대해 과잉반응을 일으키듯,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거부하는 심리적 반응에 대한 데이터가 축적되고 있다. 술, 담배는 말할 것도 없고, 예전에 즐겼던 과자와 음료수, 아이스크림도 몸이 싫어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유일하게 즐기는 취미 생활인 당구 또한 마찬가지이다. 당구 큐로 공을 칠 때는 허리를 직각에 가깝게 굽힌 채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다른 구기종목과 마찬가지로 한쪽 팔만 사용하기 때문에 골반이 틀어질 확률이 높다. 당구를 치고 나면 허리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니까 자세가 흐트러져 마음대로 구사가 안 되고, 좋아하는 걸 하면서도 스트레스를 받는 사태가 일어나고 말았다.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차곡차곡 쌓이자 해소할 수 있는 통로가 절실했다. 당구 경기에 임할 때는 온전히 그 순간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더 심하게 매달리게 됐다. 점심에 물리치료를 받고 퇴근 후 당구장으로 직행했다. 그러니 허리가 멀쩡할리 없었다.

좋아하는 사람 때문에 감정 알레르기 증세가 나타난 적도 있었다. 중학교 때 단짝이던 Y는 친구이자 동경의 대상이었다. 잘생기고 재미있는데, 엉뚱하면서 운동까지 잘하는 인기인이었다. 농구를 잘하던 그와 친해지고 싶어서 농구를 시작했다. 하교하고 남몰래 연습을 할 정도였다. 붙임성이 좋은 그는 먼저 다가왔고 꿈에 그리던 절친이 되었다. 장점이 참 많은 친구였지만 성향은 정반대였다. 주목받는 것을 좋아했고 충동적이었다. 여러 사람과 다양한 관계를 만드는 것을 즐겼다. 이기적이면서 얽매이기 싫어하는 성격 탓에 내 순애는 번번이 상처를 받았다. 사랑한다고 해서 고슴도치를 안고 살아갈 수는 없듯이 서서히 그를 떠나보내야만 했다. 옻 알레르기가 심한 사람은 옻을 먹은 사람과의 접촉이나 옻나무를 삶은 증기에도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인생을 파노라마처럼 길게 펼쳐 놓고 내가 아끼는 것 중에서 나를 공격하는 것들을 찾아보았다. 나이가 들수록 몸 안에서 스스로 거부하는 것들의 리스트가 늘고 있다. 질 좋은 파스타 면처럼 소스와 적당히 융화되지 못하고 겉도는 싸구려 면이 되는 것은 아닌지. 나와 다른 것들을 포용하지 못하고 과민하게 밀어내는 일은 불가항력이지만 한편으로는 꽤나 쓸쓸한 순간이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