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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ngbi Mar 19. 2022

보충업무_병가를 냈습니다

병가를 냈습니다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은 '아파도 학교 가서 아파라'는 게 미덕인 세대였다. 요즘도 그런 경향이 있는지 모르겠다. 진짜 병원에 실려갈 정도로 아픈 게 아니면 학교 양호실에서 몇 교시를 통째로 날리더라도 학교에 갔다. 정 안되면 조퇴를 하더라도 일단은 학교에 갔다. 다행히 심하게 아팠던 적은 없었지만, 병결을 하는 게 썩 익숙하지는 않다.


20대가 되면서 체질이 바뀌었는지, 이상하게 잔병치레를 달고 살았다. 참을 만하면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참을만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심할 경우 기절하거나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다.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한 병원에서는 늘 '스트레스성'이라는 말을 했다. 10대 때에는 멀쩡했는데 20대가 되자마자 스트레스에 취약해진 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그래서 아플 때마다 쉽게 납득하지 못했던 것 같다. 게으름 피우고 싶어서 엄살 부리는 것 같았다.


사진출처 : 픽셀스


내 몸이 자주 아픈게 정말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걸 병원에서 정식 진단받게 되었을 때, 비로소 잊고 있던 기억을 꺼낼 수 있었다. 20대가 되자마자 스트레스 취약 체질로 변한 게 아니었다. 10대부터 꾸준히 스트레스 받아서 아파왔던 걸 그냥 무시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고2때는 자퇴하려던 걸 친구들과 담임선생님이 뜯어말려서 억지로 졸업할 때까지 다니지 않았던가. 지속적인 고통에 익숙해졌던 것 뿐, 힘들지 않은 건 아니었는데.


니트컴퍼니에 처음 병가를 냈다. 사실 입사 전에도 갑자기 아프고 그 뒤로 컨디션이 오락가락 했는데 결국 탈이 났다. 병원에 가서 약을 받아 먹고 쉬었다. 그래도 주 업무는 해야겠다 싶어서 애쓰다가 편두통에 시달려서 어제는 병가를 쓸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병가 쓰는 데에 눈치보는 분위기는 전혀 아니어서 그나마 위안이 됐다. 다들 푹 쉬고 얼른 회복하라고 위로해줘서 힘이 났다.





아픈 것도 죄가 되나요?


최근에 곰곰이 생각해보는 주제다. 내 주변 사람들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어볼 때도 그렇고 어디가 아프거나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극심해서 병원을 찾기 전 아주 오랜 시간을 망설이는 것 같았다. '아플 땐 병 키우지 말고 곧장 병원에 가자'는 주의여서 처음에는 그들의 태도에 의문을 가졌다. 하지만 나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는 걸 돌이켜 생각해보았다. 


아픈 게 죄는 아닌데 죄인 것처럼 느껴지는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정말 몸이 아파도 여러가지 이유로 회사에 병가를 내기 쉽지 않다. 아닌 경우도 있지만 하루 쉬면 업무가 엄청 밀리거나 동료들의 업무 부담이 생기는 곳도 적지 않다. 그렇다고 잠시 짬내서 병원에 가는 것도 은근히 어렵다. 생각보다 병원에 사람이 많고, 짧은 시간 안에 진료보고 와야 하는데 대기시간도 길어서 눈치가 보이기도 한다. 


사진출처 : 픽셀스


환경 뿐 아니라 심리적 부담도 상당하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자신이 아픈 걸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나마 몸이 아픈 건 통증이 참기 힘들면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은 한다. 근데 정신적인 통증은 거의 중증 만성이 되기 전까지 참는다. 요즘따라 일에 집중이 안 되는 것도 그냥 게을러서일거야, 매일 죽고 싶다는 충동이 드는 것도 직장인이라면 다 참고 사는 증상일거야, 이유 없이 눈물이 나는 것도 요즘 일이 좀 힘들어서일거야, 같은 생각들을 하면서. '뭔가 이상한데, 병원에 가봐야 하나?'라고 마음먹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린다. 


몸이 아픈 것도, 마음이 아픈 것도 절대로 죄책감을 가질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따라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아프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내 의지와는 상관이 없는 일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는 것조차 나를 아프게 만드는 일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남들이 뭐라고 해도, 적어도 자신에게만큼은 '그래, 사람이 살다보면 아플 수도 있지'라고 위로를 건네고 스스로를 돌볼 줄 알아야 한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나마저 나를 외면하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아프다고 말해, 화내지말고


아주 아이러니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고3때, 야간자율학습을 앞두고 담임선생님께 잠시 일이 있어 찾아갔다. 내 얼굴을 한참 살피던 담임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안색이 너무 안좋은데, 오늘은 그냥 집에 가서 쉬는 게 어떻겠니?" 나는 속으로 물음표를 그렸다. 나는 아주 쌩쌩하고 멀쩡했기 때문이다. 거울을 봤다. 얼굴이 전체적으로 창백하고, 눈 밑에는 다크써클이 진했고, 입술에 색이 하나도 없었다. 음, 누가봐도 전형적인 고3 얼굴인데? 하지만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선생님의 탁월한 관찰력과 따스한 배려에 무척 감사드립니다"라며 인사하고 룰루랄라 집으로 갔던 적이 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죽을 만큼 힘들어서 퇴사를 하겠다고 밝혔을때, 전 회사 사장님이 내게 말했다. 전혀 안그래 보이던 애가 갑자기 왜 그러냐고. 30분 정도 면담을 하고, 퇴사일자를 확정하고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조금 울었다. 마음 진정을 시키고 나와 세면대의 거울을 쳐다보았다. 얼굴이 전체적으로 창백하고, 눈 밑에 다크써클이 진했고, 입술에 색이 하나도 없었다. 생기 없는 무표정 위에 덧입힌 화장이 오전 업무의 분주함을 이기지 못하고 다 지워져 있어서 더 그래보였다. 이 몰골이 멀쩡해보인다고? 세상이 나한테 일말의 관심도 없다는 걸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사진출처 : 픽셀스


어차피 내가 아픈지 안 아픈지는 직접 그렇다 아니다 말하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이고 관심조차 없다. 안아픈데 아파보인다고 하질 않나, 아파 죽겠는데 멀쩡해 보인다고 하질 않나. 그래서 내 상태는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아야 하고, 나를 챙기는 건 결국 나밖에 없다는 걸 절실히 느꼈던 것 같다. 뭔가 문제가 있다고 느끼면 의심부터 하지말고 조치를 취하길 바란다. 아픈 건 내버려둔다고 저절로 낫지 않는다. 병원 데려가고, 약 먹이고, 좋은 음식 먹이고, 푹 재우고, 한숨 크게 돌려야 낫는다. 가족이 아프면 정성껏 병간호 하듯 스스로에게도 그렇게 해야 한다. 



아픈 걸로 눈치보지 않기를, 소중한 사람으로 여겨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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