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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 Jul 28. 2024

차선의 선택, 목동 단지 대형평형으로 이사

강남으로의 이사가 좌절(?)된 이후 2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나는 중학생이 되었고, 막내동생도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삼남매가 모두 학령기에 접어들었으니, 당분간 목동을 떠나기는 더욱 요원해졌다.


차라리 우리가 살던 곳이 살기에 아쉬움이 있는 곳이었더라면 모든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강남으로 이사를 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서울 서남권에 직장이 있는 사람에게 목동은 너무나 살기 좋은 곳이었다. 오목교역에서 목동 14단지 사이에 빌라 밀집지역이 있는 것을 제외하면 모두 20평형에서부터 55평형까지의 아파트로만 구성된 곳. 


제일 규모가 작은 4, 6단지가 1,500여세대인 대단지 아파트 주거지역이다보니 그만큼 필요한 기반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다. 게다가 평지이고 목(木)동이라는 이름답게 나무가 가득한 곳이다.


요즘 지어지는 신축 아파트의 장점 중 하나가 단지 내에 차량이 다니지 않는다는 것이다. 차량이 다니지 않으니 아이들을 단지 내에서 마구 돌아다니게끔 풀어놓아도 걱정이 없는데, 목동 신시가지아파트(이하 '목동 단지')는 80년대 중반에 입주한 아파트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내에 차량이 다니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 자연스레 서울 서남권에 기반을 둔 중산층들이 목동으로 몰려들었다. 초등학교 3학년 연말에 두 달동안 우리 반에만 열 명의 전학생이 전학온 기억이 난다.


거기에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허허벌판이었던 오목교역 부근에 현대백화점 목동점이 들어왔다. 지금도 에.루.샤(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도 없는 백화점이 무슨 백화점이냐는 비하의 말도 있지만, 명품을 매일 구입하는건 아니니까. 지역 주민들이 평소 쇼핑하기에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나는 중학생 때 특목고 준비를 했어서 잠시 대치동으로 학원을 다녔었는데,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치동을 보고도 딱히 우리 동네보다 많이 좋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학원가의 규모가 조금 더 크지만 대형학원보다는 소규모 학원들이 대부분이다보니 겉보기에는 그리 규모가 크다는 느낌이 아니었고(오히려 대형 학원이 대로변에 줄지어 이어지는, 안양 동안구 평촌 학원가에 처음 갔을 때 감탄이 나왔다), 목동과 똑같이 아파트촌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빌라촌에 살았더라면, 언덕배기 동네에 살았더라면, 큰 학원가가 없는 동네에 살았더라면, 대치동에 가보고 여기 너무 좋다, 우리도 이 동네 살면 안돼? 라는 말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중학생인 내 눈에 목동과 대치동의 차이는 단지 위치 뿐이었고(그리고 그 위치 차이가 집값의 차이를 결정한다는 것을 중학생이 알 리 없었고), 그렇다보니 편도 1시간이 꼬박 걸려 한티역으로 학원을 다니면서도 대치동으로 이사가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아니, 학원 다니기가 힘들어서 대치동 학원을 그만두고 목동으로 학원을 옮겼다.


서론이 길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엄마는 2005년초 어느 날, 왜인지 집을 옮겨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강남으로는 못 옮기는 상황이니, 목동 단지 대형평형으로 옮기는게 최선이었다. 여러 단지의 매물을 보았지만 결국 우리가 다니던 초, 중학교가 있는 단지로 갈 수밖에 없었다.


이 또한 차선이었다. 우리가 선택한 단지는 그 때나 지금이나 가장 선호도가 높은 5단지는 아니었고, 용적률이 가장 낮은 단지도 아니었다. 하지만 중학생인 내가 버스 타고 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되었고, 초등학생인 두 동생이 전학을 가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도 차선인 것은 확실했다. 당시 기존 집을 5억 5천만원에 팔고 8억 5천만원에 목동 단지 대형평형을 매수했다. 2006년에 버블세븐 지역(강남, 서초, 송파, 양천, 용인, 분당, 평촌)을 중심으로 집값이 폭등하면서 3억원 차이는 6억원 차이까지 벌어졌다. 그렇다, 절대적인 집값이 1년 반만에 거의 두배가 올랐던 것이다.


물론 이후 2012년까지 지지부진한 시장과 하락장이 이어지면서 집값은 2005년 가격보다 조금 높은 수준까지 떨어졌지만, 옛날 집(목동 비단지)과 새로 이사온 집(목동 단지)의 가격 차이가 3억원까지 좁혀지는 일은 다시는 없었다. 


20년차가 넘어간 목동 단지는 '재건축 가능 단지'로 평가를 받기 시작했고, 건물값은 0에 수렴해 가지만 땅값은 점점 높아져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목동 단지는, 세대당 땅 지분이 매우 많다.


그렇게 우리는 목동 단지 아파트 입주 20주년이 되던 해에 목동 단지 대형으로 이사를 했다. 20년 된 아파트이니 당시로서는 큰 돈인 5천만원을 들여 인테리어를 했고, 우리는 그 집에서 정말 오래 살았다. 초등학생이던 동생이 직장인이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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