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번째 집에 이사 온 건 1999년 여름. 3년이 지난 2002년 어느 날, 엄마는 강남으로의 이사를 알아보게 되었다.
지금이야 부동산 카페에 카톡방에, 부동산 정보를 얻을만한 커뮤니티가 한 두 곳이 아니며, 그곳들에서 부동산 급지 순서를 읊는 사람들도 한 두 명이 아니다.
알고 싶지 않아도 우리 집의 '급지'가 어느 수준인지를 알게 되고, 상급지 갈아타기라는 걸 해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 쉽다.
2002년에는 그런 커뮤니티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럼 우리 엄마는 어떻게 목동에서 강남으로 이사 갈 생각을 했냐면, 강남은 그 옛날에도 좋다고 소문난 동네였기 때문이다.
목동도 참 좋은 동네지만, 지금도 목동에서 여력 되는 분들은 강남으로 이사를 종종 간다. 그때도 그랬다. 몇몇 주변인들의 이사가 우리 엄마에게 자극이 되었으리라. 그리고 결정적으로 엄마의 오빠, 그러니까 우리 외삼촌이 대치동에 거주하고 계셨다.
2003년에 동생의 초등학교 입학, 그리고 2004년에 나의 중학교 입학이 예정되어 있었다.
지금도 대치동의 중고등학교는 학교 배정 코앞에 이사를 오면 정원 초과로 배정이 안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대청중 코 앞에 있는 단지로 연말에 이사오더라도, 나보다 먼저 대청중 배정 단지에 살고 있는 예비중 1 학생 수가 대청중학교 정원을 초과한다면 나는 멀리 있는 다른 중학교로 배정을 받아야 하는 식이다.
엄마는 미리 동생과 나, 엄마의 주소를 대치동 외삼촌 댁으로 옮겨두고 이사 갈 집을 알아보았다. 주소를 미리 옮겨둘 정도로 이사 가는 게 확정적이었는데, 결국 우리는 대치동으로 이사 가지 못했다.
첫 번째, 초등학교 고학년인 내가 이사를 강력하게 반대했다. 꼭 이사 가고 싶은 동네가 있다면 가급적 아이 어린이집 들어가기 전에 정착하는 게 베스트고, 늦어도 아이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가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이 어린이집 들어가기 전에 정착하라는 이유는-나는 아직 애가 없어서 모르지만, 주변 분들을 보니-이사가면 어린이집, 학원 등 세팅을 다시 다 해야 하니 몹시 번거롭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아이의 자아가 커지고, 친구가 가장 좋은 나이가 되다 보니 친구들과의 이별인 이사를 격하게 거부할 수 있다.
두번째, 우리 부모님의 직장은 모두 서울 서남쪽으로 대치동에서 너무 멀었다. 당시 엄마 직장은 목동 우리 집에서 무려 5분 거리로, 초 직주근접이었다. 우리가 학원 셔틀버스를 놓쳤다고 하면 사무실에서 잠깐 나와서 라이딩해 주고 들어간 적도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 아빠는 당시 연봉을 크게 높여 이직하면서 업무 로드가 극악으로 바뀌어 새벽 6시 반에 집을 나서서 밤 10시 넘어서야 집에 들어오곤 했으니, 육아에는 거의 참여하지 못했다.
전편에서 말했듯 양가 부모님(내 입장에서는 조부모님과 외조부모님)의 육아 도움을 받을 형편도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치동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면 엄마, 아빠 모두 통근시간이 최소한 편도 1시간은 걸릴 테니, 우리 삼 남매는 주양육자인 엄마의 손길을 받는 시간이 하루 두 시간 줄어들고, 안 그래도 근무시간이 긴 우리 아빠도 파김치가 될 것이다. 요즘은 9호선이 생겨서 그나마 강남에서 강서, 또는 강서에서 강남권 통근이 개선되었지만, 심지어 그때는 지하철 9호선도 개통 전이다. (9호선은 2009년에 개통됨)
그렇다. 대치동은 그 때나 지금이나 목동보다 대중의 선호도가 높은 동네이지만, 당시의 우리 가족이 살기에는 목동이 대치동보다 적합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부동산시장의 꽃! 전세제도를 이용하면 되지 않는가? 엄마는 아빠에게 대치동에 집을 사고, 목동에서는 전세로 살자는 제안을 하였다.
여기서 우리 집 재테크사(史)의 오답노트 양대산맥 중 하나가 나온다. 하나는 아빠가 극심한 대출 알레르기가 있어서 충분히 대출을 감당할 능력이 됨에도 첫 집 구입할 때 받은 대출 제외하고는 30년간 대출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이것이다. 우리 아빠는 남의 집에서는 거주할 수 없는 병, 1 가구 1 주택을 지키며 내 집에서 내가 살아야 하는 병을 앓고 있다..
게다가 여느 집안이 그렇듯 본인의 그럴듯한 투자 논리로 똘똘 뭉친 아빠와 달리, 엄마의 논리는 늘 '저기가 좋다니까 나도 저 집이 갖고 싶다' 외에는 없기에, 엄마는 아빠를 설득하지 못했다.
고민하는 사이 몇 달이 훌쩍 지났고, 외삼촌 댁에는 동생 앞으로 대곡초등학교(대치미도아파트 단지 내에 있음) 입학 통지서가 날아왔다. 이제는 결정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를 갈 것이냐, 말 것이냐.
제목이 말해주듯 우리는 결국 이사를 가지 못했다. 그때 대치동으로 이사를 갔다면, 아니 목동에는 전세 살면서 대치동에 전세 끼고 집을 사뒀다고 해도 우리 부모님의 순자산은 지금보다 최소 10억 원 이상 많았을 것이다.
그래도 목동에 계속 살았던 것도 괜찮았다며 자기 위안을 해보자면 이렇다.
첫 번째로, 목동에 전세 살았으면 우리 엄마아빠는 애 셋을 데리고 2~4년마다 계속 이사 다니는 불편을 겪었을 수도 있다. 2003년에 내 동생이 초등학교를 입학했다고 했으니, 그때 목동 집을 팔고 대치동에 집을 샀다면 동생이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정확히 12년 동안 목동에서 전세 난민으로 살아야 했을 거다. 이사를 한 번이라도 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애 셋 데리고 2~4년마다 이사 다니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두 번째로, 남의 집에는 살 수 없다는 아빠의 의견과 강남 집을 사자는 엄마의 의견을 합하여 대치동 집을 사고 실거주하러 들어갔다면, 우리 엄마나 아빠 중에 한 명 이상은 병나서 몸져눕지 않았을까? 부부 둘 다 통근 왕복 두 시간 넘게 하면서, 양가 부모님 도움 없이 애 셋을 키운다면 쓰러지지 않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20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순자산 10억 원 차이라면, 12년 정도 전세 난민을 하거나 왕복 두 시간 통근할 가치가 있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1년에 1억씩 이니.
그래서 나는 직장이 서울 3대 업무지구(강남, 여의도, 광화문) 모두에서 먼, 영 생뚱맞은 곳에 있는 분들은 대중의 수요가 몰리는 곳에 집을 사고 본인은 직장 근처에서 전월세로 거주하시라고 권해드리는 편이다.
우리 집 순자산도 강남에 이사 갔었을 경우보다는 적어도, 그래도 부모님 노후대비는 넉넉하게 된 이유는 3대 업무지구 중 하나인 여의도에서 아주 가까운 택지지구이자 학군지인 목동에라도 집이 있었기 때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