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ne Jul 14. 2024

동네에서 평형을 넓혀 이사가다

우리 부모님이 첫 집을 얼마에 매수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1억 5천만원 가량에 매도한건 확실하다. 지금도 부동산 광인인 나는 떡잎부터 부동산에 관심이 많았는지, 어릴 때부터 부동산 창문에 붙은 어느 아파트 얼마, 라는 광고를 자세히 읽곤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기억으로 우리 집은 1억 5천만원 정도였고, 이 글을 쓰려고 <부동산뱅크> 웹사이트의 과거 시세를 확인해보아도 우리가 첫 집을 팔았을 쯤의 시세는 1억 5천만원이었다.


<부동산뱅크>에 따르면 우리 가족의 두번째 자가는 그 쯤 2억 8천만원~9천만원 정도였다. 원래 살던 집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세대수가 더 많고 연식은 비슷한 아파트였다. 이전 집은 33평이었지만 새 집은 45평에 방이 네개였다. 한 마디로 입지는 거의 같고, 아파트의 상품성과 평형을 업그레이드해서 갈아탄 것이다.


그런데 1억 5천만원쯤에 이전 집을 팔고 2억 8, 9천만원에 새 집을 샀으면 1억 4천만원이라는 돈이 더 필요할텐데, 5년 새 이 돈이 어디서 났을까? 심지어 첫 자가에 이사왔을 때는 1억 5천만원 중 일부가 대출이었는데, 그 때 대출받은 것을 제외하면 우리 부모님은 일생에 대출을 받아본 적이 없다.(!) 즉, 5년동안 대출을 모두 갚고 1억 4천만원이라는 차액까지 마련해서 2억 9천만원 전액 현금으로 집을 산 것이다.


물가가 몇 배 오른, 즉 돈 가치가 몇 배 떨어진 지금도 애 셋 키우면서 5년간 1억 4천만원을 모으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30년 전에? 이 사람들 어떻게 한거지? 우리 엄마아빠지만 신기하네. 비법은 별게 없었다. 소득을 늘리고, 조낸 아껴썼다. 잔여 대출이 있는 동안은 대출금을 먼저 갚고 남은 돈에서 생활비를 썼다. 그 때문에 2편에서 썼듯 월급날 전날에는 과자 사줄 돈도 없었다고 한다. 엄마는 막내동생이 지나자 마자 복직을 했다. 


음, 사실 엄마가 복직한건 소득을 늘리는데 큰 기여는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양가 부모님(즉, 나의 조부모님들)의 도움을 받을 형편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가 복직하면서 시터님을 고용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시터님 월급이 왠만한 여성 직장인 평균 월급보다 비싼데, 1990년대라고 다르지 않았다. 엄마 월급에 3만원을 보태어 시터님 월급을 드렸다고 한다. 


그럼에도 엄마가 복직한 이유는? 동생 둘을 연달아 낳았기 때문에 4년의 육아휴직을 했는데, 더 이상 집에 있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얼마 전에도 아기 낳고 육아휴직한 친구 집에 놀러갔더니, 애는 너무 예쁘지만 하루종일 말 안 통하는 애랑 집에 있으려니 고역이다, 너희가 와주어서 어른의 말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우리 엄마도 마찬가지였겠지. 막내동생 낳고 나서는 산후우울증 걸릴 판이라 엄마 다리 붙잡고 우는 돌쟁이를 두고 복직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우리 막내동생에게는 안된 일이지만(엄마는 동생이 서른이 다 된 지금도 울부짖는 돌쟁이를 두고 출근하던 그 날들을 떠올리면 너무 미안하다고 한다), 엄마의 인생과 우리 부모님의 노후대비를 생각하면 그 때 복직한건 참 잘 한 일이다. 엄마가 복직할 무렵 막 컴퓨터가 사무실에 도입되고 있을 참이라, 4년의 공백기에 컴퓨터까지 익히느라 죽을 맛이었단다. 그 때 복직 안했으면 어쩌면 영원히 가정주부로 살았을지도 모른다고.


어쨌거나, 맞벌이가 소득 증가의 답은 아니었다. 답은, 아빠의 이직이었다. 아빠가 다니던 직장은 업계 연봉 탑티어 직장이었는데, IMF 직후 다른 회사랑 합병되면서 연봉이 줄어들었다. 내 막내동생은 IMF 직전에 태어났고 말이다. 자녀 셋을 키워야 하는 상황에 연봉이 줄어드는건 용납할 수 없기에, 아빠는 다른 직장으로 과감히 이직을 했다. 마침 막 시작하는 산업군으로 이직했기에, 90년대 후반에 1억원이 넘는 고액연봉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엄마에게 연봉 얼마에 싸인했다고 이야기하니, 믿기지 않는다고 다시 말해달라고 기뻐하던 엄마의 모습이 생생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코로나로 돈이 잔뜩 풀린 이후 한동안 근로소득의 가치가 폄하되는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가장 중요한건 근로소득이며, 특히 2030 젊은 직장인이라면 본업에서의 능력을 키워 몸값을 높이는게 무엇보다 중요한게 아닌가 싶다. 백 투더 베이직!

이전 02화 부모님의 첫 자가, 서울 양천구 신정동 아파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