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와 똥은 뭔가 끈끈한 무언가가 있다. 누구나가 학교 다니면서 똥과 관련된 사건 하나씩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개인적으로는 학교에서 저학년과 고학년을 두루 만나면서 똥과 더 각별하게 친해진 느낌이다.
나는 똥으로 1학년 친구들과 친해졌다. 초등학교에는 남자 선생님이 드물고, 1학년에는 더욱 드물다. 유치원에서 만나지 못한 머리 짧은, 수염 난 남자 선생님은 1학년 아이들 눈에는 그저 낯설고, 무서워 보이는 아저씨일 뿐이다. 하지만, 이 어린 친구들을 나는 한 글자로 웃길 수 있다. 그 무기는 바로 '똥'이다.
이상하리만치 1학년 친구들은 '똥' 이야기만 들으면 까르르까르르 그렇게 좋은가보다. 두서없는 '똥' 공격에 아이들의 경계심은 웃음과 함께 허물어진다. 똥으로 아이들과 친해지는 것이 더러워 보이기는 하지만 다행스러운 건 "선생님, 우리 아이가 똥 얘기 때문에 학교 가기를 힘들어해요."라는 민원은 없었다.
하지만, 대상을 잘못 정한 '똥' 공격은 가끔 아유와 민원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같은 방법으로 고학년에게는 거의 절대 통하지 않는다.
이런 경험으로 저학년과 고학년을 나누는 방법을 만들었는데 이름하여 '똥 판별법'이다. 방법은 간단한데 아무런 설명 없이 "똥"이라고 말하면 저학년의 경우는 웃음이 먼저 마중을 나온다. 웃음 대신 야유와 가까운 반응이라면 고학년에 가깝다. 모두 맞는 것은 아니니 유의가 필요하다.
학교에서는 가끔 똥 실수를 하는 친구들이 있다. 얼마 전 똥으로 호되게 고생한 선생님이 계셨다. 보통은 일 년에 한 번도 똥 사건을 담임으로서 처리해야 하는 경우를 만나기 쉽지 않은데 그 선생님의 경우 한 달 사이에 세 번의 똥을 처리해야 했다. 불행이면서도 다행이게 그 선생님은 꿈에서도 똥을 치웠다는...
우연히 교무실 앞 화장실을 지나가다 똥빛이 된 선생님 얼굴을 보았다.
"선생님 무슨 일 있으세요?"
"부장님. 혹시 시간 괜찮으세요? 저희 반 친구가 몇 번째 똥 실수를 했는데 이번에는 남자 어린이라서요. 제가 가 화장실에 들어가기가 어려워서요."
"제가 확인해 볼게요."
호기롭게 화장실을 열고 들어갔는데 간단한 사건이 아님을 후각으로 직감했다. 어린이의 그것이지만, 풍겨오는 어른의 향기... 잠겨있는 칸 하나를 똑똑 두르리며,
"괜찮니? 도와줄까?"
"괜찮아요. 제가 할 수 있어요."
쓱쓱, 휴, 샥샥, 알 수 없는 소리들이 불안감을 키웠다.
"선생님이 도와줄게. 선생님도 집에 아들이 있어서 이런 거 많이 봐서 알아. 문 한번 열어볼래?"
그제야 이 친구는 문을 열어주었다. 그 칸 안에는 혼자서 해결해 보겠다는 강한 의지가 이곳저곳에 진하게 묻어 있었다. 나 또한 배가 아파서 대중교통에서 급하게 내려본 경험이 다수라 결과만 보아도 그 과정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친구는 당황과 굳굳함, 불편함과 안도 등 여러 가지 감정이 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오랜만에 만난 그 녀석을 함께 정리했다. 애들 어렸을 때 기저귀 갈던 장면이 지나가고, 학창 시절 그 녀석 때문에 급하게 집으로 뛰어가던 다급한 마음도 잠시 스쳐가고, 연애할 때 그 녀석의 소식에 종종 옆을 비워 핀잔을 받았던 일들. 짧은 시간이었지만 강렬한 냄새와 함께 그려졌다. 그렇게 똥 사건은 잘 정리되었고, 그 선생님과 나는 가끔 그때의 강렬한 냄새의 추억을 웃으며 이야기하곤 한다.
내가 그 녀석 이야기를 많이 하며 친근한 마음이기는 하지만 그 녀석은 조용히 사색하며 여유 있게 ‘혼자서’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