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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재 Jul 02. 2020

연대의 힘

새벽의 일기

올해 상반기에는 두 개의 영화제에 참석했다. 하나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진행했던 시네마테크 친구들의 영화제이고 다른 하나는 온라인으로 진행된 전주국제영화제이다. 비록 하나는 오프라인으로, 하나는 온라인으로 관람했기 때문에 두 경험이 완전히 일치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영화제라는 이름 하에 나에게 다가온 영화들은 분명 개별적인 작품성을 떠나 내게 특별한 순간들을 선사했다. 


그 특별한 영화들 중에서도 내게 유난히도 기억에 남는 두 편의 영화가 있었다. 하나는 시네마테크 친구들의 영화제에서 관람한 <카메라를 든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관람한 <이사도라의 아이들>이다. 두 영화는 분명 다른 영화이다. <카메라를 든 사람>은 다큐멘터리 영화들에서 25년간 촬영 감독을 맡아온 커스틴 존슨이 자신이 촬영한 순간들을 편집해 만든 새로운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다니앙 매니블의 <이사도라의 아이들>은 전설적인 무용수 이사도라 덩컨의 무용을 모티브로 하여 그 무용을 하거나 관람하는 네 사람의 세 가지 에피소드를 병렬하듯 나열한 픽션 영화이다. 언뜻 보면 공통점이 있을 수가 없어 보이는 두 영화이다. 하지만 두 영화를 관람한 뒤 나에게는 무언가 비슷한 감동이 전해졌다. 두 개의 영화. 그러나 하나의 감정. 


어쩌면 두 영화에는 강력한 공통점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영화적 연대라고 부르기로 했다. <카메라를 든 사람>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사실상 관계가 없는 인물들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영화는 이들을 카메라에 담아내면서 하나의 스크린에 공존하도록 한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 같은 비극을 겪은 인물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순간. 영화는 한 프레임 안에 이들을 담아낸다. 그때 다가오는 형언할 수 없는 어떤 감정. <카메라를 든 사람>은 그것이 영화다라고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영화만의 힘. 편집과 촬영을 통한 연결. 그리고 연대. 이런 본질적이면서도 원초적인 질문과 답이 있었기에 그토록 건조해 보이는 영화의 끝에서 지금껏 겪지 못한 감동을 다가온 것이라고 믿는다. 


<이사도라의 아이들>의 연대는 조금 다르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건조한 영화는 두 번째 에피소드를 제외하면 거의 대사가 없다시피 하고 인물들이 하는 일은 고작 무용을 연습하거나 잠시 산책을 하거나 무용 공연을 관람하는 일이 전부이다. 극 중에 등장하는 네 여성은 심지어 공유하는 사건이나 연결지점도 없다. 그런 영화의 마지막까지 보고 난 후 이상한 안도감이 찾아왔다. 어쩌면 그것은 <카메라를 든 사람>처럼 영화가 이 인물들을 연결하고 있기에 가능한 감정일 것이다. 무엇이 이들을 연결하는가? 하나는 무용. 네 여성들은 각각 무용을 직접 하거나 가르치고 공연을 관람한다. 다른 하나는 모성. 이사도라가 자신의 아이들을 잃고 난 후 만든 무용을 통해 네 여성은 자신만의 방식대로 모성을 받아들인다. 마지막으로 영화. 무용과 모성으로 이어진 네 여성을, 영화는 사건을 통해 연결하지 않는다. 그저 바라볼 뿐이다. 그렇기에 무용과 모성은 어떤 사건의 개입도 없이 가장 순수한 상태에서 인물들을 연결한다. 그렇기에 그토록 고독해 보이는 여성들은 보고 있으면서도 알게 된다. 저 인물들은, 그리고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코로나 사태로 인해 모든 것이 고립되는 시대이다. 사람들과의 접촉이 금기시되고 서로 바라보는 얼굴은 마스크에 의해 가려진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우리는 기술의 힘을 빌려 어떻게든 함께 하고자 한다. 두 영화가 지금 내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고립되고 고독할 수밖에 없는 시대에 끝까지 연대하고자 하는 믿음과 성취를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염병은 우리의 몸을 갈라놓았지만 마음은 더욱 견고해졌다. 하루빨리 코로나 사태가 종식되어 이 연대의 힘을 더 활기차게 발휘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ps. 독립예술영화관인 아트나인의 서포터즈 아트나이너 12기에 선발되었습니다. 항상 홀로 글을 쓰다가 드디어 공개적인 대외활동을 다른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브런치에도 아트나이너로서 작성한 리뷰를 올릴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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