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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ysu Jun 04. 2020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아이덴티티

필름을 고집하며 변화를 추구하다.


 "I've made films that have some ambiguity them or some layering to them narratively. So that, if you see them a second time you're gonna watch them in a slightly different way."
"제가 만든 필름들은 다의성이 좀 포함되고 서술적으로 겹이 존재합니다. 그렇게 해서, 두 번째 보실 때는 약간 다른 방향으로도 보실 수 있게 말입니다."

- BAFTA Guru 유튜브, <"it's really about sticking to your guns" / Christopher Nolan on Directing> 인터뷰 中




  디지털 시대에 필름을 고집하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그는 언뜻 오해받을 수 있다. 변화를 거부한다고. 변화하길 두려워한다고. 하지만 '다의성'은 동적인 단어다. 옛 것이 된 필름 촬영 방식을 사용하면서 세계관 중심에 다양한 움직임과 변화를 추구한다는 것은 많은 시사점을 선사한다.



「사이드 바이 사이드」는 2012년 다큐멘터리로, '디지털이 필름을 대체하는 전환점'에서 영화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한다. 키아누 리브스의 말을 인용하자면, "과학과 예술과 디지털 영화의 영향력"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을 담았다.  2020년이 될 때까지 디지털 산업은 급속도로 번성했다. 어떤 것을 CG로 만들었는지는 영화 비하인드에 담겨 영화팬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애니메이션도 더욱 세세해진다. 「겨울 왕국 2」와 「토이스토리 4」는 디지털 기술이 섬세하고 심장을 울리는 휴머니티를 충분히 표현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디지털에 회의적이다. CG로 대체된 로케이션과 미장센은 사람들에게 "공허함"을 준다. "오븐에서 갓 나온 초코칩 쿠키는 부드럽고 맛있어서 감탄을 자아내"지만 금방 "화학 물질 씹는 것 같"다고 초코칩 쿠키에 디지털 시네마를 비유한다. 이제 2020년이 되었다. 2012년의 크리스토퍼 놀란의 주장에 2020년의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난 그에게 동의한다. 새롭지만 놀랍지 않은 영화들이 나온다. 계속되는 새로움은 일상이 되었다. 영화 홍보를 보면 '비주얼 쇼크', '눈을 뗄 수 없는'이라는 이미지적 소비가 넘쳐 난다. 기술력만 내세우는 영화를 볼 때마다 화학 맛 쿠키를 씹는 것 같았다. 「미녀와 야수」 실사판이 나왔을 때, 이것이 진짜 실사판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어지러웠다. 화려한 색감이 쉬지 않고 번쩍거렸다. 결국 속이 메슥거려 눈을 감았다. 노래만 듣자. 디즈니는 노래니까. 이미지에 현혹되지 말고 메시지를 보자며 숨을 골랐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이미지를 배제하고 메시지를 찾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보기 불편할 정도로 번쩍이는 것이 과연 '발전'이라고 할 수 있나?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인 「테넷」은 70mm 아이맥스 필름 카메라와 35mm 필름 카메라로 촬영됐다는 사실에 전율한다. 그는 곧잘 허구의 스토리를 실제의 미장센으로 관객에게 각인시킨다. 필름 카메라가 희소성을 가지자 필름은 독특해졌다. 60kg에 육박하는 카메라를 비행기에 직접 달고 촬영하는 방식은 '효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분명한 '목적'이 있다. 왜 꼭 필름이어야 했는가. 왜 꼭 비행기에 달아야 했는가. 왜 CG로 처리하지 않았는가. 사람들의 의구심과 의심에 영화로 대답하는 것. 크리스토퍼 놀란은 연출이라는 자신의 강점으로 신념을 자신 있게 내놓는다.



  그의 아이덴티티가 독특한 이유는 '다양성을 추구하는 필름 촬영'이라는 동적이고 올곧은 신념에서 나온다. 그는 꿈, 우주, 사랑, 희망, 죽음, 생존, 공포, 광기, 희생 등 철학적이고 심오한 개념을 구체적인 이미지로 실체화한다. 그래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는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그의 감각은 영화 역사에서 상업적으로도, 철학적으로도 독특한 아이덴티티가 되었다.


  그의 영화 속 캐릭터들의 성질도 변화한다. 그의 영화 속엔 같은 배우들이 자주 나오지만, 모두 다른 캐릭터를 맡았다. 톰 하디는 능청스러운 중개인이었다가 필요악이 되기도 하고 의롭고 희생정신 있는 공군 조종사가 되기도 한다. 또 영화 속 아이들의 캐릭터와 여성 캐릭터들도 영화가 진행될수록 변화한다. 어떻게 변화하는지는 다음 글에 계속된다.



  그처럼 상업과 철학을 어떻게 조화롭게 다룰까를 고민한다. 돈과 성공은 연결 짓기 쉽지만 자본주의와 자유 예술은 따로 떨어진 섬 같다. 두 섬의 다리를 어떻게 놓을까. 어떤 모양의 다리가 되었든, 튼튼한 다리를 지어야 한다. 튼튼하고 밤에도 은은하고 소소하지만 알록달록한 불빛이 켜진 다리를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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