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Dear Futur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enysu Nov 01. 2020

바라건대

The reason why I'm writing

  세상에 의도치 않은 소리들이 있다. 붙잡고 싶은 광경이 있다. 주머니에 넣고 싶은 언어가 있다. 이성 간의 연애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욕망이 있다. 아이를 사랑하고 뿌리를 그리워하고 싶은 갈망이 있다. 만나지 못한, 만나지 못할 이들이 남겨 놓은 유산이 있다. 차마 열어두지 못할 문이 있다. 광활한 바다에 떠돌아다니는 플라스틱이 있고 생명이 있다. 메마른 사막 위를 비추는 월광이 있다. 예리한 칼바람에 흔들리는 커튼이 있다. 비단처럼 날아가는 구름이 있고 연기처럼 흩어지는 구름이 있다. 아이를 잃고도 살아가는 용기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행하지 않을 죄를 망상하는 신자가 있다. 연민에 혼란스러워하는 다 자란 어른이 있다. 먹기만 했던 고기가 있고 있는지도 몰랐던 음식이 있다. 고기 없는 육수가 있고 고기 없이 사는 사람들이 있다. 굶주리는 고양이가 있다. 머리에 피가 맺힌 개가 있다. 아름다운 노을 녘에 몽둥이를 든 사내의 그림자가 있다. 산뜻한 산책이 있다. 매몰찬 파도가 있다. 바위를 짚다 부러진 손가락이 있다. 울고 있는 타인의 아이에게 귤을 주는 여자가 있다. 자신을 왜 낳았냐며 불만을 품은 아들이 있다. 단단한 근육을 바짝 세우고 신호를 기다리는 선수가 있다. 달콤한 푸딩을 먹는 입이 있다. 햇빛 아래 깔린 돗자리와 돗자리에 깔린 잔디가 있다. 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이 있다. 나뭇잎 없이 휑한 가지가 있다. 번쩍이며 누군가의 방을 환하게 비추는 간판이 있다. 발 앞꿈치로 밤을 걷는 여윈 다리가 있다. 담배 연기 자욱한 이자카야가 있다. 꼬치가 돌아가는 불판이 있다. 술 한 잔에 곁들이는 명란 구이가 있다. 연달아 본 세 편의 영화가 있다. 조명 불빛에 반짝이는 배우의 얼굴이 있다. 조명이 꺼지고 암전 된 면면에 드리운 미소가 있다. 무용하고 허무한 행운이 있고 유용하고 쓰라린 돈이 있다. 강제하는 섹스가 있다. 철제 책상 앞 무신경함과 철제 의자 위 눈물이 있다. 녹슨 건축 자재가 있다. 돌아가는 다섯 개의 컨베이어와 하나뿐인 손이 있다. 24시간의 하루와 48시간의 노동이 있다. 어스름한 새벽 푸른빛이 있다. 별이 바다로 떨어진 듯한 오징어 배의 불빛이 있다. 아침 해가 뜨며 사그라드는 새벽안개가 있다. 뽀송한 손과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있다. 건전지가 다 된 가스레인지가 있다. 두부와 애호박이 엎치락뒤치락하는 된장찌개가 있다. 고양이가 밟을까 씌워놓은 인덕션 커버가 있다. 아침나절 상추를 뽑는 굽은 등이 있다. 악몽을 꿨다며 울먹이는 목소리가 있다. 기지개를 켜는 들꽃이 있다. 굽이 해진 신발을 신는 발뒤꿈치가 있다. 지하철을 탄 노인들 다크서클이 있다. 가랑비가 미끄럼틀을 타는 차의 보닛이 있다. 고속도로를 가르는 짐승의 잔상이 있다. 이웃과 나누는 인사가 있고 동료를  무감히 지나치는 외면이 있다. 빌딩 숲을 구경하는 숲의 반달가슴곰이 있다. 초승달을 바라보는 남자의 코트 자락이 있다. 보호가 아닌 위협이 되어버린 총이 있다. 낭만으로 변절된 느와르가 있다. 널브러진 신문이 있다. 노벨 평화상을 받고 강단에 선 페미니스트가 있다. 얇은 천을 머리에 두른 여자가 있다. 벨벳 치마를 입은 남자 댄서가 있다. 바질 페스토 피자를 먹고 붉은 립스틱으로 화장을 고치는 입술이 있다. 우는 옆 사람에게 사탕을 건네는 손이 있다. 파도에 휩쓸리는 자갈을 보는 시인이 있다. 물고기가 숨은 형형색색의 산호가 있다. 서핑하는 블랙 코미디언이 있다. 여자의 배꼽을 보며 철학적 고민에 빠진 바텐더가 있다. 갈매기가 부리로 쪼는 선글라스가 있다. 거대한 골든 리트리버 두 마리에게 끌려가는 여자가 있다.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고 달리는 자전거가 있다. 낮에 깜빡이는 전봇대 불이 있다. 열렬한 키스를 나누는 연인이 있다. 다리 위에서 강을 내려다보며 떨궈진 고개가 있다. 학생들이 드나들 때면 나타나는 고양이 두 마리가 있다. 별을 잠재우는 도시의 불빛이 있다. 골목 사이 흩어지는 담배 연기가 있다. 쌓이고 눅눅해지는 책들이 있다. 남발되는 언어가 있다. 흘려보내고 싶은 장면이 있다. 응집된 외침이 있다. 


나는 이 끝없는 세상을 애정 하며 낙관한다. 

바라건대 세세히 통찰하길 전전긍긍하며.    

핸드폰과 노트를 펼쳐 메모한다.

놓치는 것이 있더라도 밀치는 것은 없길 바라며. 

매거진의 이전글 Stardust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