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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심플 Sep 21. 2020

그럼에도 감사합니다

 나의 지난 가을을 순화해서 표현하면 "치열"했다. 심한 말을 몇번이고 고쳐 "치열"로 합의를 봤다.
 어쨌거나 이러한 일련의 시간을 겪으면서 한가지 결심한 게 있었는데 내년에는(2020년) 나를 위한 일을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그 첫 걸음은 건강을 되찾는 것이었다.

 가을이 지난 후, 나는 나 자신의 상태를 "건강하지 않음"으로 규정했다.
 일단은 몸이 건강하지 않았다. 건강검진 결과표는 규칙적인 운동을 권했다. 위도 노화 되었다고 했고.(그게 무엇이든 "노화"라는 말이 붙어 듣기 좋은 말은 없다) 게다가 인생 몸무게를 기록해 오랜만에 만나는 모임에 나가는 것도 꺼려지기 시작했다. (흔히 사용되는 긍정적인 최대치를 의미하는 "인생"이 아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있듯, 내 정신상태도 정상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우울감과 권태감이 내 일상을 잡아먹고 있었다.
 그래서 운동을 일차적 목표로 잡았다. 그간은 막내를 데리고 있었는데 2020년에 막내가 4세가 되면 어린이집을 보내고 혼자만의 시간도 갖고, 운동을 다닐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놈의 코비드 사태가 터졌다. 그 무자비한 바이러스가 내 사정을 봐줄리 없었다.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첫째, 둘째, 셋째 모두 집에 있게 되었다. 상황이 당황스러워 헛웃음이 났다.


"나한테 왜이래애애애으애애애!!!"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그랬다.

"넌 더 혼 좀 나야 해"


 나 자신을 향한 말이었다. 힘들다고 난리를 쳤는데 사실 그건 힘든 것도 아니었다. 울고불고 세상 혼자 산듯 괴로워했지만 그건 누군가에겐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었다. 전부 더 힘들어지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다.

 예전에 가사가 재밌다며 즐겨들었던 노래의 후렴구가 문득 다시 생각났다.

아직 끝이 아니야
아직 다가 아니야
이별의 끝을 몰라 넌
넌 진짜 끝을 몰라
아직 끝이 아니야
이게 다가 아니야
넌 어려 아직 어려
넌 혼 좀 나야 해

"이별"이 "인생"으로 바꾸어 들렸다.
 내가 힘들다 한다고 인생이 쉬어가라 해주면 그게 어디 인생이겠는가.

 코로나 이후, 평균연령 6.3세의 아들 셋수면시간을 제외하고 하루평균 14시간을 함께 치대었다. 오로지 집구석에서.
 아이들이 하루종일 하는 것이라곤, 먹고 놀고 싸우고, 먹고 놀고 싸우고, 먹고 놀고 싸우고. 뭐 그것 뿐이었다.
 내가 하는 일이라곤 먹이고 치우고 중재하고 아니면 먹이고 치우고 혼내고 정도였다.

 육아라는 일도 일종의 감정노동이다. 하루안에 희노애락이 몇십번씩 오간다. 가끔 진상고객들이 말도 안되는 심통을 부리기 시작하면 가슴속에 참을 인을 새기며 새기며 새기며......중략.
 감정노동자 분들과 육아맘들은 아마 알 거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마저도 복에 겨운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왜 더 힘들 수 없겠는가. 왜 더 최악일 수 없겠는가. 평범한 일상에선 항상 그 다음 스텝으로 위를 바라 본다. 하지만 힘들고 나면 안다. 더 아래, 그 아래도 있을 수 있다는 걸.

 그저 감사하기로 했다.
 지난해, 당연히 여길만큼 오래도록 소유했던 것들에 대하여. 여전히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 그리고 이 순간에도 새롭게 피어나는 감사거리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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