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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심플 Jul 05. 2021

8) 천사라 불리는 그녀의 실체

나는 어째서 주체적이지 못했을까


나는 주변에서 착하다는 소리를 제법 듣는다. 특히 남편 지인들은 내게 천사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셋째 출산이 다가 올 무렵, 남편이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중요한 축구경기가 있는데 셋째 예정일과 겹친다고.

어이가 없는데도 나는 거절하지 못했다. 그냥 날짜가 빗겨가길 바라자고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셋째 아이가 딱 경기날 새벽 나올 채비를 했다. 그리고 경기 시간 전에 나왔다. 분만이 끝나고 입원실에 올라와 정신없이 잠들었다 깨니 남편이 할말이 있는 표정이다. 나는 남편을 배려해 먼저 축구를 다녀오라고 했다. 그리고 남편은 고맙다며 진짜로 갔다.

그날 남편은 동호회 사람들의 경이로운 눈빛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상대방의 무리한 부탁도 거절하지 못하는 내속은 곪아가고 있었다.

왜 이렇게 억울한 걸까? 이유를 찾아내겠다는 일념하에 아이들이 잠든 밤, 유튜브 정신과 채널을 뒤지고 다니다, 내가 착한아이 콤플렉스를 앓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착한아이 콤플렉스란,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착한 사람으로 남기 위해 욕구나 소망을 억압하면서 지나치게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라는 백과사전의 정의가 내가 살아가는 모토와 같다는 것에 한번 소오름.


뒤따르는 착한아이 콤플렉스 테스트에 백점만점 받은 것에 또 한번 소오름.

다들 이렇게 사는 거 아니었어?


내가 살아온 삶이 나도 모르는 시스템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었다.

그 시스템은 생각보다 마음 깊숙이 뿌리내린 채, 내 삶의 여러부분을 조종하고 있었다.

부모님과 친구 뿐 아니라, 가장 편하고 가까운 남편과 아이들에게 조차 이런 방식으로 대하고 있었다.


 수많은 정서적 문제의 원인이 그러하듯, 내가 착하려고 발악하는 이유도 결국은 그래야 사랑받을 수 있다 믿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종종 인간관계에서 혼자 잘해주고 참다가 결국 상대를 악당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곤 했다. 이번 남편의 경우도 그렇고.


 내의견을 주장하기 보다는 상대방의 선택에 따르는 방식으로 그사람과의 관계에서 더욱 돈독해지길 원했건만, 상대가 그 노력을 몰라주면 배신감에 치를 떨며 경멸하는.


뭇 사람들로부터 칭송받던 "천사"의 실체는 착하려다 결국은 나빠지고 마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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