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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심플 Sep 26. 2020

작은 친구야 안녕

 결혼전 내가 전에 없이 호들갑을 떨며 소리를 지르면 우리 엄마 아빠는 곤충이 있나보다 하셨다.
 결혼후 내가 전에 없이 호들갑을 떨며 소리를 지르면 우리 신랑은 곤충이 지나갔나 보다 했다.
 나는 곤충이 싫었다. 너무 싫어서 무섭기까지 했다. 다른 단어 뒤에 붙이는 건 잘 상상이 안되는 "혐오"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상이었다.

 우리집 첫째아이는 유난히 한군데 꽂히면 지겨워질때 까지 파고들었다. 나는 아이가 관심갖는 것들을 충분히 탐구하도록

책도 읽어주고 관련 영상도 찾아주었다.

 남자 아이들이 흔히 밟는다는 코스가 있는데 우리아이도 비슷했다. 자동차, 로봇, 상어, 사자, 공룡. 거기까진 좋았다.

 그런데 8살이 되더니 곤충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나는 실사가 들어있는 곤충책을 읽기도 힘들었다. 무당벌레 애벌레가 어떻게 생긴 줄 아는가? 모르면 절대 찾아보지 말기를.

 그러다 기어코, 아이의 입에서 그말이 나오고 말았다.
"장수풍뎅이 키우게해주세요!"
 물론 거절했다. 속상해하는 아이에게, 대신 곤충박물관에 데려가겠다고 약속했다.

 아가씨들은 놀라겠지만, 그런 곳이 존재한다. 온갖 곤충들의 표본과 실제 곤충들이 우글우글한 곳이.
게다가 입장료도 있다. 거기에서 장수풍뎅이 "체험"을 할 수 있다. 체험비도 있고.

 장수풍뎅이 성충과 애벌레를 집어보고, 손에 올려볼 수 있다.
 

 거기있는 사육사 선생님도, 우리 아이들도 모두들 사랑스런 눈으로 장수풍뎅이를 쓰다듬어 주는 걸 보고 있으니, 내가 이상한건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선생님은 요즘 장수풍뎅이가 인기있는 반려곤충이라고 하셨다.

 "반려곤충"이라니!

 총 30분 체험중 20분정도를 가만히 보고만 있으니 신랑이 나에게도 장수풍뎅이를 권했다.
 계속 보아서인지 조금 익숙해지긴 했다. 생각해 보니 해를 끼치는 곤충도 아니고, 생김새도 그렇게까지 징그럽진 않은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장수풍뎅이가 내 손에 올라오는 걸 허락했다.

 며칠 후, 둘째아이를 하원시키러 아파트 앞에 나갔다. 유치원버스가 도착하고, 환한 얼굴로 내리는 아이의 손에는 작은 플라스틱 통이 들려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장수풍뎅이가 한마리 있었다.

 "아아..."  

 나를 포함해 그걸 본 모든 엄마들의 입에서

외마디 탄식이 터져 나왔다.

"아악!"

하는 엄마도 있었다.
 내가 만약 얼마 전 곤충박물관에 가지 않았더라면 내가 제일 크게 소리를 질렀을거라 확신한다.

 사실, 지난번엔 둘째아이가 유치원에서 물고기를 받아 왔었다. (결혼과 아이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자꾸 이런 사실을 알려주게 되어 미안하다) 나는 바로 그 물고기를 지역카페에 드림했다. 아이에게 다른 장난감을 사주기로 하고.

 내게 쪼르르 달려온 둘째아이가 나를 보며 물었다.
"또 다른 사람 줄거에요?"
"...아니야."
 나는 장수풍뎅이를 우리 "반려곤충"으로 받아들였다.

 작은 통안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있는 장수풍뎅이를 보고 있자니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내 나는 인터넷으로 장수풍뎅이 사육세트를 주문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장수풍뎅이가 힘이 세다며 "힘돌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장수풍뎅이는 곤충용 젤리를 먹는데, 먹이통 안에 들은 젤리를 먹으려 머리를 박고 있을 때가 다.

 나는 그 뒷모습이 귀여워 보일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기를. 꿀벌이 꽃에 코박고 있는 뒷태도 막상보면 굉장히 귀엽다.(진심이다)

 힘돌이가 우리집에 온 뒤로 나는 모든 곤충이 조금 달리 보인다. 길을 가다 곤충이 보이면 내가 먼저 아이들을 불러 보여준다. 심지어 신기한 곤충은 사진도 찍는다. 내 휴대폰 앨범에 꽃도 아니고 나무도 아니고 곤충이 들어있다니. 가끔 이게 무슨일인가 싶다.


 내가 원했던 건 아니었지만, 아이들 덕에 싫어하고 무서워 하던 것이 하나 사라졌다. 그리고 "그들"을 그저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와 함께 이 지구를 살아가는 "반려"곤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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