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아빠
약속이 없던 오늘, 아침부터 타밀어 책 한 권을 읽다가 중간에 지쳐 역시나 버릇처럼 스크롤링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구글 포토였다.
그 안에 2020년, 아빠가 돌아가신 지 한 달 뒤에 썼던 글이 있었다. 그 글 속에는 지금의 나를 만들어낸 수많은 감정들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아빠가 나를 씻기고 밥 먹이고 자전거에 태워 학교에 데려다주던 장면, 미스 인디아 골드 자전거를 선물해 주던 장면, 동네 사람들이 “하나, 둘, 셋” 하면 달려가서 아빠 어깨 위에 올라앉던 장면, 말하기 대회를 위해 직접 스크립트를 만들어 주던 장면, 내가 이겨서 가져온 연필 상자를 세상 모두에게 자랑하고 다니던 장면들이 이어서 떠올랐다.
아빠의 민소매가 너무 부드러워 얼굴을 닦으려다 땀 냄새에 놀라 죽을 뻔했던 장면, 사고가 나 피를 흘리며 길에 앉아 있던 장면, 내가 먹어야 한다며 자기 차 한 잔은 마시지 않고 간식을 사 오던 장면, 내가 맛없는 음식을 먹는다고 눈물까지 흘리던 장면도 함께 떠올랐다. 엄마에게 화를 냈다가 노래를 불러 나를 진정시켜 주던 장면, 시험 날 아침 알림을 꺼 두고 “딸은 자야 한다”며 나를 깨우지 않아 늦게 일어난 내가 공부할 게 많다며 싸우던 장면도 있었다.
스무 살이 된 내 가방을 들고 버스에 태워 주던 장면, 그때 아빠의 근육을 자랑하듯 내가 괜히 신이 나 있던 장면, 방갈루르에서 일하다 고향에 갔다가 다시 떠날 때 버스 안에 있는 나를 보며 끝까지 손을 흔들어 주던 장면, 그리고 늘 “너는 해내려고 태어난 사람이야”라며 자꾸만 나를 응원해 주던 모습들까지.
그 글 속에는 우리 아빠를 ‘이긴 사람’으로 만들고 싶다는 내 마음도 함께 담겨 있었다. 그 글을 쓴 이유는 단 하나였다. 세상 모두에게는 돈 벌 줄 모르는 바보, 패배자처럼 보였던 우리 아빠가 사실은 이긴 사람이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분야에서의 ‘이김’에는 수많은 정의가 붙을 수 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이김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은 것 같다. 사랑을 알고, 좋은 마음으로 사는 것. 그 기준으로 보면 사랑과 정의, 그리고 좋은 마음으로 가득 찼던 우리 아빠는 나에게 인간으로서 분명히 이긴 사람이었다.
그분이 늘 나에게 했던 말들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너는 해낼 사람으로 태어났어. 네 이름을 세상이 말해야 해. 네 발로 강하게 서야 해. 누구 손도 빌리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누가 있든 떠나든 먼지를 털고 그냥 앞으로 가. 어느 나라든 용기 내서 가. 아빠가 항상 있어줄게. 모두에게 도움을 주고, 아무한테도 인상 쓰지 말고, 사랑을 나누고 모두를 우리 가족처럼 생각해야 해. 좋은 일을 많이 해야 해. 항상 겸손하게 살아야 돼”
역시나 나의 용기와 떨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마음, 그리고 내가 믿는 정의의 뒤에는 아빠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