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하루를 보내야 한다는 압박
음주에 빠졌던 대학교 초반 생활을 제외하고는 어린 시절부터 일찍 일어나는 생활이 익숙하다. 밤샘 공부는 자정을 넘기면 눈이 감겨서 일찍이 포기하고 몸이라도 편하게 침대로 향하던 성격과 습관이 아침에 눈을 뜨게 만들었다. 시험공부를 할 때면 새벽 4시에 가장 집중이 잘 되었는데 저녁부터 쭉 공부해서 새벽 4시가 아니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진정한 벼락치기 시험공부를 하곤 했다. 요즘도 평균 기상 시간은 5시이며 조금 늦으면 6시에 눈이 떠진다.
그래서 일찍 일어나면 뭘 하냐고?
가끔은 밤 사이 답장하지 못한 메시지에 일어나자마자 답장을 보낸다. 내가 뭘 하는지 모르는 친구들은 내가 보낸 답장이 새벽 5시라는 사실에 놀라며 대단하다고 한다. 자신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힘들다며 아침형 인간이 되어야겠다는 다짐도 종종 듣는다. 그런데 나는 사람들이 그렇게 놀라워하는 귀중한 아침 시간을 그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낭비한다.
5:00 a.m. 일어나자마자 좋아하는 드라마나 예능, 웹툰을 본다.
드라마 정주행을 잘하는 나는 아침부터 보기 시작하면 하루 동안 남들보다 더 많이 볼 수 있다. 웹툰도 이른 아침부터 시작해서 눈을 떼지 않으면 100편도 사나흘이면 끝낼 수 있다. 이럴 때는 잠도 늦게 잔다. 가끔 꽂히는 드라마나 웹툰이 없으면 동기 부여가 되는 사진이나 글귀를 보고 저장해둔다. 이러면 내가 아침 시간을 잘 보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 때문이다. 착각이라도 해서 드라마 보고 웹툰 보는 죄책감을 덜어내려고.
7:00 a.m. 일찍 일어난 덕분에 가끔 아침밥도 두 번씩 먹는다. 너무 빨리 나가면 아침을 파는 가게가 열지 않아서 오픈 시간까지 기다렸다 나간다. 집에 있는 음식을 먹다가 아침을 사 와서 다시 아침을 먹는다. 삼시 세끼 중 아침 식사를 제일 좋아하는 이유가 아마도 많이 먹을 수 있어서인가보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면 침대에서 그냥 뒹굴거린다. 그럴 거면 더 자는 편이 낫지 않느냐고? 나는 지금까지 아침에 늦잠 자는 희망사항을 가지고 있다. 이제는 생체 리듬이 이렇게 맞춰졌다.
아침에 어쩔 수 없이 빨리 일어나면 나는 항상 죄책감을 느낀다. 드라마나 예능을 보고 웹툰을 보고 있는 내가 한심해 보인다. 남들이 보면 빨리 일어나서 왜 저러고 있나 싶겠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차라리 잠이라도 자자 싶어서 누우면 말똥말똥 잠이 오지 않는다. 그런데 오히려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시간을 마음대로 써보자 싶은 날에는 즐거운 기분으로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활동을 한다.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건 남들도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그들이 대단하다고 말한 포인트일 것이다. 매일 이렇게 하면 엄청 성장하겠지 싶은 자기 계발 활동.
가끔 공부를 한다. 종이에 글자 쓰는 걸 좋아해서 한자도 쓰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서 전날 쓰지 못한 일기도 일기장에 정성스레 적는다. 좋아하는 영화도 영어 자막으로 보고 책도 읽는다. 그리고 일찍 일어나면 샤워를 매우 느긋하게 할 수 있다. 아침을 사러 갈 때면 텅 빈 길거리를 거닐며 하늘도 보고 꽃도 보고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
왕복 한 시간 반이 걸리는 요가원에서 화요일마다 6시 30분에 호흡 수련이 있다. 5시에 일어나는 나는 거리가 조금 되어도 무리 없이 갈 수 있다. 빨리 일어나니까 가능한 일이지만 고백하자면 지금까지 두 번갔다.
시장에서 장을 보면 신선한 채소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그래서 가끔 채소를 사 오곤 한다. 마음이 이끌리면 서툴지만 중국 와서 제법 익숙해진 레시피로 요리를 한다. 그리고 맛있고 배부르게 먹는다.
이 글을 쓴 이유가 뭐였더라
사실 글을 쓴 이유는 아침에 빨리 일어나도 시간을 낭비하며 보낼 수 있으니 자신에게 맞는 사이클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할 참이었다. 아침에 빨리 일어나서 시간을 낭비하는 예가 나 자신이었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아침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나에게 화살을 돌려 뾰족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침마다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 나 자신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생산적인 활동을 해내야만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이 그렇지 못한 나를 깎아내리고 있었다. 드라마와 예능을 보는 시간이 낭비가 아니라 내가 죄책감을 느끼는 시간이 낭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간을 통해서 재미를 느끼고 하루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시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긍정적인 시간인가. 다만 내가 죄책감을 느끼면서 시간을 보내거나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을 뿐이다. 완벽하게 생산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죄책감으로 이어지고 나를 힘들게 했다는 걸 글을 쓰며 깨달았다.
빨리 일어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무얼 하느냐가 중요하다
속도보다 방향
전혀 부러울 것 없는데 내가 일찍 일어난다는 사실을 안 친구들은 부지런하다며 부럽다고 한다. 일찍 일어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일찍 일어나서 무얼 하는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때문에 나는 낮잠을 잔다. 그러고 보면 내가 하루 동안 힘을 쏟을 수 있는 적당한 시간이 있는 것 같다. 이 시간을 조금씩 넓히기 위해 매일 노력하고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는 걸 깨닫는 중이다. 나는 이걸 하루아침에 다 이루기 위해 욕심을 내고 그런 부담감이 스스로 자책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나는 일찍 성공한 사람들이 부러웠다. 나는 방황하며 헤매고 있는데 내가 바라본 그들은 반짝거리며 빛이 났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는 걸까, 이 사회에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찾을 수 있는 걸까, 돈은 많이 벌 수 있는 걸까 자괴감에 빠진 날도 여럿이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서 느끼는 감정이 내 인생의 축소판이었다. 하루를 빨리 시작했다고 완벽한 날이 되는 것도 아니며 완벽한 하루를 보냈다고 내일도 완벽하다는 보장도 없었다. 하루를 욕심내서 완벽하게 보내려고 조급해하기보다는 균형을 잡아가며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로 적절히 채워나가는 일, 나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을 바라보고 오로지 나의 속도에 집중하는 일이 진정 내가 집중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야 지치지 않고 내일을 시작할 수 있으니까. 완벽한 하루보다 내 속도와 방향 안에서 집중하고 노력하는 하루가 더 소중하다는 걸 지금 글을 쓰며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