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비건 음식
인도에서 비건을 처음 알게 되다
인도에서 비건을 처음 접하고 아래의 글을 브런치에 적었다. 그때부터 나는 비건이라는 새로운 삶의 형태에 흥미를 느꼈고 지금까지 쭉 이어지고 있다. 태국에서는 인도와는 다른 종류의 채식 요리를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인도에서 비건을 처음 접한 건 음식을 통해서였지만 나에게 끼친 영향은 음식으로 한정되지 않았다. 비건은 내 앞에 놓인 음식으로 시작해서 환경과 사회까지 이어나갈 수 있는 작지만 단단한 생활 방식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인도에서는 남부 지방인 마이소르에서 지냈다. 이 지역은 인도에서도 채식주의자 비율이 높은 편이다. 인도 북부를 여행할 때만 해도 매일 탄두리 치킨을 먹고 길거리에서 라씨(인도 요거트 음료)를 마시며 양고기나 닭고기를 먹는 게 일상이었는데 남부로 오니 전혀 다른 식탁 문화가 있어서 놀라웠다. 마이소르에서도 특히나 요가로 유명한 마을에 있었기 때문에 고기를 보지 못했고 비건 문화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플라스틱 봉투를 사용하지 않았다. 나는 스며들듯이 그들의 음식과 삶에 익숙해졌다.
인도 마이소르와 다르게 태국 치앙마이에서는 고기도 팔고 플라스틱 봉투도 사용 중이었다. 동시에 비건 음식과 친환경 제품도 많고 다양했다. 인도에서는 비건 음식이 맛있기는 했지만 기름을 많이 사용해서 건강하다는 느낌은 적었다. 그런데 태국에서는 맛있고 건강한 비건 음식이 많았다. 대체로 찌고 볶았지만 식재료와 요리 방법이 다양해서 하루도 질린 적 없이 잘 먹고 다녔다. 특히 태국 비건 음식을 탐방하던 중에 비건 케이크라는 신세계를 발견하였는데 지금까지 나의 확고한 디저트 입맛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원래 꾸덕하고 바삭한 식감을 좋아해서 디저트 중에도 카카오 함유량이 높은 꾸덕한 브라우니, 크런치한 쿠키, 바삭한 타르트지에 올려진 진한 초콜릿 그리고 버터를 듬뿍 넣은 스콘을 주로 디저트로 먹었다. 폭신한 카스텔라나 크림이 들어간 케이크는 찾지 않았다. 그런데 치앙마이에서 다들 코코넛 케이크를 먹어보라고 권하기에 한번 먹어볼까 하고 시도해보았는데, 유레카! 코코넛 크림은 느끼하지 않았고 시트 또한 폭신하다기보다 꾸덕하며 씹히는 식감이 아주 으뜸이었다.
서울에서도 이어가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비건에 관한 관심을 꾸준히 이어갔다. 친구들과 만날 때면 채식 음식점에 가보자고 하여 서울의 여러 채식 음식점에 갔고 채식이라면 푸른 잎만 먹는 거 아니냐며 거부감을 갖던 동생에게 맛있는 채식 음식을 맛 보여주어 채식에 대한 편견을 바꾸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비건은 아니지만 비건이 담고 있는 생활 철학이 마음에 들어 채식한끼라는 비건 모임에도 나갔다. 지금은 채식한끼의 미어캐츠 멤버이기도 하다.
베를린에서 비건 음식을 경험하다
왜 베를린에 가냐고 물어보면 담담하게 일 구하고 살기 위해 간다고 말했지만 베를린에 깔린 자유롭고 예술적인 분위기를 흠뻑 맞고 싶었다. 그래서 베를린에 왔고 이튿날 미리 구글맵에 체크해둔 비건 카페를 탐방하기 시작했다.
역 안에 있는 비건 카페, Cafe Haferkater
길치의 필수 앱인 구글맵을 켜고 실수 없이 찾아가서 몇 걸음이면 도착할 거 같아 뿌듯했는데 이런! 지도에 표시된 자리에 가보니 보이지 않았다. 분명 역 주변과 가까워서 몇 번이고 돌아보아도 카페는 없었다. 알고 보니 카페는 역 안에 있었다. 서울에서는 채식 식당이 특별한 메뉴를 파는 곳으로 인식되어 있었고 대부분 분위기가 좋은 가게로 자리 잡고 있다. 서울에서는 특별 메뉴였던 채식 메뉴를 여기서는 간편하게 역 안에서 테이크아웃을 해간다니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중에 길을 걷다 보니 많은 식당과 카페에서 비건 메뉴를 선택할 수 있어서 굳이 비건 식당을 골라가야 할 필요는 없었다.
카페에서는 비건 랩과 함께 오트밀 보울과 각종 디저트를 판매하고 있었는데 나는 비건 랩을 선택하여 먹었다.
한국 사람들에게도 이미 소문난 카페, Cafe the Barn
이미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도 유명해서 앉아 있는 동안에도 한국 사람들을 여러 명 보았다. 예전이라면 이미 유명한 곳에 오다니 알려지지 않은 로컬 스팟을 찾을 거야! 라며 혼자 특별하고 까다로운 여행객으로 발길을 돌렸겠지만 이제는 내가 잘 찾았구나 하며 기분이 좋았다. 카페에 들어서자 작은 공간에 유난히 아늑한 분위기가 풍겼다. 처음에는 한적했지만 이내 사람들로 북적이며 테이크 아웃을 해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비건 디저트뿐만 아니라 일반 디저트도 함께 있었는데 당근 케이크가 한눈에 들어왔다. 먹음직스러운 당근 케이크를 뒤로하고 건 디저트를 먹어야겠다는 결심이 앞서서 비건 초콜릿 컵케이크를 주문했다.
컵케이크 위를 덮고 있는 초콜릿은 예상외로 초콜릿 밀도가 높았고 크림보다는 말랑한 쿠키 같았다. 버터 쿠키처럼 바삭한 쿠키가 아니라 촉촉한 초코칩 같은 말랑한 쿠키가 조금 쫀득한 느낌이라고 하면 조금 설명이 될 것 같다. 컵케이크 빵 부분은 일반 컵케이크와 다르지 않게 머핀 빵 같은 폭신한 식감에 많이 달지 않은 카스텔라 같았다.
추워서 우연히 들어간 카페, Cafe Tanne B
마르크트 할레 노인 마켓을 가는 중에 해가 비추는 하루 전과는 다르게 햇빛 한줄기 보이지 않았다. 아침을 든든히 챙겨 먹고 마켓에 가서 디저트를 먹을 생각이었는데 짧은 10분 거리가 칼바람에 맞서니 구만리처럼 멀어 보였다. 5분 정도 걷다가 눈 앞에 반짝거리는 분홍빛의 카페를 보자마자 냉큼 들어갔다. 우연히 들어온 카페에서도 비건 음식을 팔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어제 맛있게 먹었던 비건 랩이 생각나고 추위에 떨며 칼로리 소모도 했으니 랩을 하나 주문했다.
가격은 전 날 먹은 랩보다 1500원가량 저렴했는데 맛은 비슷했다. 비건 랩은 소스가 많이 들어있는데 맛이 강하다는 건 아니다. 각종 채소와 더불어 메인 재료로는 아보카도와 후무스를 사용하는 것 같았다. 사진을 찍으면서 마트 물가가 저렴한 독일에서는 이 정도는 만들어 먹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이내 접었다.
비건 식품을 파는 마켓, Veganz
익히 들어서 알고 있던 비건 마켓을 우연히 일반 마트 코너에서 발견했다. 각종 비건 음식과 글루텐 프리 제품이 있었다. 일반 제품보다는 약간씩 비쌌다. 장바구니를 웬만큼 채우고 난 후에 발견한 코너라서 간식으로 먹을 비건 프로틴 바에 눈길이 갔다. 달콤한 땅콩이라고 적혀있는 비건 프로틴 바를 구매하자마자 먹어보았는데 달콤함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흡사 칼로리바란스 같았다.
베를린 영상 기록
보통 식당에 가도 채식을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은 개인의 다양한 취향을 존중하고 여러 사회 문제에 적극 공감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실제로 어떨지 모르겠지만 채식 선택지가 다양한 베를린에서 생활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