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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 록 Feb 07. 2016

여행하는 두 가지 길

혼자 가는 빠른 길과 함께 가는 먼 길

주절주절 일상

기상 시간은 5시 30분. 어두운 새벽에 잠은 오지 않고 그냥 일어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일기를 쓰며 아침을 간단하게 먹었다. 샤워까지 마치니 친구도 일어나서 아침을 먹었는데 오늘은 피곤하다고 하여 혼자 나왔다. 매일같이 비바람이 부는 날씨 었는데 오늘은 해가 쨍쨍하게 나서 내 기분도 덩달아 좋아졌다. S bahn를 타러 가는 길에 Leimen 동네를 돌아다니며 구김 없는 기분을 만끽했다. 그리고 벼룩시장이 열렸다는 곳을 가는데 길을 찾을 수가 없어서 그냥 무작정 걸었다. 걷다 보니 골목들이 너무 이뻐서 골목들 위주로 걷기 시작했다. 어느 골목은 낡아 보이고 어느 골목은 산토리니같이 새하얗고 어느 골목은 알록달록했다. 바로 옆 골목인데도 모두 다르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러다가 어느 한 골목 끝에 보이는 가게가 눈에 들어와 셔터를 누르고 다가갔는데, 친구와 어제 먹은 바나나 도넛을 파는 또 다른 지점의 카페였다. 관광객한테 유명한지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나도 사람들 사이에 껴서 안으로 들어갔다. 어제 갔던 테이크 아웃 전문 지점과는 다르게 앉아서 먹을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있었다. 내가 앉은자리에서는 큰 창을 통해 바깥도 보여 풍경을 즐기기도 했다. 바깥에 나와서는 햇살이 비추는 날씨와 상쾌한 공기를 즐겼다. 그러다가 어제 친구가 Cafe Nerd에서 당근케이크를 먹고 싶어 했는데 팔지 않아 먹지 못하였던 것이 기억나 Cafe Nerd에 들렸다. 날이 좋아서인지 토요일이어서인지 사람들로 북적였다. 바깥 자리까지 비어있는 곳이 없었다. 나는 또 그 틈에 껴서 당근 케이크를 주문하여 봉지에 고이 들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도 역시 날이 너무 좋아 이번에는 사진을 찍으며 걷고 있는데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시던 할아버지가 내가 가는 방향으로 방향을 틀어 오셔서 말을 걸었다. 처음 질문은 왜 사진을 찍느냐는 것이었고 나는 어제까지 날이 안 좋았는데 날이 좋아져서 찍고 있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통 설명을 하며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였고 백발의 귀여운 할아버지를 사진기에 담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할아버지와 사진을 찍으며 기록을 남기고 싶었던 이유는 할아버지여서이다. 20대인 나도 시간이 흐르는 만큼 경험이 쌓여갔고 동시에 10대보다는 호기심이 줄고 편견 또한 쌓여가는데 그보다 훨씬 오래 사신 할아버지는 어떤 호기심과 용기로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을지 궁금하였다. 유쾌했던 그 순간의 말소리를 느끼며 앞으로 내가 스스로 깨달아가고 싶다. 어쩌면 큰 용기가 필요하지 않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가볍게! 진심으로! 

 

새벽에 일어나 시리얼과 함께 글쓰기 & 홀로 나선 길 우연히 찾아간 카페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그 틈속에서 나는 빵과 함께 굴라쉬를 먹었다.
 Cafe Gundel &  먹음직스러운 바나나 도넛
 우연히 찾아간 카페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그 틈속에서 나는 빵과 함께 굴라쉬를 먹었다.


광장에 있는 회전 목마
햇살이 좋아 사람들이 바깥까지 자리를 잡고 있던 Cafe Nerd & 당근케이크
나에게 말을 걸어주셨던 할아버지와의 짧은 대화를 한 시간
이름 모를 열매 & 친구가 사는 기숙사 도착
파티에 가다

오후 10시부터 시작되는 친구가 다니는 학교에서 주최한 종강 파티에 갔다. 아침형 인간인 나에게 종강 파티는 잠을 잘 시간이었지만 DJ도 부르고 술도 파는 한국의 클럽 같은 것이라고 하여 호기심이 생겼다. 집으로 돌아온 후 친구는 낮잠을 잤고 나는 친구가 자는 동안 모던 패밀리를 보면서 휴식을 취했다. 모던 패밀리를 사랑한다. 친구가 깨자 우리는 간단히 요기를 했고 1시간에 한 번 있는 기차 시간에 맞춰 9시 34분 기차를 타기 위해 나갔다. 그런데 시간을 잘못 알았고 5분이 지연되면서 우리는 꼼짝없이 30분을 기다려야 했다. 나는 모던 패밀리를 시청할 때부터 졸리고 피곤했으나 잠이 오지 않아 괴로웠고 기차를 기다리는 30분은 나에게 정말 고역이었다. 그냥 돌아가서 잠을 자고 싶었다. 그런데 친구와 약속한 시간이었고 우리는 파티에 가야만 했다. 그렇게 피곤함을 뚫고 우리는 파티에 갔다. 파티에 도착해서도 큰 노랫소리에도 불구하고 한 동안은 졸려서 눈이 감길 지경이었다. 그래도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생들과 그들의 친구들만 초대되었기 때문에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고 위험한 일도 생기지 않을 거라는 안심이 들어 더 편하게 있을 수 있었다. 그렇게 점점 파티가 흥이 올라서 모든 공간에 틈이 보이지 않을 만큼 붐볐다. 대학교 파티가 점차 클럽으로 변해갔다. 생각보다 충격적이진 않았고 그냥 여기도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충격적이었던 것은 의외로 강남 스타일이 나왔을 때의 반응이었다. 친구와 나는 왠지 모르게 한국어 노래가 나온다는 것이 어색하여 계단 위에서 구경만 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정말 뜨겁고 열광적이었다. 싸이가 이렇게나 유명한 사람이라는 걸 지금에서야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한국인은 우리 둘 뿐이고 우리를 제외한 모든 외국인이 한국 가사를 따라 하며 싸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을 보고는 싸이가 한국의 이미지를 몇 단계는 긍정적으로 만들어주었다고 확신했다. 그 후로도 우리는 나름 신나게 놀았고 새벽 3시에 끝이 났다. 그런데 그때부터가 문제였다. 나이트 버스가 있어서 다행히도 중앙역까지는 버스를 타고 갈 수 있었지만 기차는 5시가 첫 차라 꼼짝없이 기다려야 했다. 우리는 2시간을 기다릴 바에야 2시간을 걷자며 바로 구글맵에 길을 찾고는 걷기 시작하였다. 기차 정거장으로는 두 정거장에 불과했지만 걸으면 2시간이 걸린다고 나와서 우리는 빨리 걸으면 시간을 단축할 수도 있으니 빨리 걷자고 하였다. 처음에는 걸을만하였다. 나름 걷는 길도 가로등에 아름다웠고 생각지도 못한 야경을 계속 보고 있자니 기분도 좋았다. 그런데 1시간쯤 걸었더니 가로등이 없는 길도 나오고 옆으로는 차들이 쌩쌩 지나가고 어떤 차는 묻지도 않은 우리에게 태워준다고 하는 등 우리가 예상치 못한 일들이 발생하였다. 가로등이 없는 길에서는 원래 서있던 나무마저 공포로 다가왔다. 자연이 주는 웅장함이 어둠을 만나니 그 앞에 있는 나는 한 없이 나약해졌다. 친구와 서로 의지하며 걷다가 마지막 15분에 또다시 난관에 봉착했다. 한 10분 정도 걸어야 하는 길이 깜깜하다 못해 앞이 안 보일 지경이었고 카메라에 내장돼있는 Flash를 켜니 허허벌판인 주변이 너무 무서워서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그 길이 아니면 다른 길을 돌고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라 우리는 그냥 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겨우 겨우 새벽 5시에 도착할 수 있었고 나는 세 시간 남짓 자고 일어나 다시 어제를 기억하며 글을 적고 있다. 만약 우리가 파티 입장료와 간단한 음료만 마시자며 가져온 10유로가 아닌 더 많은 돈이 있었다면? 히치 하이킹을 할 용기가 있었다면? 혼자였다면? 2시간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을까? 돈이 많았다면 실내에 들어가 첫 차를 기다렸을 것이고 히치 하이킹으로 30분 안팎으로 돌아왔을 것이며 운이 좋지 않았다면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겠지만 혼자였다면 파티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함께라서 가능했던 일이다. 또 함께 걸을 때도 무한한 행운이 있어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도착하니 모든 게 감사하게 느껴졌다. 장난 반 진담 반으로 우리는 정말 죽을 뻔했던 것이다. 어둠에서 우리를 보지 못하였을 자동차에 의해서, 나쁜 마음을 가지고 접근했을 사람들에 의해서, 내면의 고통과 나약함으로 가지 못하였을 길이나 건강하지 못한 육체, 이 모든 것은 운이 나쁘면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운이 좋았기 때문에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행운에 감사하며 함께 걸었던 내 친구 다솜이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인기 많은 Pocket Coffee 한 잔과 달콤한 당근 케이크
뜻밖의 야경 구경과 무서워서 도망쳤던 길. 다시 갈 수 있던 용기는 함께였기 때문.


홀로 또 함께

오전 여행은 혼자 갔기 때문에 누구와 발을 맞출 필요도 누구와 의견을 조율할 필요도 없었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가고 싶은 곳을 가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본 것에 비해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나는 골목 위주로 다녔고 아름답고 이쁜 것들을 한 마디로 족집게 강의처럼 쏙쏙 보고 돌아왔다. 내 기분대로 내 발걸음대로 편하고 행복했다. 오후 여행은 완전히 달랐다. 내가 힘들어도 쉽게 힘들다고 멈추자고 말할 수 없었다. 내가 더 빨리 가고 싶어도 상대방을 무작정 끌고 갈 수도 없었다. 함께해서 느리지만 함께해서 행복했던 여행길이었다.


골목


낮과 밤의 하이델베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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