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에서 자란 마음

가을에는 더불어 살았다

by 홍시궁

어릴 적 시골에서 가을의 생활은 공동체적인 삶의 원형질이 가득했다. 안동김씨 동족촌이어서 서로가 서로와 혈연으로 이어진 까닭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가을에 필요한 노동의 양과 질에 따라 지혜롭게 자아낸 삶의 방편이었다고 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추석을 지나면서 고구마 캐기로부터 시작되는 온갖 추수의 노동은 혼자 몸으로 받아내기에는 가없는 고통이었다. 밭의것들은 그나마 다소 쉬웠다 하더라도 벼베기로부터 타작으로 이어지는 한 달 여 논것들의 노동은 곁을 내어주는 일꾼과 함께 하지 않으면 해내기가 수월치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족들과, 때로는 옆집, 윗집과 겨끔내기로 품앗이를 하고 너나들이를 하는 등 상부상조의 노동 방식이 삶의 지혜로 자리잡았다.


가을날 공동체의 삶은 벌초(伐草)로부터 시작되었다. 초가을에 들면 추석 보름 전쯤에 집안 별로 벌초를 했는데, 그날은 타지에 사는 후손들까지 모두 한데 모이는 집안의 가장 큰 일이었다. 집안 남자들은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12대조(祖) 조상의 묘소들을 벌초하느라 진땀을 흘렸고, 함께 동행했던 어린 꼬맹이 후손들은 조상님들 무덤 근처에서 노느라 여념이 없었다. 집안 여자들은 80여 명 남짓한 벌초꾼들을 위해 가마솥에 밥하랴 추어탕 끓이랴 치마바람이 잠들 새가 없었다.

그렇게 온 집안을 뒤집어놓던 벌초는 조상의 묘소 관리라는 공동의 노동이라는 의미에 더해 오래간만에 피붙이들이 모여서 서로 얼굴을 익히고 관계까지 넓히는, 그래서 후대 자손들에까지 집안의 관계가 이어지도록 하려는 기대와 염원이 담긴 1년 중 가장 중요한 모임이었다.

성석제가 쓴 <처삼촌 묘 벌초하기>라는 장편(掌篇)소설에는 우리 옛사람들이 벌초를 얼마나 중요시했는지가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묘사되어 있다. 성석제는 우리 생활에서 흔히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을 특유의 재미있는 필치로 익살스럽게 그려서 찾아서 읽곤 했는데, 이 소설도 처가에 얹혀사는 주인공이 처가의 선산 벌초로 인해 벌어지는 해프닝을 해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주인공 동순은 실직 후 처가 문중의 선산 밑 땅을 빌려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선산을 방문하겠다는 처남의 전화를 받고 밥값은 해야겠다는 생각에 큰 부담을 갖게 된다. 벌초 일에 서툴러서 벌초 대행하는 데를 이리저리 찾아보지만 여의치 않자, 본인이 직접 선산의 직계 자손인 처삼촌 묘를 힘들게 벌초를 끝낸다. 하지만 처남이 선산의 방문을 취소한다고 전화를 한 뒤 그 뒤로도 오지 않자 허탈감에 빠지는 상황을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실직한 주인공이 먹고살기 위해 처가의 도움을 받고 살아야 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이 벌초라는 소재를 통해 가벼운 웃음으로 형상화되어 주제가 무겁게 느껴지지 않으면서 웃음을 주고 있다.

벌초로부터 시작되어 타작 등 공동체 방식으로 이어지던 가을의 노동이 끝나면 온 마을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희추(喜秋)’라는 마을잔치를 벌였다. 마을에 있는 재실(齋室) 한 곳을 빌려서 술과 고기, 떡, 햇과일 등을 어울려 먹고 마시면서 춤도 추고 농악도 하며 하루 종일 흥건하게 놀았다. 어른들은 한 잔 막걸리와 한 자락 노래에 녹아들며 가을 노동의 여독을 씻어내렸고, 아이들은 재실 주변에서 아래뜸, 위뜸으로 편을 나누어 놀이를 하며 더불어 사는 방식과 협동하는 마음을 익히고 담았다.

그런 가을의 삶과 놀이를 통해 스며든 삶의 결이 나를 옛 갈매동으로 이끌었고, 어릴 적 기억과 비슷한 결을 지녔던 갈매동의 삶에 편안히 깃들 수 있었다. 갈매보금자리지구로 재개발되면서 옛 갈매동의 흥취와 맛이 사라져서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그런 삶의 결을 책방에서 협동조합으로나마 이어가고 있음이 이 가을 내 삶의 고혹적인 단풍으로 물들고 있으리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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