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소믈리에 x 한의사가 들려주는 차 이야기
얼그레이가 뭐야?
"얼그레이가 뭐야?"
"음... 차 아냐? 홍차?"
"차구나. 그럼 난 얼그레이로 할래."
이것은 얼마 전에 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커피 주문을 하려고 줄을 서 있다가 들은, 두 남성분들께서 나눈 대화랍니다. 여기는 다방도 티룸도 아니었답니다. 예전에도 작은 카페들이나 큰 프랜차이즈 카페들이 차(Tea) 메뉴를 몇 개씩은 갖추고 있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차가 더 대중화(?)되면서 차 메뉴가 늘어나거나 차를 응용한 새 메뉴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이미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차(茶)는 익숙한 존재가 아니었던가요. "차 한잔 하실래요?", "차 마시러 갈래?"라는 말을 오래전부터 생활 속에서 써 왔으니까요.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저 남성분들의 대화처럼 차에 관해서 잘 알고 있느냐에 관해서는 의문이 듭니다. 우리가 가장 자주 먹는 쌀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쌀에는 도정의 정도에 따라 백미(흰쌀)와 현미가 있다는 것도 알고, 우리나라에서 먹는 쌀은 쫀득쫀득한 품종이고(그 품종의 이름까지 댈 수는 없더라도) 동남아나 미국, 인도 등에 가면 밥이 풀풀 날린다는 정도는 알고 있지 않나요? 반면에 '차'라고 했을 때에는, 막연하게 여러 종류의 차들 혹은 음료들을 중구난방으로 떠올리기 쉽습니다(물론 이미 차에 관해 박식하신 분들은 제외하고 말입니다). 우리가 보통 '차'를 마시러 가자고 할 때에는, 그게 꼭 '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이게 차라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차'라고 하면 보통 오미자차, 한라봉차, 녹차, 홍차를 구분 짓지 않고 말합니다. 그리고 한방차인 쌍화차, 대추차 등도 있죠. 그렇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오미자차, 한라봉차, 쌍화차, 대추차는 '차'가 아니랍니다. 그래서 김숙 씨가 두 프랑스 여성분들께 한라봉 티를 대접했을 때 "이게 차라고?"라는 반응이 나왔던 것이죠. 아마도 모든 분들이 차의 종류나 품종에 관해 제대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특히 우리가 떠올리는 '차'의 이미지와 다른 나라 사람들이 떠올리는 '차'의 이미지가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분들 또한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도 그랬으니까요.
알고 계시는 차(Tea)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얼마 전 차에 대해서 깊게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한국 티소믈리에 연구원의 '티소믈리에 과정'을 이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 사진은 첫 수업 시작 전 오리엔테이션을 할 때 적은 노트랍니다. 강사분께서 "알고 계시는, 생각나는 차 이름을 모두 적어보세요."라고 하셔서 이름이 생각나는 차를 머리를 쥐어짜 내며 모두 다 써 내려갔습니다. 그렇지만 알고 보니 제가 쓴 차들 대부분이 '차'가 아니었다는 사실. 나름 차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었는데, 하나도 알지는 못하고 마셨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던 날입니다.
국어사전에서도 정의 내리고 있듯이 '차'의 기본 의미는 '차나무의 잎을 따서 만든 음료의 재료 혹은 그것을 달이거나 우린 음료'랍니다. 여기에서 차나무는 '카멜리아 시넨시스(Camellia sinensis)'라는 학명을 가지고 있는 식물이며 중국이 원산지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카멜리아 시넨시스 시넨시스, 카멜리아 시넨시스 아사미카 등 여러 품종이 재배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차(Tea)의 의미입니다. 그 외의 '잎, 줄기, 뿌리, 열매 따위를 가공하여 달이거나 우려서 마시는 음료', 오미자차나 대추차 같은 것들은 '인퓨전(infusion)'이나 '약탕'이라는 뜻의 '티잰(tisane)'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답니다.
어디까지 '차'야?
차나무에서 수확된 찻잎들은 어떻게 산화되고 발효됐는지 등의 가공 과정에 따라 백차, 녹차, 홍차, 청차, 흑차, 황차로 분류됩니다. 이 중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게 녹차가 아닐까 싶어요. 오설록이라는 유명한 차 브랜드도 있고요. 그리고 그 다음으로 익숙한 게 아마도 홍차일 것 같습니다. 다질링(Darjeeling), 아쌈(Assam), 우바(Uva) 등이 홍차에 속합니다. 얼그레이(Earl grey)나 잉글리시 브랙퍼스트(English breakfast), 실론 티(Ceylon tea)는 각기 다른 홍차를 혼합해서 만들거나 홍차에 향을 더해서 만든 차랍니다. 서양 사람들은 '차'라고 하면 대개 홍차를 떠올리죠.
청차는 '우롱차'라고 말씀드리면 "아~"하실 거예요. 특히 대만에서는 고품질의 청차(우롱차)가 많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최근 지방분해 효과가 있어서 다이어트 차로 인기를 얻고 있는 보이차는 흑차(후 발효차)의 한 종류입니다. 실제로 보이차는 중국 윈난성 남서부의 푸얼시(보이시)에서 생산되고 유통되는 흑차만을 지칭하는 용어이고요. 황차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데, 흑차처럼 발효과정을 거치되 경미하게 발효시킨 차랍니다. 군산 은침이라는 황차는 중국 내에서도 예약 주문하지 않으면 구할 수 없는 희귀한 차고요. 백차는 어린잎을 따서 인위적으로 산화시키거나 발효시키지 않고 그대로 건조하여서 만든 차입니다. 백호은침이라는 백차는 백차 중에서도 가장 비싼 차로 알려져 있죠.
홍차에는 카페인이 많고, 보이차에는 카페인이 없다?
앞서 이야기한 백차, 녹차, 홍차, 황차, 흑차, 청차, 이 6가지 종류의 차들은 모두 차나무(카멜리아 시넨시스)에서 수확한 잎으로 만들어집니다. 따라서 주요 성분들은 모두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주요 성분에는 항산화 작용을 하는 폴리페놀의 일종으로 성인병 예방과 암 예방 등의 기능을 가진 카테킨, 감칠맛을 내는 아미노산인 테아닌, 글루탐산, 아스파르트산, 아르기닌, 그리고 비타민, 무기질, 카페인 등이 있습니다.
이 중 차에 들어있는 카페인에 관한 몇 가지 오해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홍차에는 카페인이 많다'입니다. 특히 쓴 맛이 강할수록, 차 색깔이 진할수록 카페인이 많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카페인이 약간 쓴 맛을 내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쓴맛에 영향을 더 많이 주는 성분은 카테킨이랍니다. 특히 에스테르형 카테킨은 찻잎을 수확하는 계절에 따라 그 함유량이 달라집니다. 반면에 카페인은 색이나 냄새가 없기 때문에 차의 색깔이 진하고 연하고 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답니다.
또한 찻잎 100g에는 약 2~3%의 카페인이 함유되어 있지만 실제로 한 번 마실 때의 차의 양은 1~2g 정도여서 실제 차 한잔으로 섭취하는 카페인은 20~40mg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양은 커피 한잔과 비교하면 절반 이하 수준입니다. 게다가 차에 함유된 카페인은 커피에 함유된 카페인에 비해 흡수 속도가 느리고 그 생리 작용도 훨씬 더 부드럽게 진행되기 때문에 커피를 마실 때보다 카페인의 강도가 작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홍차 이외의 녹차, 황차, 청차, 심지어 백차와 흑차(보이차)에도 모두 카페인은 존재하기 때문에 카페인에 민감하신 분들은 낮시간 동안에만 섭취하거나(수면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 카페인이 없는 허브 인퓨전이나 꽃차, 곡물 인퓨전으로 대체하시는 것을 권해드립니다(건강상의 이유인 경우).
다양하게 즐기는 허브 인퓨전(허브티)
허브 인퓨전 중에서도 카페인을 가진 허브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마테(mate)입니다. 남미에서는 마테차를 즐겨 마시는데, 마테차는 커피, 녹차와 함께 '세계 3대 차'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마테에는 비타민, 철분, 칼슘 등이 영양소가 풍부해 육체적 피로를 풀어주는 건강 차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지방 분해를 도와주는 다이어트 차로 더 유명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마테에는 카페인이 함유되어 있으므로 카페인을 피하고 싶으신 분들은 이 점을 유의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허브에는 다양한 약리적인 효능이 있기 때문에 대부분 몸에 이롭게 작용하지만 특별한 컨디션, 예를 들어 임신 중이거나 약물을 복용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허브의 주의 사항을 확인하고 드시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임신 중이시거나 수유 중이시라면 안젤리카, 홍화, 시나몬, 주니퍼베리, 생강, 세이지, 타임, 감초, 레몬그라스, 로즈마리, 마테는 피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국화과 식물에 알레르기가 있으신 분들은 캐모마일을 꼭 피하셔야 하고 그 외에도 홍화, 민들레 잎, 민들레 뿌리, 우엉, 밀크시슬은 주의하셔야 합니다. 또한 감초가 들어간 인퓨전이나 티잰은 고혈압이 있으신 분, 신장 질환, 간 질환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유의해서 음용하셔야 합니다.
그 외에 특별히 약리 작용이 강하지 않은 대부분의 허브들은 플라보노이드, 타닌, 비타민, 미네랄 등 몸에 유익한 성분들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건강하게 그리고 편하게 마실 수 있습니다. 그 중 루이보스는 색과 향이 홍차와 비슷해서 홍차 대신으로 많이 마시는 차입니다. 특히 홍차를 마시고 싶지만 카페인이 걱정될 때 선택하기 좋은 차죠. 서양에서는 "red tea"라고 부르기도 할 정도로 매우 대중적인 차랍니다. 게다가 항산화 기능이 뛰어나고 아토피 피부염에도 좋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히비스커스도 차로 우리면 루이보스처럼 붉은빛을 띠는데, 안토시아닌이 풍부해 눈의 피로를 풀어주는데 좋습니다. 갈증 해소에도 좋아서 여름철에 마시기 좋은 차이며, 최근 고혈압에 좋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내 몸에 맞게 즐기는 한방차
한약재를 이용한 '한방차'도 허브 인퓨전에 속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약리적인 성질 때문에 부작용이나 체질을 고려해서 음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체질에 따른 대표적인 차 몇 가지를 들자면, 우선 목 체질(태음인)에게 잘 맞는 차로 국화차가 있습니다. 국화는 머리와 눈을 맑게 해주는 효능이 있어서 특히 수험생이나 직장인의 피로를 풀어주기에 좋은 차입니다. 점심 식사 이후에 머리가 무거워지고 눈이 침침해지는 늦은 오후에 마시기 좋은 차라서 "오후의 홍차"대신 "오후의 국화차"로 기억하셔도 좋을 듯합니다. 국화과 허브로 앞서 잠시 언급한 캐모마일(Chamomile)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국화와는 생긴 것도 학명도 다르답니다(국화: Chrysanthemi Flos, 캐모마일: Matricaria recutita). 캐모마일은 소화기 질환에 효과가 있어서 식후에 복부 팽만감과 속 쓰림, 소화불량을 완화해주는 허브로 알려져 있습니다.
금 체질(태양인)에게는 메밀차가 좋답니다. 볶은 메밀에 따뜻한 물만 부으면 구수한 메밀차가 완성됩니다. 장의 노폐물과 열을 내려주는 효과가 있어서 장에 가스가 많이 차고 소화가 잘 되지 않는 분에게 좋답니다. 그렇지만 메밀의 찬 성질 때문에 설사가 잦은 분께는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소화기를 따뜻하게 해주는 생강차는 수 체질(소음인)에게 잘 맞습니다. 귀 밑에 붙이는 약이 없던 시절에는 멀미를 할 때 생강을 입에 물게 했고, 입덧에도 생강이 효과가 좋아서 입덧을 하는 초기 임신부들에게 인기가 좋습니다. 또한 감기를 예방하거나 초기 감기에 효과가 좋다고도 알려져 있는데, 오히려 너무 진행되어 열이 많이 나는 감기에는 역효과가 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열이 많은 성질 때문에 급성 염증 질환이나 위염, 위궤양이 있을 때에는 주의해야 합니다.
흔히 물처럼 마시는 구기자차는 토 체질(소양인)에게 좋습니다. 특히 구기자는 고지 베리(Goji Berry)라고도 불리는데, 항산화 효소를 많이 함유하고 있어 노화를 예방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비뇨 생식기계가 약한 성인이나 허약한 소아의 성장에도 좋은 약재입니다.
저는 아직 차에 대해서 계속해서 공부하는 중입니다. 그런데 차나무 유래 차든, 허브 인퓨전이나 한방 차든, 또 다른 형태의 차 아닌 차든 간에 알면 알수록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차(茶)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알고 마시면 더욱 건강하고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것 또한 차(tea)고요. 티룸이나 티 브랜드가 눈에 띄게 점점 많아지는 이 시점에서 차를 즐기시는데 이 글이 도움이 되시길, 그리고 많은 분들이 차 한잔 마시는 여유를 갖게 되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 책_티소믈리에 이해, 한국 티소믈리에 연구원 을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