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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수림 Jul 14. 2016

당신은 무슨 체질입니까?

체질이 뭐길래.

  한국 사람이라면 살면서 한 번쯤은 들어봤음직한 말, 


당신은 무슨 체질이에요?


  도대체 체질이 뭐길래 이런 질문을 하는 걸까요?


체질[體質]  
1. 사람의 타고난 몸의 성질. 또는 성향.
2. 조직 등에 배어 있는 어떤 종류의 성질이나 성향.
출처: 다음 국어사전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일반적으로 말하는 "체질"과 한의학, 특히 체질의학에서 일컫는 "체질"은 개념이 조금 다릅니다. 만일 이번에 취직한 친구가 나에게 "이 일은 내 체질이랑 안 맞는 것 같아."라고 한다면, 여기에서 "체질"은 성향이나 성격을 의미합니다. 즉 개인의 특수한 형태적, 기능적 성상을 뜻하는 것이죠. 이때의 "체질"은 유전적인 것일 수도, 비유전적인 것(가변적인 것) 일 수도 있습니다. 한편, 그 친구가 취직 후 과도한 업무에 시달려 한의원에 갔는데, 한의사로부터 "당신은 oo체질입니다."라고 듣는다면, 이때의 "체질"은 타고난 것, 즉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는 그 친구의 숙명 같은 것에 가깝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체질"이라는 용어는 전통적인 한의학에서 잘 쓰지 않은 말입니다. 청나라의 섭천사가 쓴 <臨證指南醫案(임증지남의안)> 이 최초의 용례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많이 사용하게 된 것은 서양 전염병학에서 '동일한 원인이더라도 각 개인의 장부 조직과 남녀, 나이, 영양 등에 따라서 그 병상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강조한 것을 일본인이 "체질"이란 단어를 써서 번역한 이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 일제시대에 우리나라에 들어왔고요. 


  그렇다고 해서 그 개념 자체도 그때부터 생긴 것이냐, 혹은 일본에서 들어온 것이냐. 그것은 아닙니다. BC 2000년경에 만들어진 <黃帝內經 靈樞(황제내경 영추)>의 '음양이십오인편'에서는 음양오행의 관점으로 사람을 25인으로 분류하였습니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의 갈레누스는 히포크라테스의 4 체액설에 의거하여 4가지 유형의 체질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조선 말기에 이제마가 <元(동의수세보원)>에서 <周易(주역)>에서의 사상(四象)의 개념 즉, 태양()·태음()·소양()·소음()을 인체에 결부시켜 사람의 체질을 4가지로 분류하면서 체질의학이 우리나라의 고유 전통의학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마는 체질에 따라 사람의 성격, 장기의 기능이 다르다는 것을 설명하고 각각의 체질에 따른 생리, 병리, 양생법과 치료법을 제시하였습니다. 이를 "사상의학"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우리나라 한의학의 체질의학은 중의학(學)과 구별되는 독창적인 의학체계이며, 전통 한의학에서 벗어난 획기적인 학설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사상의학과 함께 한국의 특유의 의학으로 인정받는 "팔체질의학"은 비교적 가까운 시기인 1965년에 동경 국제침구학회에서 권도원이 체질침에 관한 논문(Constitution-Acupuncture)을 발표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팔체질의학은 인체 내의 장기의 강약 순서에 따라 8가지로 체질(금양 금음 목양 목음 토양 토음 수양 수음 체질)을 나누며, 그에 따른 생리와 병리, 그리고 체질에 맞는 음식과 해로운 음식, 섭생법을 제시합니다. 또한 증상에 따른 치료가 아닌 체질에 따른 장기의 불균형을 맞춰주는 치료로, 효과가 빠르면서도 장기적인 건강 관리까지 가능하게 하는 맞춤치료의학입니다. 


다름을 인정하는 의학


  사상의학이든, 팔체질의학이 됐든, 체질의학이라는 것은 '다름을 인정하는 의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즐겨 보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언젠가 연기를 가르치는 안혁모라는 분이 캐릭터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더군요. "캐릭터란 자극에 반응하는 인물의 형태"라고요. 접촉사고가 났을 때, 차 문을 열고 나오면서부터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자기가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도 죄인처럼 굽신굽신 거리며 차에서 내립니다. '그 사람은 왜 그렇게 행동하느냐'는 깊이 고민할 것도 없이 '원래 그런 사람'인 거죠. 똑같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성격이 다르면 반응하는 것이 다르듯이, 우리의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은 음식을 먹어도 누구는 두드러기가 나고, 똑같은 약을 먹었는데 누군가는 설사를 합니다. 그리고 그 다름을 인정하는 의학이 체질의학인 것이죠.


  나는 무슨 체질일까


  그렇다면 나는 무슨 체질일까? 체질을 자가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정보는 온라인, 오프라인 할 것 없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렇지만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당연히 한의원으로 가야겠죠. 사상의학에서는 체형과 성질, 그리고 평소에 갖고 있는 증상, 병리적인 증상 등을 통해 체질을 판단합니다. 필요한 경우에는 약을 써서 확진을 하기도 합니다. 팔체질의학에서는 '체질 맥진'이 가장 확실한 진단법이라고 하여 맥으로 체질을 감별합니다. 


  물론 이러한 체질감별 결과가 한의사의 개인적인 재량에 따라 다르게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객관적이고 신뢰성 있는 진단법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현재 유전자 의학이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므로, 어쩌면 유전자로 체질 감별이 가능한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ABO 식 혈액형에 대한 기초 지식이 생긴 것이 1910년에 불과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미래에 체질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고 그것이 유전된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밝혀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영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엔, 지금 본인의 혈액형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병원에 가면 당연하게 "당신 체질이 뭐예요?"라고 물어볼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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