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제에 관한 진실
얼마 전에 제가 즐겨 보던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에서 가수 장우혁 씨가 영양제를 한 아름 꺼내서 매일 먹을 양만큼 약봉투에 싸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저렇게 많이? 저걸 다 한 번에 먹는다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한 '특별한 방법'을 향한 갈망은 쭉 있어 왔습니다. 그것이 요즘에는 영양제를 챙겨 먹는 것이 되어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고, 어느새 밥을 챙겨 먹는 것처럼 영양제를 챙겨 먹는 것도 당연시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설에서는 지금 우리가 섭취할 수 있는 자연식품들이 수십 년 전에 비해 적은 양의 영양소를 갖고 있기 때문에 영양제를 통해 보충해줘야 한다고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점점 끼니를 간단하게 먹는 사람들, 특히 싱글족이 늘어나서 영양 결핍이 되지 않으려면 영양제가 필수라고도 합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이제는 더 이상 식탁 한쪽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영양제들이 어색하지 않게 됐죠. 그렇지만 매일 아침 한 움큼씩 당신의 입안에 털어 넣는 영양제들이 정말 필요한 것인지, 심지어 의도와는 다르게 해롭게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는 확인해 볼 문제입니다.
정말 따로 챙겨 먹어야 하나?
가장 많이 챙겨 먹는 영양제 중 하나가 바로 비타민입니다. 비타민은 과일이나 야채에 많다고 알려져 있어서 매일 신선한 과일과 야채를 섭취하기 힘든 싱글족들에게는 꼭 챙겨 먹어야 하는 필수 영양제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놀라지 마시길! 실제로 비타민은 과일, 야채보다 곡물, 육류, 생선 등에 훨씬 많이 들어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비타민이 부족하면 여러 가지 결핍증이 생길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비타민은 소량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에 원푸드 다이어트를 하거나 초 저열량 식을 하지 않는 이상, 일반적인 식단으로 음식을 골고루 먹는다면 결핍증이 생길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히려 넘쳐서 문제
특히 비타민 C의 경우에는 채식 위주의 식습관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 거의 대부분이 평소에 권장량 이상을 섭취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서 영양제까지 복용한다면 결핍증이 아니라 오히려 복통, 설사 같은 과잉 증상이 생길 수 있죠. 비타민 C 이외에도 지용성인 비타민D는 필요 이상으로 섭취하면 메스꺼움, 구토, 설사, 요독증 등이 생길 수 있고, 또 다른 지용성 비타민이면서 동물성 음식에 많이 들어있는 비타민 A도 필요 이상으로 많이 섭취하게 되면 여기저기 쑤시고 아프고 메스꺼움, 하지 부종, 탈모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당신의 탈모가 비타민 A의 과잉 섭취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 비타민 A는 대부분의 영양제와 보조제에 들어있기 때문에 지나치게 많이 섭취되기 쉬우며, 지용성이기 때문에 수용성 비타민에 비해서 과잉 섭취되었을 때에 몸에 훨씬 더 해롭게 작용합니다. 핀란드에서의 한 연구에서는 비타민E를 다량 투여했더니 뇌졸중이 증가했다고 보고한 적도 있답니다.
이 외의 다른 영양제들도 마찬가지로 직접적인 과잉 증상을 만들 수 있고, 그렇지 않다손 치더라도 결국에는 체내에서 대사 되고 배출되어야 하므로 간, 신장 그리고 위장관에도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양제의 대부분은 알약이나 캡슐의 형태로 만드는데, 그때 이용되는 합성 첨가물들이 복통이나 소화불량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평소 더부룩함이나 속 쓰림 등의 증상으로 오신 환자분들께 영양제만 끊게 해도 증상이 완화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답니다.
내 체질에 맞는 영양제는 따로 있다?
음식도 나에게 맞는 음식, 맞지 않는 음식이 있는데 영양제라고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좋을 수는 없습니다. 특히나 특정 영양소만을 뽑아서 정제하거나 합성해서 만든 '영양제'는 자연식품보다 그 성질이 더 강합니다. 예를 들어, 췌장과 위장에 열이 많은 토 체질의 경우 비타민 B군이 맞지 않습니다. 토양 체질이나 토음 체질은 비타민 B군 영양제나 종합비타민제를 복용하고 나서 혹은 비타민 B 복합제 주사를 맞은 이후에 피부에 발진이 생기거나 소화장애를 겪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토 체질인 임신부나 임신 준비 중인 가임기 여성분들은 비타민 B군 중 하나인 엽산제를 영양제로 복용하기보다 식품으로 꾸준히 섭취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습니다. 체질상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경우에 따라서 먹지 말아야 하는 영양제가 있습니다. 피를 맑게 해줘서 심장질환을 예방한다고 알려져 있어 '국민 영양제'가 되고 있는 오메가-3 조차도 수술 전후의 환자분이나 항혈소판제, 혈전용해제를 복용하고 있는 경우에는 함께 복용하시면 안 됩니다.
아무 때나? 한꺼번에?
또한 각각의 영양제들마다 복용법이나 복용시간이 다른데, 특히 지용성 비타민인 비타민A, D, E, K는 식후 30분에 복용하는 것이 좋고, 수용성 비타민인 B군과 C는 다른 영양 성분과 함께 섭취될 때 흡수율이 더욱 높아지기 때문에 식사 중이나 식사 직후에 복용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오메가-3와 함께 혈행을 개선시켜준다고 알려져 있는 감마리놀렌산은 복용한 이후 30분간 술, 탄산음료, 커피 등을 마시면 흡수율이 떨어집니다. 한 가지 더 이야기하자면, 복용 전 후에 먹은 음식물뿐만 아니라 영양제의 질에 따라서도 흡수율이 천차만별입니다. 내가 의도한 만큼 다 흡수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말이죠.
이렇듯 영양제들은 자연식품이 아니기에 복용법과 금기증이 있고, 치료 약보다 느리게 혹은 덜 심각하게 나타날 수 있지만 엄연히 부작용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그저 꿀을 삼키듯 한입에 다 같이 털어 넣으면, '어떤' 영양제가 '무슨' 문제를 일으키는지 판단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영양 성분이 제대로 흡수되지 않거나 그 작용들이 상충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건강기능식품'으로 분류되는 영양제는 식약처의 인정을 받더라도 안정성의 기준이나 효과에 대한 근거가 미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오히려 노약자나 중한 질병을 앓고 계신 분들일수록 주의하여야 합니다.
끼니는 대충, 영양소는 영양제로?
2015년에 질병관리본부에서 시행한 국민건강 영양조사에 따르면 아침 식사를 거르는 인구수가 약 24%나 된다고 합니다. 2005년에 19.9%였던 것에 비하면 4% 가까이 늘어서 이제는 거의 3명 중 한 명은 아침식사를 하지 않는 꼴입니다. 반면에 식이 보충제 복용 경험률은 2005년에는 25.8%에 불과했지만 2015년에는 41% 정도나 되었습니다. 점점 식사나 끼니에 대해서는 경시하고 간편하게 보충제나 영양제로 영양 보충을 하려는 경향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절대로 영양제가 자연식품을 대신할 수는 없답니다. 제주도 푸른 바다에서 잡힌 갈치를 한 마리를 먹는다고 가정해 봅시다. 갈치에는 단백질, 지방, 그리고 칼슘, 인, 철, 칼륨, 나트륨 등의 무기질, 비타민 A, B2, C, 니아신 등이 들어있습니다. 이 영양소들을 모두 영양제로 섭취한다면 적어도 5~6알 이상을 삼켜야 하죠. 여기에서 끝이 아닙니다. 갈치구이를 먹으면서 제주도 앞바다를 헤엄쳤을 갈치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고, 친구들과 담소도 나눌 수 있죠. 맛집을 찾아가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고, 무엇보다도 영양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영양제는 무조건 나쁩니다"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특정 영양소의 흡수력이 떨어지거나 복용하는 약 때문에 어떠한 영양소의 결핍이 생긴다면 당연히 영양제로 보충하는 것이 맞습니다. 저 또한 때에 따라서는 환자분이 영양 결핍으로 인한 증상을 가지고 있다면 그 상황에 필요한 영양제를 꼭 집어서 복용하시길 권유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무엇이든 지나치면 부족한 것만도 못한 법이죠. 내 건강 위한답시고 먹는 영양제가 그저 돈만 버리는 일이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내 몸까지 버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답니다. 영양제를 복용하고 싶다면 나에게 필요한 영양제만 의사나 한의사와 상의하여 드시거나, 적어도 내가 먹는 영양제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복용법이나 주의사항, 부작용 등을 꼭 확인하고 드시는 게 좋습니다. 물론 삼시 세 끼를 균형 잡힌 식단으로 구성해서 드시는 게 맛도 영양도 챙기면서 돈도 적게 드는 방법이고요. 영양제를 구입할 돈으로 시장에 가면 훨씬 맛있고 영양가 있는 식재료들을 많이 살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