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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꺼실이 Sep 17. 2020

나의 항생제 처방률

시골에 살아 행복한 의사 이야기

올해 2/4분기 우리동네의원의 급성 상기도 감염 항생제 처방률은 8.90%다. 보통은 10여% 된다. 매분 기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는 각 의원 및 병원의 항생제와 주사제 처방률을 발표한다. 대체적으로 상기도 감염에 항생제가 필요한 경우는 10여%라고 한다. 물론 바이러스 감염에는 항생제가 필요하지 않지만 부비동염이나 중이염, 기관지염 등의 세균 감염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세균 감염이어도 항생제 없이 버틸 수도 있겠지만 그건 의사와 환자의 의지가 같아야 한다.

     

 그런데 의료협동조합을 하기 전 개인의원을 할 때에는 항생제 사용률이 40% 내외였다. 지역사회에서 환자를 진료하다 보면 부비동염이나 중이염, 기관지염 등이 한순간에 진행이 되는 게 아니어서 조금이라도 조짐이 보일 때, 혹은 감기가 나을 때가 되었는데 낫지 않을 때 항생제를 쓰게 되면 그 정도 비율이 나오게 된다. 혼자서 진료할 때는 좀 더 방어적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의료협동조합에서 진료를 하다 보니 워낙 의료협동조합은 항생제를 적게 쓴다는 것을 표방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환자와의 관계에 더욱 신뢰가 생기기 때문에 적정진료가 가능하기도 하다. 예를 들면 “아이가 감기가 나을 때가 되었는데 누런 콧물이 많이 나오네요. 원래 감기가 나을 때는 콧물이 누렇게 변했다가 낫는 게 정상 코스인데 이게 진행돼서 계속 누런 콧물이 펑펑 나오게 되면 부비동염을 의심해야 돼요. 제가 보기엔 지금 가능성은 50 대 50인데 저 같으면 항생제 안 먹을 것 같아요.” 하고 얘기하면 마음이 급한 엄마들은 써달라고 하기도 하고, 조금 천천히 가도 좋겠다는 엄마들은 더 지켜보길 원하기도 한다. 그리고 후자의 엄마들이 점점 많아진다.

     

  매달 열리는 운영위원회나 이용위원회에 항생제 사용률이 보고된다. 열심히 활동하는 조합원들은 항생제의 문제점에 대해 여러 차례에 걸쳐 들은 바도 있고 항생제를 적게 쓰는 조합의 의원들을 자랑스럽게 여기기 때문에 주변에 이를 널리 알린다. 그러니 의료협동조합에서는 적정진료를 하는 것이 의사와 조합원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의사도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쉽게 흔들리는 의사도 있다. 이런 의사한테는 의료협동조합 같은 시스템이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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