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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꺼실이 Sep 18. 2020

아이에게 거짓말하지 마세요

시골에 살아 행복한 의사 이야기

10살짜리 여자 아이가 진료실에 끌려 들어왔다.

독감백신을 맞는 계절이라 울음소리도 많이 들리고 부모자식 간에 실랑이도 많은 편인데 이 아이는 조금 심한 편이었다.

     

 우리동네의원에 내원하는 환자의 절반은 소아와 청소년이다. 간혹 진료받을 때 지나치게 저항하는 아이들이 있다. 물론 아이의 성격이 예민한 경우가 그렇긴 하지만, 병원에서 안 좋은 기억이 있는 아이들이 저항이 심하다. 아이들이 입원했을 때 주사를 너무 많이 맞아 주사에 대한 공포심이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이럴 때에 강압적으로 행해지거나 거짓말하고 덮치듯이 행해진 경우에는 아이의 마음에, 그리고 보호자와의 관계에 트라우마를 남긴다. 처음에 쉽게 해결하려 하면 두고두고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주사 맞으러 가는 게 뻔한데 안 맞을 거야 하다가 부모가 아이보다 힘이 세니 어느 순간 꽉 잡고 푹 찔러버리면 그 날은 쉽게 맞췄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다음부터 아이는 부모 말을 안 믿게 되고 그냥 진찰만 하는 날인데도 의심하고 불안해하고 저항하게 된다. 처음에 저항이 심하더라도 잘 설명하고 동의를 구해서 맞으면 그 다음에는 부모 말을 믿게 되니  덜 어렵게 된다.

     

 이 아이를 잘 어르고 달래서 물어보니 지금은 몸도 안 좋고 다음 주에 맞았으면 한단다. “그래 그러면 선생님이랑 약속 해. 오늘 안 맞는 대신 다음 주에 꼭 맞자.” 했더니 그러겠단다. 부모가 어이가 없어한다. “얘는 항상 그렇게 얘기해요. 다음 주에도 똑같은 말을 할 거예요.” “그래도 다음 주는 본인이 한 말이 있으니 조금 다르지 않을까요? 그래도 안 맞겠다면 아직은 시간이 있으니 일주일 더 연기해도 돼요. 그러다보면 맞지 않을까요? 10살이나 먹은 아이인데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 주세요. 만일 그래도 맞지 않아서 독감에 걸리게 되면 그 다음엔 맞겠지요.” 하였다. 다음 주에 그 아이는 오지 않았다. 부모가 다른 병원으로 데리고 간 것 같다.  아이가 유난히 겁이 많은 아이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본인이 존중받고 공포를 넘어설 수 있게 하지 못한 게 아쉽다.

 사실 조합원들이 의료협동조합을 신뢰하는 이유도 모든 것을 다 공개하기 때문이다. 잘했건 잘못했건 공개를 하고 문제가 있다면 그에 대한 해결책을 함께 고민하여 찾아나간다. 속이지 않기에 신뢰가 쌓이고 의사가 권고하는 것도 잘 수용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할 때에도 정부가 모든 상황을 공개하고 협조를 구하니 국민들이 믿고 따라주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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