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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꺼실이 Sep 24. 2020

좌충우돌 주치의

시골에 살아 행복한 의사 이야기

안성의료협동조합이 26년 만에 ‘내건 물 갖기’를 추진 중이다. 여태 전세로 있었는데 비싼 건물이 아님에도 월세로 나가는 돈이면 대출이자로 가능하겠기에 추진하기로 했다. 9층 건물을 지어 안성농민의원, 건강증진센터, 안성농민한의원, 새봄치과, 사무국, 조합원 활동공간을 옮기고 주간보호센터를 새로 추진하기로 했다.

     

 오늘은 주간보호센터를 준비하는 모임이다. 그냥 어르신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몸의 기능이 좋아지고 일상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돕는 주간보호센터를 만들어보자고 야심 차게 회의를 하고 있는데 당뇨병이 있는 이사님이 당이 떨어지는 듯 기운이 빠지신단다. 이전에도 회의가 있었기에 힘들어서 그럴 수도 있겠으나 혈당을 측정해볼 수 없는 상황이라 저혈당 가능성에 마음이 급해졌다. 당뇨환자들이 겪는 저혈당은 초기에 약간의 조짐이 있을 때 얼른 당을 보충하지 않으면 심한 경우에는 의식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얼른 사무실로 가서 과자를 구해다가 드렸다. 웃으며 받으시더니 안 드신다. “왜 안 드세요? 얼른 드세요.” “좀 괜찮아진 것 같아요.” 하시더니 어떻게 혼자만 먹느냐 하신다. 순간 나의 속없는 행동을 깨달았다. 이럴 때 회의하는 사람들 몇 명 되지도 않는데 센스 있게 과자 하나씩 다 돌렸으면 이사님을 환자 취급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을.  

     

  ‘남자는 다급한 목소리로 벌목꾼이 나무 밑에 깔려 꼼짝도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사는 정확한 위치를 알아보라고 약제사에게 말하더니, 갑자기 수화기를 집어 들고 직접 통화했다. (중략) 좁은 길을 운전해가는 동안 그는 엄지손가락으로 계속 경적을 울렸다. 앞에서 오는 차들에게 경고를 주기 위해서일 뿐 아니라, 나무에 깔린 사람이 그 소리를 듣고 의사가 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존 버거, 장 모르의 ‘행운아-어느 시골의사 이야기’의 첫 장면이다.

 시골에서 일하면서 오랜 기간 환자를 비롯한 주민들을 잘 알고 있고 그들을 꼼꼼히 기록해온 의사. 질환뿐 아니라 그들이 살아온 삶의 맥락에 녹아드는 처방과 권고를 하는 의사의 이야기를 적은 책이다. 위의 글처럼 그는 나무 밑에 깔려 공포에 젖어 의사만을 기다리는 환자에게 경적으로 위로와 희망을 전하는 배려를 한다.

 

 이러한  마을 의사, 병보다 사람이 먼저 보이는 의사가 좋아서 의료협동조합을 하지만 또 이렇게 실수를 한다.

     

  그림: 정소영 선생님 그림을 베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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