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꺼실이 Sep 25. 2020

원장님 청소할 때 변기도 닦으셔야 해요

시골에 살아 행복한 의사 이야기

 우리동네의원은 예방의학과 강명근 원장과 가정의학과 의사인 나와 세 명의 간호조무사와 함께 일하고 있다. 워낙 공간이 좁았는데 조금 넓은 곳으로 옮기면서 청소에 대한 분담을 하게 되었다. 조무사들은 진료대기공간과 접수실, 수액실, 주사실 등을 맡고 강 원장이 후문 쪽에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이 많아 그쪽을 담당하겠다고 하였고 나는 화장실 청소를 맡게 되었다.

     

 어느 날은 간호조무사 중 한 친구가 ‘원장님 청소할 때 변기도 닦으셔야 돼요.’해서 ‘아 깜빡했네. 알았어요~’하고 대답했다. 어떻게 보면 직원이 원장한테 화장실 청소 제대로 하라 한 건데 그렇게 말하고 듣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내가 맡은 일인데 놓치고 있는 것을 알려 준거고 나는 고맙게 들었을 뿐이다. 평소에도 문제가 되는 것들을 서로 스스럼없이 얘기한다. “처방이 바뀔 때는 미리 알려주셔야 혼선이 없어요.” “메신저로 오더가 나갈 때는 봤는지 알 수 없으니 바로 답을 주세요” 등등. 그리고 합리적인 조정 과정을 거친다. 모두가 편하고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고려를 하다 보니 실무자들이 주체적이어서 각자 맡은 바를 잘 이행하게 된다. 원장 입장에서는 그렇게 되면 많은 일들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돼서 더 편하다. 윗사람 눈치를 봐야 하는 조직에서는 책임감이 떨어지고 자신이 고유하게 해야 할 일보다는 윗사람이 원하는 걸 하기에 급급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오늘은 변기를 구석구석 잘 닦이는 솔을 하나 샀다.



이전 11화 머리가 아프면 CT를 찍어야 할까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