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꺼실이 Sep 29. 2020

장벽이 사라지면 덜 아프지 않을까.

시골에 살아 행복한 의사 이야기

장벽이 사라지면 덜 아프지 않을까


 “선생님이 왜 저런 분을 알아요? 운전기사예요?”

강남세브란스병원(당시 영동세브란스병원)에서 인턴을 하고 있던 나에게 함께 근무하던 조무사가 했던 말이다.


 안성으로 주말 진료를 다니던 중 이 모씨의 증상이 의심스러워 엑스레이를 찍게 했더니 결핵이 발견되었다. 결핵 뿐 아니라 암을 감별해야 하는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어 검사를 해야 하는데 결핵 때문에 격리 병실이 필요해 1인실에 들어오게 되었다. 지금처럼 전염의 위험 때문에 격리병실을 쓸 때는 국가에서 상급병실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이 없어 병원비 때문에 안절부절하던 그 분의 입원과 치료를 도와주느라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당시 성형외과 외래에서 근무 중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같이 일하던 간호조무사는 의사와 농민이 친한 게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 같다. 교수인 의사들만 봐와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그가 보기에 촌에서 올라온 게 뻔해 보이는, 얼굴 까무잡잡하고 초라하며 자신의 몸보다 치료비를 걱정해야 하는 이분은 우리가 몇 년 동안 ‘형’이라 부르며 친해져있던 분이었다. 주말에 안성으로 진료를 다니면서 우리는 그 분이 심어놓은 모가 쑥쑥 자라 쌀알이 열리는 것을 신비롭게 바라보곤 했는데, 그렇게 농사를 짓는 참 소중한 분이었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장벽이 있었다.


 금강산 관광이 한창이던 때 우리 가족도 금강산 산행을 했다. 군사분계선에서 외국에 나가는 것처럼 수속을 하고서야 그곳을 통과하여 금강산을 갈 수 있었다. 우리 부모님이 살던 고향이고 같은 민족이 사는 곳이지만 평소에 잊고 살던 엄청난 장벽을 실감했던 적이 있다. 


 그 장면과 오버랩되었던 상황이 있었다.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구조조정으로 2,646명 희망퇴직 및 976명에게 해고가 통보되었고 76일간의 점거농성을 하던 때였다. 이 사건은 당사자와 우리 사회 전체에 크나큰 트라우마를 남겼는데, 당시 점거농성을 하는 분들에게 의료지원을 나간 적이 있었다. 전기와 물 공급도 끊어진 때였다. 들어가는 길은 멀었다. 안성에서 평택이야 30분이면 가는 거리였는데 들어가기 전 경찰이 먼저 한사람 한사람 체크하고 가지고 들어가는 의약품을 일일이 조사한 후 농성장 내로 들어가는 길을 열어주니 노조원들이 안에서 우리를 받아서 진료할 수 있는 공간으로 데리고 갔다.

 ‘북한에 가는 길 같은 느낌이네. 얼마 전까지 쌍용 자동차는 안성, 평택 지역에서 젤 자랑스러운 직장 중 하나였는데. 이 안에 장벽은 누가 세웠을까...’ 엄청난 스트레스에 처한, 장벽 안의 그들은 거의 다 아팠다...

 장벽이 사라지면 덜 아프게 되지 않을까.

     

     

베를린 장벽
작가의 이전글 나는 우리 마을 주치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