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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꺼실이 Oct 02. 2020

한밤중에 걸려온 전화

시골에 살아 행복한 의사 이야기

 원래 잠을 잘 자는 사람인데 웬 일로 새벽 3시에 잠을 깼다. 시간을 확인하려고 스마트폰을 보는데 부재중 전화가 찍혀있다. 그것도 1시 12분에. 전화를 건 사람은 이전에 안성의료협동조합 대의원을 했던 분인데 자주 연락하고 사는 관계는 아니다. 의사로서의 직업병이 발동한다. ‘많이 아팠으니 전화를 했을 텐데... 얼마나 급했으면 실례를 무릅쓰고 그 시간에 전화를 했을까. 웬만한 상황에서는 응급실에 가는 게 전화하는 거보다 빠를 텐데 나한테까지 전화를 한 이유가 뭘까. 지금 전화해볼까?’ 심하게 고민이 된다. 잠이 오지 않는다. 한여름에 선풍기를 틀어도 날은 더운데 밖에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는데도 시원하기는커녕 땀이 계속 난다. 지금 전화를 하면 식구들이 다 깨버릴 텐데. 혹시 버튼을 잘못 누른 건 아닐까? 급한 상황이었어도 지금쯤은 상황이 정리되어 잠들었는데 내가 공연히 깨우는 것일 수도 있다. 아 어쩌나. 그냥 빨리 잠들어버렸으면 좋겠는데 그러지도 않고 덥기만 하다. 괜히 애들은 잘 자나 둘러보고 온다. 애들도 덥다 하면 에어컨을 틀을까 했는데 괜찮단다. 마침 멀리 있는 아들도 집에 와서 자고 있어 내가 숨어서 전화할 방도 없다. 에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전화해봐야지 포기한다.      

 아침에 일어나 전화를 한다. 이 친구가 너무 의아하게 받는다. “어쩐 일로..” “전화했던데요? 급한 일이 있었던 거 아니어요?” “어머나... 제가 한밤중에 번호 정리하다가 잘못 눌렀나 봐요. 죄송해서 어쩌지요?” “ 아 그럼 다행이네요. 아침에 보고 깜짝 놀라서요.” 어쩔 줄 몰라하는 목소리를 듣고 안도를 하며 전화를 끊는다.     

 .

 한밤중에 오는 전화, 아니 의외로 걸려오는 모든 전화에 예민해지는 건 모든 의사들의 직업병이다. 오래 만나지 못한 친구도 전화가 걸려오면 어디가 아픈가 보다고 생각하면 거의 맞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짜증이 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보다 걱정과 안심이 앞서는 것은 그분에 대해 평소에 고마운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3동의 대의원으로 오랫동안 수고를 했으며 의원을 옮길 때도 같이 다른 병원을 찾아다니며 인테리어도 같이 고민하곤 했던 친구인 것이다. 누가 강제적으로 한밤중에도 전화를 받으라고 의무를 준다면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거다. 하지만 걱정하는 마음에 그렇게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협동조합에서의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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