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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앤 Mar 21. 2021

귀 빠진 날이 축제다

생일에 관해


며칠 전 귀 빠진 날, 나의 생일이었다.

써 놓고 한참을  생각했다. 그런데 왜 귀 빠진 날이라고 할까.


찾아보니 엄마 뱃속에서 아기가 나올 때 귀가 나오면 거의 나온 거나 마찬가지라는 말이 있다. 세상에 나올 때 머리부터 밀고 나오는데 귀에서 잘 걸리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나는 어깨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나 보다.

또 어딘가에서는 귀 모양이 마치 자궁 안의 아기가 웅크린 모습과도 같다고 한다. 상상해보니 그럴 듯도 했다. 어쨌거나 귀 빠진 날은 태어난 날을 지칭한다.


남편은 늦은 오후가 되면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사무실로 나간다. 미국에 있지만 모든 일을 한국과 연결하여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핑계로 현지에서의 일도 밤에 몰아서 한다. 그게 습관으로 굳힌 지 이미 오래되었다.


남들은 아침에 일어나 출근을 한다. 요즘은 재택근무가 많아져서 아침이면 사무실 삼아 집 서재에서 일하는 남편들이 늘었다. 내 주변도 그렇다. 그런데 나는 아침이면 남편이 언제 오나 생각한다.


한국에서 친정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생일 축하한다! 아침인데 샛별 아빠 안 들어왔어? 미역국은?"


아침부터 질문이 쏟아진다. 그때까지도 미처 생각 못했던 미역국이 떠올랐다. 주섬주섬 대답과 동시에 바싹 마른미역을 꺼내 물에 담가 놓았다. 생일 케이크도 샛별이가 며칠을 벼르며 기다렸기에 나가서 함께 골라야겠다 생각했던 차라 굳이 남편의 도움이 필요 없었다.


친정엄마는 또 물었다.


"느이 형부는 언니 생일에 늘 손수 끓여주잖니. 넌 네가 끓이니? 끓이는 법 가르쳐줘야지 안 되겠네~"


농담도 하며 엄마는 멋쩍게 웃었다.

딸 생일에 사위가 먼저 미역국 안 챙겨주나 은근히 바랬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것 또한 별 생각이 없었다. 이미 받을 선물은 다 받아 놓았고, 여느 날과 다름없는 하루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나이에 생일이라고 뭐 별다르게 호들갑 떨고 싶지는 않았다.


미역국을 끓여야겠다고 생각한 건 어제였는데 정작 아침이 돼서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나 자신이 생각났다. 모임도 사실 그랬다. 전 날까지 생각하고서는 또 깜빡 잊어버렸다. 내 정신이 분주한 건 아닌가 혼자 가다듬는 시간이 오히려 필요해 보였다.


불린 미역을 잘 씻고 가위로 잘근잘근 잘라주었다. 요즘은 맑게 끓인 미역국이 좋다. 지인의 집에서 먹었던 이후 재미가 들린 듯 맑게 맑게 끓여 먹고 있다.


"내가 맑은 미역국 저번에도 해줬잖아요! 샛별이 낳고 입원실에 내가 가져다준 게 그거였는데. 정신없어서 그때 뭘 먹었나 생각도 안나죠? 뭐 그럴 만도 해요."


며칠 전 지인 집에서 기름에 안 볶고 맑은 채로 끓인 미역국을 처음 먹어 본다는 내 말에 반박하며 말했던 게 생각났다. 그랬다. 아이를 낳고 내 입에 뭐가 들어갔던 건지 기억도 없다. 그저 첫 식사가 팬케이크와 요거트였음을 기억하고, 마지막 퇴실 전 먹은 음식이 치킨 퀘사디아였다는 걸 기억한다. 그런데 더 웃긴 건 인생 퀘사디아였다는 것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그렇게 푸짐한 퀘사디어를 맛본 적이 없었다. 아무튼 요지는 그게 아니라 미역국을 그리 맛나게 먹었으면서도 맑았는지 뽀얗게 기름 있는 미역국이었는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나의 생일 국은 새우만 넣고 끓일까 하다가 그냥 맑은 소고기 미역국이 돼버렸다. 자동 손놀림이었다. 왜냐하면 전 날 먹은 소고기 덩어리가 냉장고 문을 열고 바로 보였기 때문에.


아이는 먹지 않겠다고 했다. 자주 그렇게 말한다. 이번에도 그냥 하는 말이 아닐까 싶어 조금 떠서 밥이랑 말아 놓았다. 그리고 반찬으로 오징어젓갈과 김치만 퍼서 한 술 입에 넣었다. 아, 맛있다. 그것도 생일날 혼자 숟가락 떠서 한 입 먹고는 맛있다고 말하는 여자는 혹시 나뿐일까, 희한한 생각에 머쓱해졌다.


누가 보면 처량하게 혼자 사느냐고 말했을 것도 같지만 생일이 뭐 별건가. 생일이 축제야 뭐야. 그냥 매일이 축제라면 더 이해가 가겠다. 우리가 사는 삶이 시간이 공간이 모두 그냥 선물 아니겠어? 그러니까 축제지 태어났다고 축제야? 아, 생각해보니 축제 같기도 하다. 갑자기 온순해졌다.


상사에게 반박하다가 바로 "아, 네 그렇네요."하고 꽁지를 확 내리는 순간이 있잖느냐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말 돌리는 것 같지만, 미역국은 왜 내가 먹고 있는 건데? 블로그 누군가의 글에서도 본 듯하다. 격한 공감이 들었었는데 말이다. 예전에 똑같이 나의 생일날 엄마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애 낳고 먹는 미역국을 왜 생일날 당사자가 먹지? 낳은 사람이 그때 기억하며 먹는 거 아닌가?"


그 당시 엄마의 대답은 그저 웃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엄마도 모른다는 의미다. 엄마가 된 나도 뭐 별다를 게 없다.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겠으니. 내가 샛별이를 낳았지만, 혼자 생일을 맞이해야 할 때가 오면 나도 그렇게 묻겠지?


"샛별아, 생일 축하한다. 그런데 미역국 먹었니?"


때로는 이유도 모른 채 그렇게 해야만 하니까 나도 그렇게 하는 때가 많다.


정오가 지나 집에 온 남편에게 혼자서 먹은 미역국을 내밀었다. 그런데 내 말을 듣고 남편은 옆에서 한 술 더 떴다.


"생일에 미역국 말고 뭇국 먹던데 나이 들면."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나이 들면 생일에 미역국도 아니요 뭇국을 먹는 거라고? 왜?? 역시나 나의 되물음에 남편은 이유를 모른단다. 단지 어른들이 다 그렇게 한다고. 그러면서 뒤에 은근슬쩍 장소가 붙는다.


"인천에서는."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혹시 인천 사시는 분이 있다면 이 말이 정말인지 아닌지 가늠해보길 바란다. 그런다 해도 변하는 건 없지만 말이다. 남편은 실실 웃으며 이어서 또 한마디 했다.


"나이 들었는데 뭇국 끓여 이제!'


생일은 그렇게 지나갔다. 올 들어 처음 따뜻했던 날들은 지난 주였다. 생일이 있는 주는 내내 쌀쌀하기도 했고 급기야 생일 당일에는 비까지 왔다. 그래도 봄비라는 생각에 매우 흡족하긴 했다. 사실 날씨가 좋으면 저녁이라도 야외에서 먹으려고 했는데 야무진 생각이었다.


축제는 그렇게 심심하게 지나갔다. 다음 우리 집 축제는 남편의 생일이다. 제일 나이가 많으니 귀 빠진 날, 뭇국을 끓여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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