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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앤 Mar 25. 2021

이메일 지우기

 내가 쓰는 이메일을  때마다 며칠 전부터 용량이   간다는 경고를 받았다. 그러나 무시했다. 무시해도  다를  없어 사단이  때까지 그냥 두고 보았다.

급기야 받아야 할 이메일을 받지 못하면서 혼자 동동 거리는 일이 생기고야 말았다. 남편에게 평소에 안 받는 핀잔까지 받고 정리를 습관화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정리라면 눈에 보이는 물건만 신경을 썼지 꼬박꼬박 쌓여가는 이메일을 정리하지는 못하며 살았다.


"필요 없는 건 그때그때 좀 버리면 편해. 나는 그날 온 필요 없는 메일은 다 삭제시켜."


그러지 못한 나를 반성하기보다 오기가 생겨 결국 돈을 더 주고 용량을 올리는 사태가 생겼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무엇이 쌓였는지 이메일을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최근 받은 일반 프리미엄 메일을 삭제하고 있자니 밑에 프로모션이 눈에 들어왔다. 광고다. 모두 알게 모르게 내가 허락한 매장이나 기업들에게서 온 메일이었다. 개수는 7만 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아, 이건 또 무슨 난리인가. 나는 이리도 많은 업체의 소식을 다 받고 있었던 걸까, 알지도 못하는 광고가 내 공간에 켜켜이 먼지 나게 쌓여 있었던 것이다.


물론 온라인상이지만 그것들 때문에 내가 돈을 내고 용량을 올린 건가 싶기도 해서 '삭제 작전'에 들어갔다. 시간을 내고 지우는 게 나에게는 매우 벅찬 일이어서 짬짬이 50개씩의 메일을 한꺼번에 선택해 지워 나가기 시작했다. 이 작업을 나는 3일간 지속했다.


끝도 없이 지워내야 매달 나가는 돈을 막을 수 있었다. 브런치의 카카오톡 로그인도 이 이메일로 설정이 되어 바꿀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3일간 시간 날 때마다 지워가며 겨우 6만 몇 개의 메일로 줄어들기는 했다. 왜 그동안의 메일 '모두 삭제'는 없는 걸까 생각하며 바보 같은 짓이란 걸 알면서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삭제되는 메일의 날짜는 점점 과거로 흘렀다. 마치 인간의 뇌로 따지자면 현재의 기억부터 찬찬히 지워가는 작업처럼 느껴져 섬뜩했다. 알츠하이머. 치매로 불리는 병이 아마 이렇지 않을까. 현재가 지워지며 자꾸만 과거가 오늘이 되는 그런.


계속적이고 기계 동작과도 같은 손놀림으로 삭제해 가며 나는 치매가 얼마나 무서운 병인가를 실감했다. 머릿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최근이라니.


지금은 잊혔지만 오래전에 가입했던 쇼핑몰의 이름도 나오고, 좋은 글을 받아 보겠다며 신청한 업체에서도 꼬박꼬박 부지런히 내게 메일을 보내오고 있었다. 참, 친절한 사람들. 그게 언제 적인데.


육아를 하는 나는 이렇게 50개씩 지우면서 6만 개 남은 메일을 이렇게 지워나갈 수 없었다. 검색을 했다.


'이메일 프로모션 한 번에 다 삭제하는 법'


나왔다. 기대는 별로 없었는데 나왔다. 헉. 그럼 나는 뭐가 되나, 싶은 마음이 한편으론 들기도 했다. 남은 거라도 어떻게 지워보고자 클릭을 했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진작 할걸. 뭐지? 이런 걸 '삽질'이라고 하는구나.


살면서 이런 일들이 한 번도 없다면 거짓말일 수 있다. 나를 지켜본 누군가가 '모르고 지나가며 손발이 고생한 적'을 낱낱이 지적해 준다면, 아마 우리는 얼굴을 들지 못할지도 모른다. 지금은 내가 그렇다. 나이 먹어 기계 사용하는 일에 더 버벅거리게 되면 어쩌나 이십 년 후의 걱정이 한꺼번에 몰아친다.


미국에 온 지 몇 년 되지 않아 친구의 일로 잠시 중고차 업체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머리가 백발이 된 할아버지가 체구가 왜소한 할머니와 함께 의자에 앉아 있었다. 백발 할아버지는 출출했던 모양인지 간식 자판기 앞에 한참을 머뭇거렸다. 동전이 없나? 지폐가 모자라나? 크리딧카드를 못쓰시나? 원하는 스낵이 매진인가? 별 생각이 다 지나갔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지만 딱히 뭘 할 게 없어 빈둥거리는 내 눈은 할아버지에게 꽂혔다.


결국 느릿한 동작으로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뭐라 뭐라고 얘기하더니 자리에 다시 앉았다. 그리고는 끝내 스낵을 좀 먹어야겠는지 다시 일어나 자판기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보다 못한 내가 가서 할아버지의 원하는 스낵을 뽑아 주었다.  

원하는 스낵 번호를 누르고 돈을 넣으면 끝인 것을. 최신식 스낵 자판기 앞에 나이 오래된 할아버지가 긴장하는 모습이라니. 할아버지는 고맙다며 신기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자리에 앉았다. 나도 신기한 눈으로 할아버지를 쳐다보고 내 자리로 가 앉았다.


할아버지는 적어도 70년이 넘는 인생을 그것도 미국에서 영어를 모국어로 쓰며 살아왔을 텐데 자판기 앞에 스낵 하나를 뽑지 못해 서성거렸다는 게 마음을 아프게 쳤다. 나는 겨우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던 때였고, 영어도 햄버거를 주문하며 점원의 여러 가지 질문에 불편했던 경험이 있다. 내가 원하는 햄버거는 제대로 나올까. 내가 잘 시킨 걸까? 저 사람이 내 영어를 알아듣기나 한 걸까.


그런데 실질적으로 더 중요한 건 나의 이삼십 년 후라니. 변해가는 세상 속에 어찌할 바를 몰라 스낵 뽑는 로봇 앞에 젊은 이의 도움이나 받게 되지 않을까. 그것도 내 나라 한국에서 한국말 잘 못하는 외국 총각에게? 바꾸어 생각하니 웃을 일도 아닌데 또 웃긴다.


아, 나는 '이메일 지우기'를 얘기하던 중이었지. 이건 창피해서 누구한테 얘기하지를 못하겠다. 그러고 또 공개하는 나는 뭘까. 그것도 이메일을 이십 년 넘게 쓴 내가. 요즘 이십 대는 나보다 기능면에서 월등히 이 이십 년을 넘어서겠지. 갑자기 내가 촌스러워진다.


사실 이걸 말하려는 건 아니었다. 이메일을 지워가며 최근의 것은 지워지고 과거가 자꾸만 올라와 그걸 바라보아야 하는 입장에서 치매 같은 오싹한 기분을 말하려고 했다. 생각해보니 내가 방금 치매 같은 짓을 했구나 싶다. 그걸 또 까먹고 내 미래를 걱정하다니.


혹시 이 글을 읽으며 누군가는 '아, 쓸데없는 광고 이메일 한꺼번에 0으로 지우는 기능이 있어?'라고 생각하며 방법을 이 안에서 좀 찾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을까 생각했다.


브런치 정도(?) 하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정말 혹시 아주 호옥~~~  ‘만에 하나 아니  분을 위해서 사진을 첨부하겠다. 나의 이메일은 구글 지메일이고 영어로 되어 있어서 한글로 나온 지메일 참고하면 된다.


모두 선택  2번으로 모든 메일 삭제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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