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심야식당2
우리 주변에는 무덤이 많다. 삶과 죽음이 그저 한 끗 차이인데 그걸 좀 알라고, 죽음은 그리 멀리 있는 게 아닌데 그걸 눈치 못해고 살아간다고 악다구니를 쓰는 작가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세상은 여전히 욕망을 채우고 권력을 붙드는 일에 바쁘다. 내가 보기에 악다구니처럼 보이는 그의 외침은 그리 틀려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세상 한 귀퉁이에는 죽음도 삶도 별거 아닌 듯 함께 끌어안으며 사는 한 공간이 있다. 심야식당. 오는 손님 중에는 죽음을 앞두고 있기도 하고, 죽음을 보고 돌아와 음식으로 마음을 채우듯 배를 채우는 사람들도 있다. 그곳에서는 모두가 담담히 자신의 인생을 내려놓는다.
"인간은 슬플 때도 배가 고파지는구나."
진리다. 그 앞에 누가 강력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영화 초반부터 귀가 솔깃해지고 마음이 해제된다. 아, 심야식당에서는 이런 말도 스스럼없이 해도 되는구나, 하고.
그곳에는 사기를 당한 할머니도 손님이 되어 음식을 주문한다. 저마다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 이런 모양 저런 모양의 사람들이지만 주변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냥 우리의 모습이다. 그래서 심야식당은 친근하게 다가온다.
"문 닫습니다."라는 말 대신 "세월은 이길 수 없다."라는 문 닫은 상점의 센스 있는 말은 잠시 가던 길도 멈추게 된다. 그런 동네에 이 심야식당이 있다. 오밀조밀한 상점과 식당들이 있는 골목을 지나면 따뜻한 나의 보금자리도 혹시 나오지 않을까 착각도 든다.
동네 메밀 국숫집 주인은 어리숙한 아들이 하나 있다. 자립심 없는 아들이 죽은 남편을 전혀 닮지 않았다고 심야식당에 와서 푸념을 늘어놓는다. 그러다 아들의 한참 위인 여자 친구를 우연히 이 식당에서 알게 된다. 그리고 아들이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그녀라는 걸 알게 되고 심한 반대에 나서는 그녀. 홀로 아들을 키우는 엄마의 마음은 그를 보내고 싶지 않다. 게다가 나이 차이도 심한 연상이라니 더더욱 그렇다.
아들은 메밀국수를 이어받겠다며 열심 모드로 삶이 바뀐다. 결혼하고픈 그녀를 위해서. 아들 있는 엄마 입장에서 좀 서운해지기는 하지만 그것도 우리 삶이다. 그리고 그게 맞다. 잔소리로 아들을 바꿀 수 없지만, 여자로 아들을 바꿀 수는 있다. 암, 그렇지.
보이스피싱으로 사기를 당한 할머니의 마지막 돼지고기 된장국은 보는 이로 하여금 눈물짓게 했다. 아들을 놓고 도망쳐 나온 엄마의 평생 죄책감이, 아들이 좋아하던 된장국을 못 먹게 했다. 멀리서 아들 모습만 바라보았던 할머니는 "이제 되었다."로 그동안의 무게를 내려놓았다. 된장국은 할머니의 오랜 마음을 만졌다. 마스터의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된장국은 그렇게 한 세대를 넘어 사람들을 위로한다.
심야식당의 마스터, 그가 내놓는 음식은 인간에게 따뜻한 온정을 선물한다. 나도 그들의 틈에 끼어 온국수 한 그릇 주문해 먹을 수 있을까. 그런데 그런 곳이 정말 있기는 한 걸까?
산 날보다 살 날이 더 적다고 생각한 한 할아버지가 있었다. 자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기록하며 사는 사람이었는데 영화 마지막엔 이렇게 말한다.
"뭘 먹느냐보다 누구와 먹느냐가 중요한 거야."
그 식당에 함께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오~~~를 외친다. 심야식당은 그런 곳이다. 혼자이지만 함께하는 곳! 혹시 이런 곳을 안다면, 나에게도 귀띔을 해주길 바란다. 그곳에서 풀어낸 내 이야기에 마스터의 "소까(그렇군요)"와 같은 말을 들을지도.
<심야식당2>에서는 왜 혼밥을 해도 함께, 가 되는 이유는
1. 심야에 모인다는 특징이 있어서
2. 마스터의 온화한 받아들임 때문
3. 그 중심에 정성으로 만든 한 그릇의 음식이 있다는 것!
오늘도 죽음이 가까이 도처한 가운데 살고 있지만,
하루를 감사하게 나의 행복을 드러내고, 아픔을 드러내고 그렇게 토닥토닥 살아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