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앤 Apr 16. 2021

엄마,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코로나 시대 우리의 소원

 아이와 나, 분리는 이미 시작되었다. 이쯤 되면 아이를 키워 본 엄마들은 안다.


'흠, 곧 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때가 되었군!'


 엄마가 나와 일체가 아니라는 걸 이제는 확실히 알고도 남을 나이 3살. 아이는 이미 자기 또래의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아이에게도 사회생활이 필요하다!'


 나는 이 말을 들었을 때 앗, 하고 속으로 놀랐다. 엄마도 아이가 한 개체임을 인지해야만 했다. 육아가 힘들다, 하면서도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 아이를 두는 일은 또 싫은 이 양면의 마음은 뭐란 말인가.


 예전이었으면 떠밀려서라도 프리스쿨을 보낼 준비를 할 텐데 (솔직히 그러면서 엄마도 약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아직은 내가 데리고 있게 생겼다. 안도가 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나는 막내로 자랐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와 오빠는 내가 생각하기에 늘 바빴다. 엄마가 집 마당 수돗가에서 큰 다라를 놓고 빨래를 하고 나는 옆에서 심심해하며 엄마가 사다 준 빠다코코넛 과자를 야금야금 먹고 있던 때가 기억이 난다.


 그리고 얼마 뒤 나는 유치원에 가게 되었다. 또 다른 세계였다. 내 또래 아이들이 함께 모여 노래 부르고 미술을 하고 춤을 추었다. 견학도 갔다. 모든 걸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나의 사회생활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사회생활은 과연 언제부터 가능할까.


 코로나가 시작되며 마스크를 써야 할 시기가 왔을 때 우리 가족은 마트에 가게 되었다. 남편과 나는 어색하기 짝이 없는 마스크를 차에서 내리기 전에 주섬주섬 찾아서 썼다. 남편이 아이를 차에서 내려 마스크를 씌워 주었다.


 "이거 마스크인데 해야지 건물 안에 들어갈 수 있어! 봐, 엄마랑 아빠도 다 했지?"


 아이는 나와 남편을 번갈아 쳐다보고 그제야 상황을 받아들였다. 장을 보는 내내 아이는 마스크에 손을 댔다. 그래도 써야 한다고 말하니 벗지는 않은 게 다행이었다. 그 후 우리는 1년이 지나도록 마스크를 벗지 못했다.


 종종 갓 태어난 아이를 데리고 마트에 오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 공기 안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신생아에게는 마스크를 씌울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태어나지 않은 게 또 얼마나 다행인가 하면서도 이대로 큰 아이들이 앞으로 더 큰 바이러스 앞에 서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참담해졌다.


 우리 모두는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재앙 같은 시대를 살아내고 있고, 그 안에서 변해가는 트렌드를 맞이하며 살고 있다. 랜선 부동산이라든가 랜선 집들이, 파티 등이 등장하고, 온택트 시대라며 전시회나 미술관조차도 온라인으로 구성되어 집에서 즐기게 되었다. 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엄아 아빠 다녀오겠습니다."같은 말은 이제 십 대 아이들에게서 매일 들을 수도 없는 말이 되었다.


 어린아이라고 다를까. 어린이집(미국에서는 데이케어 혹은 프리스쿨)에 가야 하는데 갈 수가 없다. 내가 사는 곳은 미국이다 보니 이곳은 한국보다도 몇 배나 심각한 코로나로 몸을 사려 야만 한다. 처음에는 비즈니스들도 문을 닫고, 마트와 식당만 운영하더니 이제는 그 규제도 풀리게 되어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내가 사는 주만 해도 하루 5000명이 넘는다.


 이런 상황에 어린이집은 생각할 수도 없다. 아이는 종일 나만 바라보고 있다. 오늘은 또 뭐 하지, 또 뭐 먹지 등 매일 생각해야 하는 고충과 끊임없는 육아 노동력과 인내가 고스란히 내 차지가 되었다.


 아이는 얼마나 지루할까, 생각하면 마음이 또 좋지 않다. 또래의 아이들과 뒹굴며 이런 놀이 저런 놀이 접해봐야 하는데 그 발달이 지연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속이 상한다.


 그렇다고 맞벌이들이 눈물을 삼키며 어쩔 수 없이 보내야 하는 어린이집에 내가 굳이 보내기도 싫다.

 

"엄마 나 친구 좀 만나고 오께에~"

"어? 어 그.. 그래"


 잠시 후 아이는 곰돌이 인형과 개미 인형을 양손에 들고 돌아왔다.


 "엄마 친구 데리고 왔어"


 그 모습이 어이없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는 건 나뿐만은 아닌 것 같다. 아이보다 한 살 위인 아이 엄마도 답답한 건 마찬가지다.


 "애가 4살인데 알파벳을 몰라. 내가 가르쳐줘도 안 하려고 해. 이럴 때 어린이집 보내면 좀 낫지 않아?"


 이렇게 아쉬움을 토로한다.

우리 모두는 이런 시기가 한때이기만을 바란다. 올해가 가기 전에 뭐 그것도 안되면 내년에라도, 백신을 맞고 많은 사람들이 이 코로나를 이길 수 있는 저항력이 생기기를 말이다.


 그러면 어느샌가 이런 말이 들려오지 않을까.


 "엄마,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혼자만 먹는 스낵 <사진 에세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