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클로이 Sep 11. 2022

누구나 자신만의 어둠 속에서 산다

<쇼코의 미소>를 읽고


마지막 추석 연휴에 혼자 호캉스를 하는 중이다.

아무도 없는 호텔방에서 최은영 작가의 <쇼코의 미소>를 읽었다.


원래 한국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서정적이고, 묘하게 한스럽고 억울한 정서가  반복되고 결정적으로 나와 감정선이 잘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항상 서양 고전 소설이나 일본 소설을 좋아했다.


하지만 최은영 작가의 소설은 읽는 순간 막힘없이 흘러갔다. 소설이 아닌, 나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문장들에 빠져들었다. 문장이 간결하면서도 핀셋으로 마치 심장을 콕콕 찌르는 것 같다. 노벨상 수상자인 '앨리스 먼로'의 소설과 결이 비슷한 느낌이 든다.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하고, 굉장히 사실적이다. 무척 진실하다.


독후감 대회에 나가려고 지정 도서인 <밝은 밤>이라는 소설을 우연히 읽고, 새벽까지 오열한 후, 단편집 <쇼코의 미소>와 <내게 무해한 사람>을 빌렸다.


제목이 <쇼코의 미소>라니, 뭔가 싶었는데, 고등학생 때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온 일본인 여학생 '쇼코'와 주인공 '소유'에 관한 이야기였다.


쇼핑중독인 고모와 아픈 할아버지와 함께 살며 우울증을 앓고 있던 쇼코는, 소유와 소유의 할아버지와 함께 한국에서 짧지만 깊은 우정을 나누고 일본으로 돌아가서도 종종 편지를 보낸다.


소유는 쇼코가 할아버지의 병으로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던 것을 포기했다는 소식을 듣고 일본으로 직접 가서 그녀를 만나지만, 정신이 온전치 못한 쇼코를 보며 마음이 심란해지며 동시에 우월감도 느낀다.


그러나, 소유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쇼코가 그동안 소유의 할아버지에게 받은 편지를 건네러 한국에 오자, 상황이 반전됨을 느낀다. 그때는 쇼코에게 우월감을 느꼈지만, 지금은 아니다. 두 사람은 할아버지의 죽음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서로 공감하며 같이 시간을 보낸다.





병든 노인, 아버지의 부재, 홀로 고독하게 자라난 십 대 시절... 이 소설을 읽으며 내 마음이 동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아픈 할머니와 있어도 없는 듯한 아버지, 고독한 십 대 시절 등 '쇼코'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쇼코가 내 눈앞에 있다면, 말이 통하지 않아도(물론 영어로 대화했겠지만) 단숨에 친해졌을 것이다.


아마 나도 집요한 의지가 없었더라면 쇼코처럼 무너졌을 것이다.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자신의 삶을 책임지지 못한 고집 센 어른들과 가족 간 소통의 부재는 마음에 오랜 생채기를 남긴다.


내내 그늘이 지게 한다.


혼자 어디론가 달아나고 싶게 한다. 사람들 속에 있어도 숨 막히는 기분이 들게 한다. 공감할 수 없으니깐..


최은영 소설의 특징은 그러한 온전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라난(특히 아버지의 부재) 여성 캐릭터들이 연대한다는 점이다. 결국에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것은 같은 경험을 지닌 여자들 뿐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소설 속의 할아버지들 같은 무능력한 우리 아버지도,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주인공의 엄마 같은 사람도, 대학 입시를 앞두고 삶을 바꿀 기회를 놓친 쇼코도 모두 이해가 간다. 모두들 삶의 어느 한 지점에서 마음의 문을 닫으면 다시 열기가 쉽지가 않다.


누구나 그렇게 자신 만의 어둠 속에서 살아가고 일정 나이를 넘어버리면 어둠 속이 더 편해진다. 억지로 자신을 바꾸거나 환경을 바꾸지 않으면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나 자신을 바꾸더라도 그늘은 마음의 일부로서 살아있다.


그러나 가끔은 이렇게, 책을 통해서라도, 내가 그늘 안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진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두운 구석이 있지만, 나의 감수성과 공감능력, 포용력도 그 그늘에서 나오기 때문에 유감은 없다. 나의 일부일 뿐이다.



주인공은 공항에서 쇼코를 배웅하며 어린 시절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쇼코의 예의 바른 미소를 보며 마음이 순간 서늘해진다.


쇼코는 아마 내내 그늘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주인공도 할아버지에 대한 부채감을 내내 안고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한 번쯤은 둘의 존재를 떠올리며, 슬며시 웃을 수는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실된 마음의 정거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