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의 나답지 않게 감정이 확 올라오거나 극단적으로 우울해질 때 말이다. 최근에 몸이 별로 좋지 않아 병원을 왔다 갔다 하니 우울감이 살짝 깔려있었는데, 그 감정을 그냥 쭉 따라가 봤다.
마음공부와 감정수용에 관심이 많아서 의식적으로 내 감정을 3자의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은 잘 알지만, 이게 잘되는 때가 있고 안될 때도 있다. 며칠 전에는 객관적으로 보기보다는 그냥 끝까지 부정적인 감정을 느껴보았다.
몸이 아픔 -> 건강관리를 왜 안 했지? 너무 한심하다 -> 이때까지 남들이 다 관리할 땐 뭐 하고 병원비만 이렇게 내느냐 진작에 신경 쓰지! -> 내가 아프면 누가 챙겨줘, 넌 챙겨줄 사람도 없잖아 -> 아, 난 혼자구나. 내 곁에는 아무도 없구나. -> 몰랐니? 넌 늘 혼자였잖아. -> (정적) -> 너는 혼자야. -> 혼자일 뿐만 아니라, 늘 당했잖아. 아프고 힘들고 그래도 늘 참았잖아. -> 아 그랬지, 정말 부끄럽다. 살아있는 게 수치스럽다.
머릿속의 생각을 쭉-따라가 봤는데, 몸이 좋지 않아서 우울한 것이 아니라, 나의 내면의 깊은 곳에는 깊은 외로움과 수치심이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알고는 있었지만, 보통은 내 감정을 회피하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에 오랜만에 끝까지 감정을 느껴보았다.
생각보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많은 내가 존재하는데 그 끝에는 결국 <존재를 수치스러워하는 어린 여자아이가 있다는 것>이 직관적으로 느껴졌다. (보통은 이런저런 것으로 포장하고 합리화하기 때문에 잘 안 느껴진다)
몸이 좋지 않고, 누군가가 나를 힘들게 하고, 상황이 풀리지 않고 이런 일들은 나의 내면을 돌아보게 하는 신호인 것이다.
태어난 것을 부끄러워하고 사랑받지 못한 것이 남들에게 보일까 봐 전전긍긍하는 어린아이가 내 가슴으로 분명히 느껴졌다. 정신 나간 소리 같지만, 그런 감각이 느껴졌다.
존재에 대한 수치심. 여자로 태어난 것에 대한 수치심. 그런 것들이 여전히 생생하게 있는 것 같다. 그것을 받아들여본다.
나이가 들어도, 바라봐주지 않는 인간의 내면은 어느 지점에 멈춰서 나아가지 못하고 고여가는 걸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