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에 일어난 일뿐만 아니라, 20대의 끝에서 내 인생 전체를 되돌아보며 힘들었던 인생의 하소연을 글을 통해 풀어냈다. 그럼에도 응어리진 감정들이 풀리지 않은 채 갈 곳을 잃은 채 고여 있었다.
브런치 북이 완성된다고 해서 힘들고 슬픈 감정이 마무리된 것은 아니었다.
2022년에는 처음으로 직장을 옮기고 죽을 만큼 힘들었다. 집에 와서 매일 울고 출근하고 하는 그런 일이 서른이 된 나에게 오랜만에 일어났고 현실의 고단함에 글도 거의 쓰지 않았다. 여러 가지 해결해야 할 '난제들'에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갔다.
2023년은 그래도 한숨은 돌렸지만, 여전히 여러 골치 아픈 일들로 마음은 불편했던 것 같다. 나는 그야말로 늘 '내면의 고통'과 '외면의 골칫거리'로 짬뽕된 고통으로 점철된 인간이었다.
더 이상의 갈등이나 감정을 유발하는 자극을 받아들일 힘도 에너지도 없어서 혼자 있는 것이 가장 편한 그런 사람, 그러나 내 감정을 건드리는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면 눈물이 줄줄줄 나는 사람.
나 자신을 생각할 때면, 어디선가 보았던 '정서적 탈진'이라는 단어가 늘 떠올랐다. '지나친 자기 연민', '피해의식'이라는 단어도 같이 떠올랐다.
정서적 탈진: 과도한 요구나 심리적 부담이 커지면서 신체와 정신의 에너지가 고갈되고 감정 자원이 바닥나 버린 것 같은 느낌. 탈진이 되면 업무 의욕과 신뢰감이 상실되고 무능력감, 좌절과 긴장감, 일 하는 것에 대한 심한 두려움 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출처: 국가정신건강정보포털)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나 자신에 대해 더 이상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기보다는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듯 말 듯하다. 이전에는 이런 나를 바꾸고 '마음의 평화'라는 것을 얻기 위해 온갖 것을 다해본 것 같다. 하지만 어디에도 내가 찾던 마음의 평화는 없었다. 정말로 그 어디에도 없었다.
마음의 평화라는 것은 정말로 있는 걸까?라고 거의 포기할 때쯤에,
뭔가 알게 된 것은,
마음의 평화는 '나 자신이 잘나 보이 든, 못나 보이 든 그렇구나 하고 다독일 수 있는 것', '나에게 함부로 하는 사람을 끊어내는 용기가 있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은 취하고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참지 않고 그때그때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화라는 것은 손안에 들어오는, 획득가능한 어떤 '지위(status)'이 아니라, 나 자신이 만들어가는 '상태(state)'인 것이다.
손안에 넣어야 하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불안했던 것이다.
반면에, 그냥 내 인생에 평화라는 건 없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니(좀 과장해서 나를 도와주는 사람은 앞으로도 없을 거고, 사람들한테 또 뒷통수 맞을 거고, 인생에 갈등은 많을 거고, 그래도 스스로 해결해 나간다는 마음이다. 그래, 이게 내 인생이다. 어쩔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