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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이 Feb 04. 2022

마음의 사치

단순하고도 어려운 그것

예전에 한창 프랑수아즈 사강이라든가 프랑스 소설에 관심이 있었을 때, 알게 된 '아니 에르노'라는 작가의 <단순한 열정>이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이때는, 어릴 때라 좀 사랑에 대한 환상이 있어서 그런지, 이 문장이 참 로맨틱하게 느껴졌다.


'한 남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의 사치라니. 그럴듯하지 않은가, 특히 여자에게는. (소설의 내용은 좀 뜨악스럽다, 궁금하면 읽어보시길!) 그러나 지금의 나에게 사치는 더 이상 사랑은 아니고, 그렇다고 어떤 사치품이나 집은 아닌 것 같고,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인가 생각하면 그것은 더더욱 아닌 것 같다. (지성적인 삶은 네버 사절이다!ㅋ)


사치란 뭘까?


나는 사치를 생각하면, 항상 일본 작가 '다나베 세이코'의 <딸기를 으깨며>라는 책의 한 구절을 떠올린다.

35세의 이혼녀 주인공 노리코는 독신 생활로 돌아와서,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해서 이혼당하고 혼자가 되었다!>라는 세간의 루머를 무시하고 '딸기를 으깨 먹으며' 행복한 일상을 보낸다.


무엇이 행복이냐고 묻는다면, 옛날 일은 모두 '저세상일'처럼 느껴지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그만큼 지금 생활에 충실하다는 거니까. 정확히 말해 여기서 말하는 '저세상'이란 '이전 세계'라는 정도의 의미지,  앞으로 우리가 가게 될 미래의 '저세상'은 아니다.
진정한 건강이란 바로 여유를 의미한다. 어느 정도까지 건강하면, 그 어느 정도까지의 건강을 주심에 감사하는 여유를 말하는데, 그렇다면 누구에게 감사할 것인가? 아마도 하느님이니 부처님이니 조상님을 들어야 마땅하겠지만, 그에 대해서는 나중에 정리하기로 하고 일단 패스.


*다나베 세이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원작 소설의 작가. 몇 년 전에 별세하신 걸로 안다. 나이가 많으신 분이 쓴 소설이 그렇게 세련될 수 있을까 싶다. <딸기를 으깨며>는 '노리코'라는 여자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의 마지막 이야기이다.  


이 소설을 읽을 때마다, '마음의 사치'라는 게 역시나 최고가 아닐까 생각한다. 흔히 우리는 돈도 있고 집도 있고 사람도 있고 모든 게 있어서, 조건을 하나하나 채워나가야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렇게 느끼지만, 어느 순간 그것도 모두 프레임이 아닐까? 싶다. 모두 다 있어도 불행한 사람은 넘쳐난다, 반면에 모두 없어도 잘사는 사람도 많다. (우리 사회에 퍼진 SNS 과시주의도 이를 반증하지 않는가)


내가 가장 행복할 때는 역시 아무것에도 크게 욕심이 나지 않고 내 존재 그 자체로 만족할 때이다.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원하는 물건을 가진다고 해서, 원하는 이상형의 남자를 만난다고 해서 그 이상 더 행복하진 않을 것 같다. 물론 신포도 논리일 수도 있지만. 어떤 것에 기대하고 집착을 하면 '나'를 잃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나 자신에게 자신이 없고 결핍이 심하면 심할수록 돈이나 관계에 대한 집착도 더 커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행복을 느끼는 상태가 아니라, 행복을 갈망하는 갈증이며 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대상'이라는 것이다.


올해 초에 서른 기념(그냥 갖다 붙임)으로 명품백을 사려고 하다가 결국엔 사지 않았다.(요즘은 특히 코로나 때문에 해외여행을 많이 못 가니 명품 인기가 높아진다)


사고 싶으면 샀을 것이다. 그런데 뭔가 명품백을 찾고 있는 내 기분이 '이걸 내가 진짜 원하거나 필요해서 사는 것도 아니고, 단순한 기분 전환용일 뿐이다.'라는 생각이 드니 별로 사고 싶지 않아 졌다. 왜, 새벽에 배고플 때 라면 찾는 기분 있지 않은가, 그 기분이 딱 드는 순간 마음이 사라졌다.


새벽에 배고파서 라면을 먹으면 죽이도록 맛있지만 먹고 나면 허무하고 건강에 좋지 않다. 나는 그런 기분을 세상에서 제일 싫어한다. 그런 나 자신(인간)의 감정의 작용 기제를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이런저런 일들에 대해 기준을 세운다. 어쩌면 내가 하는 행동도 생각보다 내가 원하는 게 아닐 수 있음을, 무의식적으로 입력된 프레임일수 있음을 적어도 인지하고 행동하려 한다.


지금의 나에게는 솔직히 명품백이나 물질적인 것보다는 쾌적한 장소에서 매일 아침 일어나 요가나 필라테스를 하루종일 하며 맛있는 것을 적당히 먹으며 조용하게 사는 삶이 최고의 극치로 느껴진다. (이게 더 욕심인가?)


몸과 건강에 더 집중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지금은 그게 최고다.


나 자체로 만족할 수 있는 삶, 기분을 바꾸기 위해 이런저런 결핍으로 허무함을 돈을 주거나 시간을 들여 사지 않는 삶. 그 순간 가장 맛있는 딸기를 으깨 먹으며 건강하게 행복한 삶.


그것이 진정한 사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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