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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고양이 Nov 06. 2024

1991년 11월 지방행정서기로 인생   첫 승진!

반짝반짝 찬란했던 20대 청춘 8급 시절!

1991년 11월 16일 만 21살이 된 나는 지방행정서기로 공무원 인생 첫 승진을 하여 그 당시 A구에서 가장 큰 동이었던 Y동으로 발령을 받았다.


Y동은 인구수가 가장 많은 동이라서 직원수도 많았었다. 10명도 안되었던 T동에 비하면 인원이 거의 2가량 되었던 거 같다. T동에서는 주민등록 업무를 나 혼자 봤었는데 Y동은 3명이 나누어 업무를 봤다. 등초본 발급 등 민원발급업무, 전입신고, 주민등록 일반 업무 이렇게 3명이 나누어 업무를 봤었다. 그리고 특색 있다고 하면 젊은 직원들이 참으로 많았다는 것이다. 나는 발령초에는 주민등록 일반  업무를 보았었다. 그러다가 신규직원이 왔는데 나보다 2살 정도 많았던 언니였다. 원래 신규직원이 주민등록 등초본 발급업무를 보게 되는데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가 등초본 발급업무를 보는 것이 맘에 걸려 내가  등초본발급업무를 보겠다고 했고 언니는 그런 나에게 고맙다고 하였다.


Y동 발령 초에는 소규모로 가족적이었던 T동이 너무 그리웠고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으나 모든 것은 시간이 다 해결해 주는 법.. 조금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Y동에 적응을 해나가고 있었다. Y동으로 발령 나기 전까지 나는 아직도 시골에서 통근을 하고 있었는데 Y동은  업무도 많고 야근을 많이 해야 해서 자취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또한 통근을 하면서 만난 대학생이 된 친구들 모습을 보며 나도 대학생이 되고 싶었고  공부라면 자신이 있었기에 대학을 가리라 결심을 했다.


당시 동사무소에서 전산요원으로 동에서 근무하던 언니가 자취를 하고 있어서 언니 소개로 동사무소 가까운 곳에 자취방을 구했다. 계약 전에 엄마랑 상의하고 계약도 할법한데 만 22살의 나는 얼마나 당돌했는지 나 혼자 Y동 사무소 근처에서 방 1칸, 부엌 1칸이 있는 자취방을 월세로 구하고 계약까지 마치고 이사 일주일 전에야 엄마에게 방을 구했노라고 말씀을 드렸다.

엄마는 깜짝 놀라시면서 어떻게 엄마에게 상의도 안 하고 그럴 수 있느냐고 서운해하셨지만 야근을 해야 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나의 말에 이해를 해 주셨다.   


이사가 결정되고 엄마가 용달차를 빌리셔서 얼마 되지도 않는 짐을 싣고 자취방으로 이사를 왔다. 간단한 살림거리 등을 근처 Y시장에서 구입해 주시고 저녁을 같이 해 먹고 엄마는 시골로 되돌아가셨다.

마가 시골로 내려가시고 막상 혼자가 되니 외로움과 약간의 두려움이 몰려왔다.  자취를 결정하고 이삿짐을 나를 때까지도 아무런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이사 첫날 엄마가 돌아가시고 혼자가 되었을 때 나는 눈물이 절로 흐르며  자취방에서 소리 내울고 말았다. 


이듬해에는 언니와 D시에서 대학을 다니던 남동생 이렇게 셋이서 같이 D시에서 생활을 하였기에 외로움은 덜어졌. 셋이서 자취생활을 할 때 언니가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우리들의 밥을 해주었는데 음식도 잘하던 우리 언니였다. 역시 장녀는 어디가 달라도 다른 거 같다. 지금도 언니는 엄마 근처에서 살며 자주 찾아뵈며 효도를 다하고 있는 K장녀이다.


 시장 한복판에 있던 Y동은 일주일에 두 번 장이 섰는데 그때마다 사람들로 넘쳐났고 시장통 기름집에서 나던 들기름, 참기름 냄새는 너무나 고소했다. 민원이 너무 많아서 정신이 없었던  나는 Y동으로 발령받은 지 약 1년이 되어가던 무렵 생각지도 못했는데 1992.10.14일 자로  본청 사회과로  발령이 났다.

 드디어 동을 벗어나서 나도 본청에 근무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었다. 가슴이 마구 설레었다.!


동사무소 두 곳에서만 근무하던 나는 처음으로 1992년 10월 14일 A구 본청으로 발령이 났다. 처음 수습을 받았던 사회과였다. 그 당시 사회과는 현재 복지부서에서 추진하는 업무를 하던 곳으로 공무원 첫 수습발령도 사회과, 본청 첫 발령도 사회과였으며, 이후 인사교류로 타시로 전입 후에도 나는 복지부서에 꽤 오랫동안 근무하는 등 나와 복지는 아주 인연이 깊은 부서였다.


처음 본청으로 발령받게 된 나는 엄청 떨렸었다. 그 당시 우리 사회팀 k계장님(당시는 팀장님을 계장님으로 부르던 시절이었다)은 아주 엄하고  깐깐하시다고 소문이 나셨던 분이어서 정말로 엄청 긴장을 했었다. 아직도 사회계장님 성함도 얼굴도 목소리도 똑똑히 기억이 난다. 그만큼 본청에서 처음 만난 계장님은 나를 혹독히 교육시켜 주셨고 그것은 나의 공무원 인생에 큰 도움이 되었다.


본청 사회과로 발령받은 뒤 나의 업무는 서무, 회계였다. 현재 지출 업무는 이호조 프로그램을 써서 전산화가 되어 있으나 그때는 모든 지출을 수작업으로 처리하던 때였다. 세출예산정리부, 현금출납부, 지급명령부 등 수기로 작성해야 장부도 많았고 아무것도 모르고 업무를 맡게 된 나는 업무에 실수투성이였다. 각 장부 간의 관계도 잘 알고 있어야 했고 서로 맞아야 하는 장부들도 서로 맞지 않는 등 동에서 민원만 보느라 지출업무를 몰랐던 나는 실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공무원의 가장 큰 단점은 업무 인계인수가 원활치 않다는 것이다. 길어야 반나절 정도 업무를 쭉 알려주고 그다음에는 온전히 업무를 감당해 내야 했다. 전화로 물어볼 수는 있지만 그분도 업무가 바쁘시고 구두로만 주고받으니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않았다.


그때 우리 장님은 부드럽게 설명해 주시기보다 근엄하고 엄한 목소리로 꾸짖으셔서 나를 엄청 긴장시켰다. 그래도 엄한 계장님  덕분에 일을 금방 익히게 된 거 같다. 그 계장님은 아주 꼼꼼하신 분이셨는데 이후 얼마 있다가  경리계장으로 발령이 나셨다. 지금은 계약과 지출업무가 분리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두 가지 업무를 다 보았던 경리계는 아주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부서로 이후 계장님은 승승장구하셨다.

사회과 초창기에 업무를 조금 헤매기도 하였으나 그래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서 서무, 회계 업무에  익숙해졌고 나이도 어린 나를 직원분들은 칭찬도 많이 해주셨고 정말로 예뻐해 주셨다.

(1994년 사회과 사무실 _ 그때는 사무실에서도 담배를 피우던 시절이었다! 퇴근 후 집에 가면 머리에서 담배 냄새가... ㅠㅠ)


때 사회과에서 만난 인연들은 내가 D시를 떠날 때까지 이어졌고 지금도 정말 그리운 사람들이다.  사회과에 같은 팀에서 만났던 나와 나이가 같았던 A! 그 친구는 성격도 활달하고 일도 잘해서 직원들이 좋아했고 나이도 나와 같은데 어리바리했던 내게도 친절하게 대해줬다. 이후 A친구와는 D시를 떠나기 전까지 절친이 되었다.

또한 사회과 근무한 지 1년쯤 지났을 때 우리 부서로 나와  이름이 같았던 B친구가 옆 팀으로 발령을 받았는데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좋아서 아주 인기가 좋은 친구였다. 그 친구도 절친이 되었다.

그리고 청소팀에 근무하던 환경직인 C언니와도 엄청 친했었다. 언니는 나보다 두 살 정도 많았는데 큰 언니처럼 나를 잘 챙겨줬고 언니 남편분도 공무원이었는데 D시청에 근무했었다. 그래서 언니네 남편이 숙직을 하게 되면 나는 언니네 집에서 가서 잘 정도로 언니와 엄청 친했었다.

그렇게 우리 넷은 한 부서에서 근무하면서 엄청 친하고 재미있게 지냈었다.

 D시를 생각하면 늘 떠오르는 그립고 고마운 사람들이다.


또한 나와 D시 A구 1기 동기였던 H언니는 동기중 가장 친했던 언니로 나는 언니를 " 나의 정신적인 지주 "라고 불렀다. 그만큼 그 언니는 내가 어렵고 힘든 일을 상의할 때마다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언니였다.

그런 좋은 사람들과 보냈던 D시에서의 나의 20대는 생각해 보면 참으로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회과에서 나는 3년 6개월 동안을 근무하다가  이번에는 환경보호과로 1996.4.9 발령이 났다.  그때 작은 소동이 기억이 난다. 김영삼 대통령이 92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시면서 "작은 정부"를 표방하셨다. 그러면서 공무원들 채용은 거의 5~6년 넘게 동결이 되었고 환경보호과로 발령이 날 무렵 부서별로 과원이 되면 대기발령으로 낸다는 내용이 발표되었었다.

그때 우리 A구는 다른 지자체 눈치만 보고 있는데 과원이 된 인원들을 대기발령하는 조치를 전국 최초로 하였었다. 대기발령은 2년 정도? 인가 유예기간을 두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실제로 그 기간 중 그만두는 직원도 있었다. (결국 나중에는 유야무야 되었다..)


정원이 뭔지 이런 것도 잘 몰랐던 나는 환경보호과로 발령이 났는데 정원에 행정 8급이 1명도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내가 대기발령을 받았다고 혼자서 생각하고 조용히  사무실을 빠져나가서 발령장도 받으러 가지도 않고 집에서 울고 있었다. 결국은 인사팀 직원분이 전화 주셔서 대기발령이 아니고 9급과 8급은 같이 본다나?.. 뭐 이러면서 대기발령 아니라고 하셔서.. 집에서 반나절 칩거하던 나는 발령장을 받으러 나왔던 기억이 있다.

공무원은 신분보장이 되어 대기발령이 없는 것인데 그 당시 대기발령을 받았던 기능직 분들을 보며 나도 엄청 걱정했었는데 그렇게 오해를 하다니.. 인사 관련 부분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던 지방행정서기였다.


로 발령받은 환경보호과에서는 서무, 회계업무 외에 국토대청결 운동 업무를 맡게 되었다.  사실 행정 8급이 보기에는 약간 과한 업무였으나 이리저리 밀려 이제 막 부서로  신규 발령을 받은 나에게 업무가 떨어졌다

당시는 한 달에 한 번씩 관내 기관, 단체, 학교가 참여하여  대규모 환경정화활동을 하였는데 그것을 국토대청결 운동이라고 불렀다.  행사를 하게 될 때마다 긴장되고 부담이 되었으나 다행히 행사는 잘 치러졌고 그 당시 환경보호 주무 단체였던 A구자연보호협의회장님께서도 내가 당차고 일을 잘한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1996년 10월 자연호보호헌장 선포 기념식 행사 준비 중 찰칵~!

그러던 중 많은 공무원들의 인생이 바뀌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제1회 지방선거가 1996.5.27 치러졌다.  지방자치 선거가 있기 전에 공무원을 대상으로 지방자치 필요성 등에 대한 수차례  교육이 있었고 이후 선거가 있을 때에 지방 공무원이 사무원으로 참여해야 했기에 선거일에 쉬어 보는 것이 희망사항이 될 정도였다.

당시 지방선거 지방의원분들은 명예직으로 지금처럼 보수를 받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대부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던 동네 유지분들이 선거에 입후보하여 당선되던 시절이었다.

민선 1기 때에는 관선 시절에서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나는 8급 직원이었기에 변화를 실감하지 못했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공무원들이 감내(?) 해야 하는 부담은 더욱더 늘어났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경보호과에서 2년 6개월을 근무하고 1998.11.4 위생과로 발령이 났다. 위생과는 그 당시 구청장님 측근이라고 소문이 났던  분이 과장님으로 승진하여 오셨던 부서였고  당시 여성 5급 사무관은 흔한 일이 아니었을 때 거의 유일하게 여성 과장으로 발령받으신 아주 입지전적인 분이셨다. 나이가 50대이셨던 거 같은데 결혼도 안 하셨었고 아주 성격이 화끈하고 당차셨던 분으로 기억한다.  


서무, 회계로만 거의 6년을 근무하였기에 나는 서무, 회계 업무로는 거의 베테랑급이었다. 주마다 하는 주간업무보고, 월간업무 보고도 팀에서 바쁘거나 해서 자료를 안 주셔도 내가 찾아서 업무계획을 작성할 정도 업무를 익혔고 알아서 척척 해주는 나를 직원들도 예뻐해 주셨다.


직원들과 함께하는 봄, 가을 체육대회도 너무 재미있었고  그때 우리 구는 특색 있게 직원 체육대회(직원 야유회와는 별도로 추가로 개최하였다)연 1회 개최하였는데 그때 여직원들은 배구나 발야구에 참여하였는데 그것도 너무 재미있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주 5일제이나 그 당시에는 토요일도 출근하여 1시까지 근무 후 퇴근하던 시절이었는데 12시부터 점심식사시간이었고 메뉴는 잔치국수 등 간단한 메뉴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토요일은 사실 심도 있게 근무한다기보다는 직원 체육대회나 국토대청결운동 등 근무보다는 행사를 많이 개최했었 조금은 부담이 덜한 요일이었다. 지금은 주 5일제에 익숙해져서 어떻게 토요일까지 근무했나 싶지만 말이다.

2004년 7월 주 5일 근무제가 실시되며 없어졌지만 매년 11월~2월까지는 퇴근시간이 5시로 1시간이 단축되었었다. 그래서 매년 11월이 되면 점심식사 후 조금 있으면 퇴근시간이 금방 다가와서 아주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그러던 중 나는 1999.12.1 9급으로  임용된 지  8년 1개월 만에 7급으로  승진하면서  G동으로 발령을 받았다.  

동기가 5명이었는데 우리 1기 동기들은 8급, 7급다 같이 승진을 하였다.   근래에는 8급은 1년 6개월, 7급은 2년 등 총 3년 6개월 만에 7급으로 승진하는 경우도 많으나 우리가 7급으로 승진할 당시에는 작은 정부를 표방하던 시기라서 8급 근속승진연한인 8년을 넘겨서 7급으로 승진을 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였을까?.. 한 직급 승진하는 데 엄청난 시간을 필요로 했던 것이..


지독히도 관운이 없었던 시작이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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