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7기가 출범하면서 대폭적인 인사에 나는 2018년 7월 본청 복지정책과로 발령을 받았다. 수도과에 근무하면서는 고립된 느낌이었는데 본청으로 다시 발령받아서 너무 좋았다. 팀장으로 보직을 받은 지 3년 차였고 아직 사무관 승진도 멀었다고 생각하였기에 업무에 여유가 있는 부서로 발령이 나길 내심 바랬는데 주무과 주무팀장인 복지정책과 복지기획팀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주무팀장은 사무관 승진을 앞두거나 경력이 오래된 팀장님들이 보직을 받았으나 내가 팀장 보직을 받을 때부터 조금씩 무너져서 오히려 이제 막 팀장 보직을 받은 사람이 주무팀장을 맡는 사례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복지기획팀장으로 가서도 여전히 실무 업무를 맡았다. 당시 우리 팀에 공약사항이 3건 정도 있었는데 계획수립부터 실행까지 내가 추진하였다. 제일 먼저 추진한 전국 어디에도 없던 " 00000의 날 행사 추진"은 서둘러 조례제정도 완료하여 가장 첫 번째로 공약사항을 완료해 내었던 사업이었다.
아울러 추진했던 0000 기록화사업은 추진하는 나로서도 감동적인 사업이었다. 지역 내 도서관에서 육성한 동화작가가 00000 기록화 사업에 참여하고 관내 고등학생들을 그림 자원봉사로 참여시켜서 아주 뜻깊은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전년 연말에 시작해서 그다음 해 3월 중순에 완료를 하였으니 사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던 사업을 해냈었는데 정말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기에 그 사업을 이루어 냈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 동화작가를 대표해서 도와주셨던 U작가님과 이 사업을 중간에서 컨트롤해 줬던 P 등 지금까지도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업이고 사람들이다. 기록화사업은 지금도 이어져서 계속되고 있고 이후 00 문화대상을 차지하는 기초가 되었다.
복지기획팀장은 행사에 사회를 보게 되는 일이 참 많았다. 지금은 아나운서가 채용되어 큰 행사는 아나운서가 진행하나 그때는 업무담당 팀장이 진행하던 시절이었다. 신년참배, 현충일 행사, 사회복지 기념일 행사 등 행사가 많았는데 나는 거기서 나의 (숨겨져 있던!) 재능 하나를 발견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행사를 진행하는 일이 너무 재미가 있었다. 사람들도 내가 마치 아나운서처럼 진행을 잘하고 목소리도 좋다고 칭찬해 줬다. 마이크를 통해 나오는 내 목소리가 낭랑하게 들려서 나도 마이크를 통해 나오는 내 목소리를 좋아했다. ^^
진행 전에는 집에서 시나리오를 읽으며 핸드폰으로 녹음하면서 여러 번 듣고 연습을 하였다. 열심히 읽어보고 들어보면서 부족한 점을 고치는 연습을 계속했다. 연습을 하지 않으면 매끄럽게 말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복지기획팀장으로 근무하면서도 팀 직원이 갑작스러운 병가로 약 1달간 정도 자리가 공석이 되었다. 그때는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있어 정신없이 바쁠 때였지만 나도 업무를 하나 더 맡아서 그야말로 눈코뜰새도 없이 바쁘게 보냈다. 그래도 나머지 직원들이 다 베테랑이어서 내가 맡은 업무에만 신경 쓸 수 있어서 바쁜 가운데에서 즐거운 맘으로 일했다.
복지정책과에서 복지기획팀장으로 근무했었던 그때가 지금 생각해 봐도 가장 재미있게 일을 하고 행복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행사에서 사회를 보는 일은 나의 적성에 의의로 잘 맞았다.!
복지정책과에서 1년 2개월 정도 열심히 근무하던 나는 2019년 10월 총무과 총무팀장으로 발령을 받았다.어찌나 놀랍고 기뻤는지.. 총무과로 보내달라고 부탁한 적도 없었고.. 그저 열심히 일했을 뿐이었는데 나의 노력이 인정을 받아서 총무과 총무팀장으로 발탁받았다고 생각했다. 마치 공부를 열심히 해서 우등상을 받은 기분이었다.
총무과 총무팀장은 A구에서는 개청이래 내가 여성으로는 두 번째였고 총무팀장으로 발령받았을 때 만 49세로 (지금은 젊은 팀장이 많지만) 그때 당시에는 젊은 나이였다. 또한 총무과로 발령을 받았다는 것은 앞으로 사무관 승진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것으로 생각되는 경향이 있어 비교적 젊은 나이에 총무팀장을 가게 된 나를 곱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공무원 생활 34년 동안 어느 자리를 가고자 한 번도 로비를 해본 적이 없었기에 당당했었다. 내가 열심히 일을 한 것에 대한 결과로 생각하였기에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의식하지 않으려고 했다. 당시 나를 포함한 총무과 팀장은 3명이었는데 나머지 2분이 이미 사무관으로 승진의결을 받은 분들 이어서 나를 편하게 대해주셨다. 이후 두 분이 가시고 두 분의 팀장님이 새로 오셨다. 한분은 나랑 나이가 같지만 경력은 나보다 짧으신 분이었고 새로 오신 인사팀장님은 나보다 나이가 5살 이상 많았고 경력도 나보다 1~2년 오래된 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인사팀장님이 나보다 먼저 승진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고 인사팀장님을 앞서서 내가 먼저 승진하고자 하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인사팀장님과 과장님께도 인사팀장님께서 먼저 승진하시라고 나는 다음에 하겠다고 말씀드리기도 하였다.
나는 인사팀장님과 같은 부서에서 나이도 어린 내가 승진을 두고 경쟁을 펼치는 것은 꼴사나운 모습이라 생각했고.. 그분이 경력이 많으니 당연히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은 바보 같은 행동이었다. 설령 그때 내가 승진할 생각이 없더라도 같이 뛰어들었어야 하는 게 맞았을 거 같다. 그래야 그다음에라도 나를 쳐다봐주는 건데..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다음에는 챙겨주시겠지라는 허왕된 생각만 하고 있었다.
절실하지 않은데 애써 챙겨주지는 않는 법이다. 우는 아이에게 떡하나 준다는 말은 정말 맞는 말이었다.
총무팀장으로 근무한 지 5개월 만에 전국적으로 힘들었던 시기인 코로나19가 덮쳐왔다. 예전 메르스 때처럼 한 달이면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 19 팬데믹 상황은 거의 2년 가까이 이어졌다. 각종 행사는 취소되고 코로나19 관련 업무로 재편되었고 코로나19 각종 업무 동원에 정말 힘든 시기를 보냈다.
또한 제22대 국회의원선거와 제8회 전국 동시지방선거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실시되어 코로나19 환자가 투표소에 올 경우를 대비하여 6시 이후에는 공무원이 방호복을 입고 투표 관리를 해야 하는 등 힘든 상황이었다. 또한 코로나19 상황에서 주요 부서는 매일 아침 08:30까지 코로나19 관련 대책회의에 참석해야 했는데 일주일에 2번 정도는 회의를 참석해야 했고 회의는 거의 2시간 정도 진행되었었고 주말에도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다. 코로나19 상황이 악화되던 2022년 설날 연휴기간에는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매일 출근해서 일을 해야 했다.
민선 7기가 거의 끝나가는 2022년 1월에 사무관 승진 자리가 하나 있었다. 원래는 전년 12월 말에 인사가 다 끝났어야 하는데 5급 과장급 한분이 4급 국장급 임기제로 채용되면서 절차가 늦어지면서 다음 해 1월에 자리가 생기게 되었다.
그러던 중 생각지도 않았는데 나는 2022.1.1일 인사팀장으로 발령을 받았다.총무팀장으로 2년 4개월이나 있었는데.. 이 시기에 인사팀장으로 발령이라니.. 이번에는 날 승진시키지 않겠다는 얘기구나라고 직감했다.
선거직전에 인사팀장 발령은 조금은 부담스럽기도 하였으나 앞으로 남은 내 공무원 인생에서 총무팀장과 인사팀장을 해 볼 수 있는 것은 오히려 행운이지 않을까 하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선거 이후 상황 등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고 일에만 몰두했다.
인사팀장으로 발령받고 2주일 정도 후에 사무관 승진을 위한 인사위원회가 열렸다. 인사위원회 개최 결과 나와 6급 승진을 같이 했던 분이 민선 7기 마지막 5급 사무관이 되었다. 그때 많이 슬펐고 씁쓸했다. 왜냐하면 나는 당시 승진 후보자 명부 순위가 1위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직 만 52세니까.. 아직 젊으니까.. 앞으로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당시는 코로나19 상황으로 사무관 승진교육을 온라인으로 실시했기에 오히려 늦게 승진하더라도 오프라인으로 교육을 가서 다른 지자체에서 오신 분들과 직접 대면하면서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행운은 내게 오지 않았다.
그렇게 6개월 인사팀장 보직에 있던 시기인 2022. 6.1 제8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치러졌다.
지방선거가 끝났고 단체장님이 바뀌었다...
내가 총무과에 있다 하더라도 나는 정치적(?)이지 않고 일만 열심히 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했기에 선거 이후 영향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다.
선거 이후 첫인사인 2022년 7월 초에 나는 2년 8개월 정도 근무한 총무과를 떠나 다른 부서로 발령을 받았다.
화양연화(花樣年華)라는 영화를 좋아한다. 고혹적인 화면과 음악과 아련한 영화 내용까지.. 영화제목처럼 누구나 인생에 가장 빛나는 화양연화의 시절이 있을 것이다. 나의 공무원 생활을 되돌아보면 복지기획팀장부터 인사팀장까지의 시절일 것이다. 열심히 일했고 인정받았고 조직에 내가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되어 보람 있었다. 총무과보다는 특히 복지정책과에서 근무했던 그 시절이 나의 공무원 인생 중 가장 행복했던 황금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