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 나는 드디어 보육팀장을 팀장 보직을 받았다. 당시 국장님께서 근무경력도 오래되었던 나를 배려하시어.. 그래도 팀장보직은 다른 무보직보다 빨리 받게 되었다. 이는 내가 부탁한 일도 아니었고 나도 발령당시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러면서 국장님은 팀장보직을 쉬운 부서가 아닌 일을 많이 하는 부서로 가야 한다고 하셨고 그래서 교육지원팀과 연관이 되면서도 지금도 직원들이 꺼려하는 보육팀장으로 발령울 내주셨다.
첫 발령 이후로 26년 만의 일이었다. 참으로 긴 세월이었다.
그래도 만 46세에 팀장보직을 받았으니 당시에는 젊은 팀장이었다.
보육팀장 보직을 받느니 보직을 안 받는 게 나을 거라는 사람도 있었다. 나도 팀장 보직을 처음 받아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부담이 있었다. 또한 당시에 택지개발이 끝나고 C동의 입주가 시작되면서 어린이집 개설이 난항을 겪고 있어 조금은 힘든 시기였다. 보육팀은 그게 없어도 힘들고 바쁜 곳이었는데 새로 입주가 시작되려고 하고 있어서 가자마자 정신없이 일을 하게 되었다. 일복은 여전히 나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즐거웠었다. 비록 바쁘고 힘이 들기도 하였으나 처음으로 팀장 보직을 받았고 주무팀장이 아닌 점도 좋았고 팀장이지만 실무를 맡아 바쁘게 열심히 일하는 것도 즐거웠고(?) 고맙게도 그때 보육팀에서 만난 직원들이 다들 유능하고 좋은 직원들을 만났었다. 그때 우리 팀 직원이 인사치레일지 몰라도 나중에 팀장님 같은 팀장이 되고 싶다고 말해줬었다. 돌이켜보면 34년 긴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도 그래도 늘 좋은 사람들과 근무했음에 정말로 감사한 맘이 든다.
너무 정신없이 바쁘던 초보 팀장이던 그 시절 2016. 4월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다. 큰애는 고등학생이었으나 둘째는 아직도 만 10살로.. 육아와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던 사무실 일에 나는 아버지를 자주 찾아뵙지 못했었다. 약 2~3년간 특별한 병은 없으셨으나.. 아버지는 나날이 쇠약해지셨고 집에서 아버지를 돌보시던 엄마는 하루가 다르게 늙으셨다. 위험한 순간을 몇 번 겪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지금도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난다. 돌아가셨을 때도 슬프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버지가 많이 그립다. 왜 불효자가 장례식 때 그리 슬프게 우는지.. 살아계실 때 효도해야 하는지... 아버지를 잃고 조금은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나무에 기댈 줄 알게 되었다.
나무에 기대어 흐느껴 울 줄 알게 되었다.
나무의 그림자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 나무의 그림자가 될 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왜 나무그늘을 찾아 지게를 내려놓고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셨는지 알게 되었다.
(정호승 시인의 "아버지의 나이" 중에서)
보육팀장으로 근무하던 중에 단체장님이 선거법 위반으로 직을 상실하시게 되어 보궐선거를 통해 새로운 단체장님이 2년 임기로 새로 오시게 되었다. 나는 보육팀장으로 1년 9개월 정도 근무하고 2017년 9월에 수도과로 발령을 받았다. 수도과는 구청과는 별도로 A동에 정수장과 같이 사무실이 있었다. 본청 발령 14년 만에 처음으로 사업소 발령을 받았다. 처음 가보게 된 수도과는 낯설었다. 수도시설이 있어서 특수직렬에 계신 분들이 많았고 대부분 남성분들이었고 그분들은 그 분야에서만 근무하니 더욱 낯설었다.
나는 수도행정팀장으로 주무팀장이었다. 수도행정팀에서는 수도검침업무까지 맡고 있었는데 챙겨야 할 인원들이 상당했다. 분위기도 낯설고 업무도 낯설고 참으로... 어색했다. 또한 수도요금을 한 달에 한번 검침하여 한 달마다 부과하였기에 고지서를 뿌리고 나면 전화기가 쉴 새 없이 울릴 정도로 민원이 많았다.
그래도 처음 거기서 만났던 과장님께서 많은 배려를 해주셔서 그래도 위안이 되었고 옆팀에 계셨던 팀장님께도 본인도 D시 출신이셔서 처음 내가 이곳으로 올 때부터 나를 지켜보고 계셨다고 하셨고 고향사람이라며 잘 챙겨주셨다.
수도과에 근무하면서 나는 조금 힘들었는데 열악한 환경도 환경이고 한 달에 1~2번은 일직을 해야 했고 업무적으로 찾아오는 기관단체, 주민들도 없어서 거의 고립된 느낌이었다. 그래서 점심을 먹고 근처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 읽을 수 있어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다는 게 유일한(?!) 장점이었다.
그래도 유일하게 나를 찾아준 사람은 친했진 직원을 통해 알게 되었던 민간인 A였다. A는 나와 나이도 같았고 성도 같았다. 가끔씩 커피를 사들고 나를 찾아와 주었다. 가끔씩 나를 찾아와 주는 A가 얼마나 반갑고 고마웠던지.. 이후 정치적인(?) 이유로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지금은 멀어졌지만..
그래도 늘 고마워하고 있다고.. 행복을 기원한다고 A에게 말해 주고 싶다.
수도행정팀장으로 발령받으면서 새로 온 서무담당 직원이 9급 신규였는데 챙겨주고 가르쳐줘야 할 부분도 많았다. 그러다 그 직원이 온 지 4개월 정도 무렵에 임신을 하자마자 육아휴직에 들어갔고 대체 직원을 보내주지 않았다.
수도요금 부과업무 담당 직원을 제외하고 우리 팀은 나와 상수도 회계담당, 서무, 일반회계담당 이렇게 3명이었는데 1명이 들어가니 그야말로 난감이었다. 고민 끝에 내가 서무를 볼 테니 상수도 회계담당 직원에게 일반회계담당을 보라고 부탁했다. 다행히 그 직원도 오케이 하여.. 우리는 둘이서 수도행정팀 일반업무를 나누어 보게 되었다. 그 직원은 팀장님이 일반 업무를 보겠다고 하는 경우는 없는데 나보고 고맙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 직원이 당시 인사팀장님과 친분이 있었던 건지 인사팀장님에게 전화하여 우리 팀장님이 서무 업무까지 보고 계신다.. 어서 직원을 배치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하였다. 약 2주가량 업무를 처리하던 중 직원이 새로 배치되었다. 너무나 고마운 일이었다. 그래서 한숨 돌리게 되었다.
팀장 보직을 받으면서 가장 어려웠던 게 이런 점이었다. 나의 경우 팀의 직원이 완벽하게 채워질 때가 거의 없었다. 항상 팀원 중에 누군가가 육아휴직을 가거나 병가를 가거나 하였다. ㅠㅠ 그럴 때 업무를 직원들에게만 넘기기에는 너무 미안해서 나도 그중 가장 중요한 업무 하나씩은 맡았는데.. 이미 팀장으로서 일반 업무도 있는 데다가 팀 전체도 챙겨야 하고 결원이 된 직원의 업무까지 맡게 되니 팀장이 되어서도 바쁜 건 여전했다.
그렇게 수도과에 근무하던 중 민선 7기 지방선거가 2018.6.13 치러졌고 단체장님이 바뀌게 되었다.
민선 7기가 2018.7.1 출범하였고 나는 수도과에 근무한 지 9개월 만인 2018.7.4일 자로 본청 복지기획팀장으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