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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세아 May 25. 2023

불행이 자꾸 문 앞으로 찾아온다면


문득 요즘 불행이 계속 문 앞으로 찾아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속된 좋지 않은 상황에 숨이 턱턱 막혀오고 목이 아파왔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목이 부어오르기 시작한 게 5년 전쯤이다.

참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어디론가 걸어야만 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집과 가까운 산책로를 무작정 찾아갔다.
몇 년 전부터 존재를 알고 있었던 장소지만, 무기력함이 온 정신을 지배해 이 가까운 곳조차 찾아오기가 힘들었다.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도 침대에 널브러져 유튜브만 계속 돌려보던 날들의 연속.

생각보다 너무 좋은 공원이었다. 냇가에 물이 흐르고 청동색의 머리를 가진 새들이 가득하고 풀내음이 짙었다. 동네 사람들이 다 여기 있었나 싶을 정도로 운동하는 사람들의 생동감이 넘쳤다.

"예수님 믿으세요. 병도 다 고쳐줍니다."

아득하게 충격받은 채 풍경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아주머니가 물티슈를 건네며 말을 걸어왔다. 예전 같았으면 치를 떨며 차가운 눈으로 대답조차 안 했겠지만, 오늘은 어쩐지 그럴 수 없었다.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신이라는 존재를 믿지 않았지만 망설이게 됐기 때문이다. 지금도 무교이지만, 사람이 스스로 가능한 수치를 넘는 고통을 받으면 신을 찾게 된다는 걸 2년 전에 퇴사하면서 알았다. 제발 멈춰달라고 매일 울며 기도했었던 기억들. 그 기억들이 고스란히 리플레이됐다.

그래서 예의상 거절의 말이라도 하며 딴 곳을 쳐다보았다. 아주머니는 의외로 쉽게 사라졌고, 나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우울감이 느껴지면 무작정 걸으라는 글을 인터넷에서 많이 봐서, 일단 걷는데 처음에는 딱히 달라지는 게 없었다. 뭐, 난 사실 삶의 의지가 대단해서 나 스스로를 괴롭히는 타입이었기 때문에 우울증은 전혀 아니어서 효과가 미미한가 보다 생각했다.

그 좋아하던 음악도 듣고 싶은 게 없어서 한동안 안 들었기 때문에, 랜덤 재생을 해두었다. 그런데 너무 오래전에 듣고 잊고 있었던 노래가 갑자기 흘러나왔다. 조금 마음이 이상해지면서 18살의 나로 시공간이 뒤틀렸다. 그때에 이 노래를 들으면서 어떤 생각이었고, 어떤 나였고 하는 그런 상념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이소라 <Track9>


존재하는 게 허무해 울어도 지나면 그뿐
나대로 가고 멈추고 풀었네
세상은 어떻게든 나를 강하게 하고
평범한 불행 속에 살게 해
Hey you, don't forget 고독하게 만들어 널 다그쳐 살아가
매일 독하게 부족하게 만들어 널 다그쳐 흘러가  


그때도 이런 가사였나 싶을 만큼 가사들이 내 정곡을 찔렀다. 지금 내 상태를 구글 번역기로 돌리면 이 가사이지 않을까 싶을 만큼의 그런 내용이었다.

물론 좋은 순간들도 많았다. 하지만 어느새부턴가 내가 마음의 장벽을 모래성같이 쌓아놓으면 불행이 와서 무너뜨리고, 내가 다시 갖가지 방법으로 다시 세우면 또다시 무너뜨렸다. 이 짓을 반복하다가 결국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해?!'라고 소리 지르며 폭발해 버리는 게 오늘 같은 날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 노래를 들으며 걸으니까 내 맘속이 더 이상 슬프지 않았다. 이 노래가 여느 자기 개발서처럼 해결방법을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내 상황과 같았는데 그것만으로 위안이 돼버렸다.

'나만 불행한 게 아니구나.'

라는 사악하지만 솔직한 위안.

인간이 가진 공감이란 감정은 참으로 이상하다.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을 접하며 치유되는 감정.
그리고 그들이 담담히 이겨내며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결국 내 마음도 다잡아가며 서서히 쌓아 올리는 장벽. 그렇게 장벽은 또 쌓아진다.

한참 노래에 빠져 걷고 있으니 계단에 앉아 멍하니 물길을 바라보는 어떤 여자의 뒷모습이 눈에 띄었다. 불행한 게 분명한 뒷모습이었다.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끌어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외롭고 지친 뒷모습.

산책을 그만하고 카페에 들어가 글을 썼다. 언젠가 그 여자분 혹은 자신이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휴대폰을 하다 내 글을 발견할 수 있으니. 내 글을 보고 위안받으며 오늘도 다시 일어나서 모래성을 쌓을 수 있도록.

여기도 불행이 가득하니 걱정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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