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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세아 Sep 19. 2023

이직의 이상과 현실

어느 회사든 단점은 존재한다


번아웃과 건강악화로 첫 번째 퇴사를 했다. 그 당시 나는 몇 개월간 막연히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말 그대로 침대에 처박혀서 하루종일 '쉬기'였다.

나의 좁은 5평 서울 원룸에는 오래된 노트북과 휴대폰이 다였다. 그 노트북으로 밀린 영화들을 보고, 휴대폰 작은 화면 속 이런저런 것들을 보며 하루종일 누워있었다. 몸을 움직이는 일이라곤 카페에 테이크 아웃을 하러 가거나, 마트에서 술을 사러 나가는 것뿐이었다.

현실 회피성 행동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힘들어서 퇴사를 한 만큼 완벽하게 휴식하는 것은 내게 중요했다. 사람에게는 개개인의 에너지 적정량이 있고, 자기 방식대로 휴식을 취하고 소진됐던 에너지를 채우는 것은 다음 행동을 실행하는 원동력이 된다.

어느 정도 쉬자 자연스레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나는 회사 다니면서 가장 하고 싶었던 영화 현장일을 해보고자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웬걸, 막상 행동으로 옮기려니 이상하게 망설이게 됐다. 연출부에 이력서만 내면 되는 일이었는데,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쉽게 실행되던 것이 현실이 되니 다르게 펼쳐진 것이다. 현실을 진실로 맞닥뜨려봐야 역시 얻는 것이 있었다. 나의 세계와 진짜 세계를 일치시키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에 대한 혼동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과 '원하는 일'은 엄연히 다른 문제였다. 하고 싶은 일은 말 그대로 이상적인 나의 꿈이다. 이상향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원하는 일이란 현실을 기반으로 내가 진정으로 이뤄내고 싶은 목표이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건 뭘까? 머릿속은 다시 혼란에 빠지고 방황의 늪에 잠식된 것 같았다.

나에겐 내가 너무 많았고 유튜브에는 직장인 브이로그가 즐비했다. 오히려 진로의 선택지가 사방팔방 튀어 오르는 물고기처럼 너무 많아서 더 정할 수가 없었다. 하나의 길만 선택하라니, 그건 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이석원의 <보통의 존재>라는 책에서 오징어가 쏟아지는 오징어배의 그 풍경은 평생에 잊을 수 없는 장관이었다고 써져 있는데, 마치 오징어들을 바라보는 이석원이 된 것만 같았다.

고민하던 사이에 내 첫 번째 회사에 대한 기억은 점점 미화되어 버리고 말았다. 아직 그 직업에 대한 애정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고, 다시 한번 그 일을 해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때마침 동종 업계에서 이직 제안이 왔다. 출근하고 집 와서 맥주 마시는 일정한 루틴이 슬슬 그리워지기 시작한 즈음에 귀신같이. 조금 고민하다 나는 결국 제안을 받아들이고 이력서를 넣어버렸다.

새로운 직업으로 방향을 바꾼다는 건 몇 개월 만에 결정할 문제가 아니고, 1-2년간은 충분히 생각하면서 시도해봐야 할 일이다. 당시의 나는 통장잔고가 떨어짐에 점점 조급해졌고 진로에 대한 방황의 괴로움이 커서 현실에 타협해 버렸다.

그 시간을 강인하게 이겨냈어야 했다. 만약 시간을 다시 돌린다면, 나는 대략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정한채로 퇴사할 것이다. 정하지 못한 채로 퇴사하니 이렇게 현실적인 문제들이 다른 것을 이겨버렸고 내가 원하는 걸 이루지 못해 버렸다.




내가 이직한 곳은 첫 번째 회사와는 180도 다른 회사였다. 같은 일을 하긴 하지만 체계가 없다시피 한 전 회사에 비해 아주 체계적이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업무도 주먹구구식보다는 FM방식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한다기에, 일적으로 성장하고 배울 수 있는 곳일 것 같았다.


연봉 VS 성장. 이직하는 사람들이 많이 고민하는 문제이지만 나는 과감히 성장을 선택했다. 단순히 연봉 높게 주는 회사보다는 탄탄한 기업에서 성장하고 오래 다니고 싶었다. 이게 내가 상상했던 이직의 '이상'이었다. 하지만 몇 개월 만에, 나는 역시 이상과 현실에는 분명한 괴리가 있다는 걸 또다시 느끼고 말았다.


1. 업무의 다름에 대한 혼란


처음 내가 당황에 직면한 문제는 회사마다 업무의 영역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 회사에서 했던 일들을 두 번째 회사에서는 하지 않았고, 첫 번째 회사에서 하지 않는 일들을 두 번째 회사에서는 했다. 이 차이들을 매뉴얼화해서 체크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고, 새 회사에 왔으니 업무를 진행하면서 알아서 적응을 해야 하는 부분인 것이다.


여기서 새로운 회사의 직원들과 업무의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소통이 필요하다. 기존 회사 직원들은 이직한 동료에게 회사의 룰들을 가르쳐주어야 하고, 당연히 똑같이 일했겠지 하고 단정 지어 버리거나 조금 더 알고 있다고 텃세를 부려서는 안 된다. 반대로 이직한 사람도 전 회사의 룰들을 들먹이며 고집을 부리거나, 새 회사의 체제들을 무시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직을 하면 기본적인 인사 제도부터 사용하는 프로그램까지 달라진다. 같은 직급이라도 요하는 업무영역과 역할도 다르다. 그래서 나는 일하면서 사소한 것 하나하나 전 회사와 비교가 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러니 이것을 기본적으로 인지하고 입사를 해야 하며, 회사에 나를 맞추기보단 내가 잘하는 포지션이나 역량을 소화해 낼 수 있는 회사에 이직을 해야 한다.


2. 어딜 가나 이상한 사람은 유형만 바꿔가며 있다.


내가 사회에서 마주한 가장 미워하게 된 사람. 다름 아닌 이직한 곳에서 나타났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 천사같이 행동했고, 나에게 서슴없이 다가와주었으며, 무엇이든 다 도와줄 것만 같았다. 낯선 이직 환경 속에 놓인 나는 그를 쉽게 신뢰하게 되었고, 의지했고 그의 친절함에 감동받았다. 그러나 너무 잘해주려고 하는 사람 또한 반대에 못지않게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몇 개월 뒤, 나는 깨닫게 되었다.


갑자기 하루아침에 그는 다른 인간이 되어있었다. 딱히 사이가 틀어질만한 사건은 없었다. 어느 순간 나와 말 한마디 섞고 싶어 하지 않았고, 일에서 나를 고립시키고 궁지로 몰았다. 쳐다보는 눈빛은 나를 온몸으로 싫어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사회에서는 물론, 살면서 처음 보는 사람의 유형에 나는 많이 당황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똑같은 수법으로 당한 피해자가 나포함 여럿이었다.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건 회사에서 '삐져버린다는 행위'였. 회사는 공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감정이 앞서서 일에 피해를 주는 것을 대부분 사람들은 꺼리게 된다. 여기는 학교가 아닌 회사, 개인적인 감정을 해결하지 않고 티만 낸다는 것은 내 기준으로 아마추어 같은 자세였다.


전에 다니던 회사를 떠올려보면, 동료와의 트러블은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다. 나를 스트레스 주던 상사들과도 말로 소통해 해결했으면 했지, 그 이상 감정의 골로 데려가는 사람은 없었다. 그 정도로 나의 불행을 바라는 사람, 무조건적으로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본적이 없었던 것. 어쩌면 행운의 시간들이었다.


나도 날이 갈수록 분노가 커졌다. 그래서 그와 똑같은 방법으로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나의 반응에 그는 적잖이 당황한 듯했다. 그는 내가 눈치 보며 먼저 굽히고 들어올 줄 알았겠지만, 나는 그 뻔한 수법을 받아줄 마음이 없었다. 우리는 몇 개월간 불편하고도 긴 싸움을 했다. 프로젝트가 잘 돌아갈 리가 없었다. 내 상상으로는 그를 몇 번이고 찔렀지만, 나의 진심을 절대로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대놓고 싸우거나 대화 몇 마디면 해결될걸 알지만 그렇게 풀리게 놔둘 수 없었다. 이미 나는 그를 죽도록 미워하는 상태였다.


다른 회사로의 이직 준비를 모두 마치고, 나는 그의 뒤통수에 비로소 섰다. 그를 찌를 시간이었다. 예상대로 그는 아무 타격받지 않은 척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우리는 애써 웃으며 괜찮은 척 끝내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은 채 커피를 마셨다.


첫 번째 회사에서는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상사에 스트레스받았다. 능력 있고 책임감 있게 프로젝트를 이끄는 상사가 있는 곳을 찾아 이직을 했지만, 거기서는 또 같이 일하는 동료가 문제였다. 전 회사의 단점이 없는 곳으로 이직했던 나의 이상에게, 다른 방면의 현실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직을 해도 이상한 사람은 유형만 바꿔가며 있는 것이었다.    


3. 내 안의 문제는 이직을 해도 마찬가지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내 안에 있다. 이미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 퇴사를 했고, 휴가기간 동안 그것에 대해 끝맺음을 내지 못한 채 끌려가듯 이직을 해버렸다. 회사를 다녀도 어딘지 계속 공허한 마음이 들었다. 기저에 깔려 있는 '하고 싶은 일'은 자꾸 불쑥불쑥 고개를 들었고, 일이 힘들어지자 그것은 더 심해졌다.


최종적인 꿈이 다른 방향이니 업무에도 의욕이 들지 않고 자꾸만 힘이 빠졌다. 원하지도 않는 일에 하루를 온종일 바쳐서 산다는 게 도저히 아니라는 생각만 들었다. 만약에 업무강도가 평범만 수준의 일을 했다면 나는 꿈을 외면한 채 계속 회사를 다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직업특성상 업무는 새벽까지 이어졌고 관계갈등까지 심해지자 내 꿈을 향한 의지는 되려 강해졌다.


어느새 계속 울면서 출근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눈물바람으로 지하철에 앉아 있는 나를 사람들은 다 안다는 듯 무표정하게 고개를 돌렸다. 모든 상황이 나를 힘들게 했고 지옥 속에 살고 있는 현실을 매일 마주했다. 그 사이 내 꿈은 계속 팽창했다. 내 안의 문제는 이직을 해도 해결되지 않는 것이었다.


뒤돌아보면 이직은 나에게 커다란 고통을 주었지만 그만큼 성장을 수반한 경험이었다. 고통만큼 성장한다고, 방황의 정점을 찍은 시간이었고 그 시간이 있었기에 현재의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만약 이 경험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미적지근하게 고민하며 회사를 다니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방황을 고통스럽게만 생각할 필요 없다. 방황을 팔 벌려 활짝 맞이해 보면, 그 끝에 해방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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