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초등생활
학기 초 상담주간, 학부모님들과 상담을 할 때면 듣는 단골 질문이 있다.
"우리 00이 학교에서 발표는 좀 하나요?"
학부모님들의 지대한 관심과는 달리, 아이들은 고학년이 될수록 점점 발표하기를 꺼려한다. 특히 6학년이 되면 발표 거부 스킬이 만렙에 다다르는데, 선생님의 눈길 피하기부터 하기 싫은 표정 짓기까지 발표를 안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의지(?)가 가히 대단하다.
그 열정으로 한 번이라도 손 들고 말 한마디라도 더 해보란 말이야!! (라고 아이들을 야단치지는 않으셨는가?)
괜찮다. 나도 그랬다.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왜 6학년 아이들은 발표를 싫어할까? 초등학교 1, 2 학년 때만 해도 선생님이 발표 한 번 안 시켜줬다고 죽을 상이 었던 그 아이들이 왜 지금은 혹여라도 본인이 발표자로 지목될까 봐 노심초사 전전긍긍하는 것일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인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므로 어느 날 수업시간 반 아이들에게 물어봤다.
"얘들아, 너네 6학년이 되면서 왜 발표를 잘 안 하는 거야?"
답이 나올 리 없지. 아이들에겐 이것도 일종의 발표니까!
그래서 방법을 바꾸었다. 매주 작성하는 주제 글쓰기(선생님과의 소통 경로), 쉬는 시간/방과 후 청소 시간(아이들 기분이 업 되어 있을 때) 등을 활용하여 아이들에게 은근슬쩍 다가가 보았다. 발표에 대해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무엇이 00 이의 발표 기회를 앗아가고 있는지 말이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나만의)을 얻을 수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아이들은 교우 관계를 그 무엇보다 중요시한다. 동시에 굉장히 예민해진다. 저/ 중학년 때 까지는 선생님에게 예쁨 받고 싶어 하는 마음,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라는 사람을 뽐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앞섰다면 고학년 시기에는 친구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혹여라도 내가 발표하는 모습을 보고 친구들이 나댄다고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 순간 두려운 마음이 손을 들고 정답을 말하고 싶은 욕구를 억제시키는 것이다.
- 2번은 아이들 뿐만 아니라 발표를 어려워하는 성인들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막 사춘기를 맞이하는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에게 발표를 함으로써 맞이하게 될 혹시 모를 부끄러운 상황은 그들이 중요시하는 교우 관계에 있어서 큰 오점이다. 따라서 아이들은 확실하지 않다고 생각되면 말하기를 꺼려한다.
설령 내가 아는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부끄러움이라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손을 들지 않는다.
-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해보면 부담감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겠다. 아이들은 또래집단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특별해지기보다는 보통의 친구들 편에 속해서 그 아이들과 동질감을 느끼고 편안함을 추구하고 싶어 한다.
아이들 입장에서 발표는 또래집단의 특성에서 벗어나는 행위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도 발표하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감 있게 손을 들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게 아이들에게는 자칫 큰 부담감으로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발표를 어려워하는 마음이 이해가 갔다. 소위 말하는 "이제 나이 좀 먹었다고 발표 안 하는 거야~?"라는 꼰대 마인드에서 벗어나 왜 발표를 안 하는지, 어떻게 하면 이야기를 꺼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이 발표를 싫어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나의 착각이자 선입견이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오히려 아이들은 말하고 싶어 했다. 다만 어려워하고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역할은? 아이들이 발표하는게 부끄럽고 두려운게 아니라 자연스럽고 편한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게 도음을 주는 것 아닐까?! 그 노력과 방법들은 다음 편에 이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