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초등생활
(지난 글에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수록 아이들이 점점 발표하지 않게 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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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이들은 발표하기를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어려워하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요소 때문에.
1. 아이들 앞에 나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
2. 혹시나 내가 말한 내용이 틀렸을 때 느끼게 될 부끄러움
3. 또래집단에서 벗어나는 행위를 한다는 부담감
올해 두 번째 6학년 담임을 맡게 되면서 고학년 아이들의 발표하지 않는 문화를 다시금 마주하게 되었다. 선생님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 번쩍 손을 드는 아이가 너무 많아 누구의 이야기를 먼저 들을지 고민했던 작년(4학년)과는 정 반대의 상황이 찾아온 것이다.
3월 한 달 아이들과 라포 형성하며 수업시간에 발표하지 않는 이유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 사실은, 발표를 하고 싶은데 뭔가 부끄럽고 눈치 보인다는 아이들의 솔직한 마음을 알게 되었다. (쉬는 시간에 와서 내게 이야기할 때에는 엄청난 이야기꾼들이다..)
사실 나도 어느 정도 짐작하곤 있었다. 교사의 고질병이랄까? 특출한 능력이랄까. 아이들의 눈빛, 아니 입꼬리, 조금 과장해서 숨소리만 들어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느 정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00 이는 분명히 지금 무언가 이야기하고 싶다. 그러나, 일부러 안 하고 있는 거야!'
바꾸고 싶었다. 바꾸기보다 도움을 주고 싶었다. 발표하는 게 나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각자의 의견을 자유롭게 펼쳐내는 것이 당연하고 바람직하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고민 끝에 나는 다음과 같은 방법들을 교실에 적용시켰고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 방법이 유효한 것 같다. 아이들의 발표를 이끌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발표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솔선수범하기로 결심했다. 사실 내가 하는 일이 매일 아이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이지만, 아이들에게 의도적으로 발표하는 자세, 자신감 있는 태도 등을 보여주기 위해서 좀 더 신경을 써서 발표를 진행했다.
처음에는 모두 한 번씩 발표해야 한다는 사실에 울상 짓던 아이들도 선생님의 발표를 듣더니 마음이 조금은 진정되어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구나 다 한 번씩 발표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이들의 두려운 감정을 줄여준 것 같다.
아이들이 발표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면, 일단 한 번씩은 모두 다 발표를 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보자. 그런 상황이 오히려 발표에 대한 심리적인 장벽을 낮춰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틀려도 괜찮아. 이건 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가 아니야. 자유롭게 이야기해봐도 돼." 아이들의 발표를 이끌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최대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틀린 답을 맞다고 이야기하라는 것이 아닌, 오답을 말했더라도 그 답을 도출한 과정을 존중해 주는 것이다.
친구들의 답변이 존중받는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아이들은 본인의 생각도 이야기해 볼 힘(자신감)을 얻는다. 다양한 답변을 얻고 싶다면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 아이들이 발표를 꺼려하는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이 바로 또래집단을 벗어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일 것이다. 왠지 내가 발표하면 유별난 아이가 되는 것 같고 나대는 아이가 될 것만 같기 때문에 쉽사리 손을 들지 못한다.
따라서 아이들의 부담감을 낮추기 위해서는 발표하는 행위가 또래집단(= 우리 반 친구들)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1, 2번 같은 방법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학급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이 과정은 단발성 활동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교사의 의도적인 노력 하에 점진적으로 발표하는 게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6학년이 되고 한 달 반이 흐른 지금, 다행히도 우리 반 아이들은 발표하는 게 자연스러운 학급 분위기에 잘 적응해 나가고 있다. 아직도 몇몇 아이들은 여전히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부끄러워 하지만 더 이상 발표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점점 잘 해낼 것이라 믿는다.
아이들은 발표를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어려워한다. 그렇지만, 분위기를 바꾸어 준다면, 조금만 더 열린 마음으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면 분명히 조금씩, 조금씩 이야기를 꺼내는 아이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발표 소리로 시끌벅적한 고학년 교실을 꿈 꾸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