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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사진

by 초동급부 Mar 0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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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철이에게.

크리스마스가 되려면 아직 한 두 달 더 남았는데 거리엔 온통 크리스마스 분위기야.
어제까지도 느끼지 못했었는데. 백화점 앞에는 온통 산타와 사슴모양의 나무로 장식되어 있고 번쩍번쩍한 조명까지... 다행히 캐럴이 흘러나오지 않아서 그래두 다음 달이라는 거쯤은 알 수가 있었지. 벌써 그렇게 되었나?... 시간이 참 빠르다. 작년에 나는 뭐 했더라... 너 면회 갔을 때 우리 크리스마스에 대해서 얘기했었지. 넌 작년에 집에서 티비 봤다고 그랬구 난 생각이 나지 않는 걸 보니까 그냥 집에 있었나 봐. 

올해는 또 뭐 할까?... 남들 다 끼리끼리 다닌다고 나까지 휩쓸리면 별 의미가 없는 거 같아. 그냥 집에나 있을까 봐. 여자끼리 몰려다니는 것두 비참하기두 하구, 없는 것 티 내는 것두 아니고... 흑흑... 어느새 크리스마스가 되고 또 내년이면 99년인데... 99란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그냥 막연히 내년이라고 생각했지 99년 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되게 이상하네 99년 곧 있으면 2000년... 마음만 바빠진다. 

너한테는 시간이 금방 흐를 거라고 했지만 정말 내 평생에 요즘같이 시간이 안 가는 건 처음이야.   
하루가 일 년 같고 일주일이 십 년 같아. 언제쯤 널 또 볼 수 있을까. 마음은 벌써 그곳에 가 있는데 저만치에 있는 시간은 왜 이리 더디기만 한지. 어서 오라고 재촉해두 예전보다 더 더디 가는 시간들... 정말 너 면회 갔다 오고 한 달은 흘렀을 거 같은데 어제로서 겨우 일주일 지났어. 이러다간 내가 더 폭삭 늙어버리는 건 아닌지 괜스레 걱정도 되는 걸... 시간은 항상 너 나오는(특박) 금요일이면 좋겠다. 그러면 너 들여보낼 걱정 같은것두 안 하고. 정말 짧은 거 같애. 2박 3일이 뭐야. 4박 5일쯤은 줘야지. 명 짧은 사람은 하고 싶은 것두 못 해보고 죽겠다. 우쒸. 괜히 열받네... 나도 웃긴다. 혼자 이 생각 저 생각에 열받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좌우지간 난 생각이 너무 많아서 탈이야. 잡생각 말야. 그래두 그중에서 하루도 빼먹지 않는 생각은 '넌 오늘 하루도 잘 해내고 있을까'라는 거... 많이 힘들 거란 생각. 얼른 널 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하고...
많이 힘들지?... 미안해. 아무런 도움이 돼 주지 못해서... 그냥 편지 보내는 거만 할 수 있구나... 나는...

집에서 연락은 자주 오는 거야?
너 그때 엄마 보고 싶다고 했던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려.
나보다 엄마가 오셨으면 우리 삼철이 더 좋았을 텐데... 진짜 그랬을 텐데...
다음번엔 엄마 사진도 갖고 들어가. 못난 내 사진 빼 버리구 엄마 사진 끼워 넣어. 알았지? 내가 확인할 거야.
못내 아쉬워하던 네 표정이 생각이 나서 얘기해 봤어. 괜한 내 얘기 때문에 또 엄마가 더 보고 싶은 거 아닌가 모르겠다... 그랬으면 정말 미안하구...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그냥 너의 생각은 어떤지 알고 싶어.
만약, 예전에 널 떠았던 여자가 정말루 사랑했던 그 여자가 네게로 돌아온다면, 돌아오고 싶다고 한다면, 넌 받아들일 수 있어? 근데 그렇게 하기는 힘들겠지? 다시 받아들인데도 예전의 감정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아니 없을 텐데...

사람들은 왜 후회할 일들을 하고는 나중에 가서야 아는 걸까? 차라리 그러지나 말지... 그냥 남자로서 너의 생각이 궁금해. 물론 지금 당장 해답을 들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항상 편지 쓸 때마다 물어보는 건 많은 거(? 많나?) 같은데 대답은 별로 못 듣는 거 같애. 그렇지? 만나서 잊어버리면 그만이잖아.

내일은 월요일. 비가 온데. 그리고 많이 추워진대. 충주도 비가 올는지는 모르겠다.
월요일은 정말 싫은데... 너는 다 싫지? 나두 알어. 근데 실은 나두 다 싫어. 근데 나 참 왜 이러니. 나잇값도 못하고... 웃지 마. 알았지?

혹시 내 꿈 꾸는지 모르겠지만. 꿈꾸게 되면 우리 꿈속에서 만나자.
참 어제는 또 네가 내 꿈속에 나왔던데. 이번에는 작은누나하고 엄마까지... 이상하다. 왜 너네 집 식구들이 내 꿈에 보이지? 꿈속에서 작은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꿈은 현실과 반대라니깐. 다행이지 뭐. 궁금하지? 뭔지? 메롱~(혓바닥 그림)

시간이 되는대로 다음에 또 편지 쓸게. 잘 자. 

1998. 11. 15.


꿈에서 깨며 일어났다.

작은 탈것 위에 부모님 두 분과 내가 올라 신나게 물 위를 달리며 어떤 멋진 곳을 구경했다. 그러던 중 어머니는 많이 와 본 곳이라며 나를 위해 작아서 불편한 그것에서 내리셨다. 밑도 끝도 없는 개꿈을 꾸고 아내의 편지를 읽었다. 보통은 미리 읽고 최소 2~3편가량 타이핑을 해 놓은 후 틈틈이 구상을 하고 발행 하루 전 글을 쓰는데, 요즘 일이 바빠서 그러지 못한다. 묘하게 편지에도 엄마 얘기가 있다. 


이어서 군생활 중에 있었던 사건 하나가 떠 올랐다.

이때보다는 한참 뒤로 내가 상병쯤 되었을 무렵 부대에서 국군의 날 행사를 했다. 가족들이 많이 오시도록 홍보하라는 공식 지시가 내려왔다. 나도 의무감에 이를 집에 알리긴 했지만 가족 중 누군가가 찾아올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다. 행사 당일 사전에 아무런 연락이 없다가 뿔쑥 아버지와 두 형이 왔다. 어머니만 제외하고 함께 거주하던 식구들이 모두 방문한 것이었다. 어머니의 부재에 대해 두 형에게 물었지만 정확한 답을 하지 않아 다시 아버지께 여쭈었다. 답변의 말은 기억하지 못하나 매우 불쾌한 표정으로 엄마를 비난했던 것은 생생하다. 크게 부부싸움을 하고 홧김에 급거 이곳에 온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막내 덕분에 F-16 전투기에도 앉아 봤다며 나쁘지 않은 기분으로 아버지는 내게 작별을 고했다. 그러나 나는 내내 기분이 좋지 못했다. 군대에 있는 막내아들 얼굴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에서 배재되어 혼자 남겨진, 100% 피해자였을 내 엄마의 마음이 어떠셨을지...


우리 집은 화목하지 않았다.

새벽꿈에서와 같이 엄마는 언제나 나쁜 것은 먼저이고 좋은 것에는 뒷전이었다. 상경한 후 내내 힘들게 일을 하셨고 심하면 폭력까지 행사하는 아버지로 인해 중·고등학교 때 나는 방과 후에는 집에 돌아오기 바빴다. 

그녀의 편지에는 내가 엄마를 그리워했던 내용이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와는 달리 나의 군 생활 전체에 아내가 있어 어머니에 대한 마음이 상대적으로 작아졌던 것같다. 특박을 나와도 그녀가 더 많이 보고 싶었고 실제로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어머니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많이 엄마를 도왔고 엄마 편에 섰던 나이다. 그랬던 아들의 부재는 엄마에게도 컸겠으나 나는 이를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어제는 시골 부모님 얘기를 하던 중에 아이가 문득 내게 물었다. 

"아빠도 할머니가 보고 싶어?"  ...  "가끔 그렇지" 답은 했지만 나는 잠시 당황했다. 사는 게 바쁘고 멀리 계셔서 그다지 생각하거나 느끼지 못하고 살고 있기 때문이리라. 오늘 아이의 질문을 받았다면 답변이 달라졌을 것 같다. 


"평소에 느끼지 못하고 살아도 오늘처럼 꿈에서라도 뵌 날은 할머니가 참 많이 보고 싶단다." 



아내의 단호한 편지 속 명령을 나는 아직도 이행하지 않았다. 


26년 만에 하명을 다시 확인한 새벽, 

이제야 내 마음속에 엄마의 사진을 끼워 넣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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