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옛날이여

by 초동급부
삼철에게...

오늘... 신촌을 돌아다녔어. 너와의 기억 땜에 좋지만은 않더라.
언제쯤 너와 함께 다시 그곳을 갈 수 있을지... 이번에 나오지 못한다면 정말 너를 다시 만날 시간이 오긴 올까?

회사 언니들이랑 신촌에서 밥먹구 놀다가 집에 갔어. 항상 버스정류장에 서 있던 네 모습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버스 타서는 네 모습을 찾게 되더라. 너 내가 버스 타고 갈 때까지 그 자리 떠나지 않았었지. 오늘따라 네가 더 보고 싶고 생각나고 그랬어.

삼철아! 많이 보구 싶다.
그래두 이젠 너 보고 싶으면 사진이라두 있어서 다행이야. 그전엔 네 편지 읽어보구 또 읽어보는 게 전부였는데 이젠 매일 사진 속의 너와 얘기하고 인사하구 그렇게 지내. 너두 오늘 하루를 잘 보냈는지. 힘든 일은 없었는지 피곤하지는 않은지. 밥은 많이 먹는 건지... 이런저런 얘기들 말이야... 그러고 보니 정말 궁금한 게 많다.

너 그게 걱정된다고 했지?
내가 고무신 거꾸로 신을까 봐. 바보야! 우린 친군데 고무신 거꾸로 신고 말고 할게 뭐 있어.
그런 게 아니라 내게 좋은 남자가 생긴다면 친구인 네가 축하해 줘야지. 안 그래? 남 잘되는 꼴은 못 본다던데, 너두 완전히 그 짝이다. 축하는 못 해줄 망정.

그렇지만 삼철아.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미래에 대해서 장담하는 건 아니라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 난 아니거든. 믿을 수 없고 믿지 못하겠지만 그냥 아무 말 없이 지켜봐 줘. 네 곁에 있는 나를. 가끔은 따뜻한 미소로 위로와 격려로 따끔한 충고로 그렇게 날 지켜줘... 오래도록 너와 함께이면 정말 좋겠지만 난 널 절대로 구속하지 않는다.
왜냐? 무조건 친구니깐.

1999. 1. 14.

P.S. 삼철아! 때론 친구이고 싶고 또 때론 애인이고 싶은
오락가락하는 내 마음을 네가 이해해 줘야겠어.
무슨 말인지 알지?


신촌, 아내와의 추억이 많다.

나의 집 근처이고 서강대교만 넘으면 그녀를 볼 수 있었기에, 입대 전에도 특박을 나와서도 우리가 함께 있었던 장소이다. 신촌, 홍대 참 많이 갔었다. 지금 같이하지 못하는 사람과의 추억이 많은 장소에 홀로 가게 된다면, 나도 그녀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농담 반 진담 반이었지만, 고무신 얘기는 자주 했었다.

그녀의 답변은 언제나 지금의 편지와 유사했던 것 같다. 일관성 있다. 스스로도 인정하는 것처럼 때론 친구이고 싶고 때론 애인이고 싶은 오락가락 그녀의 마음...


그녀가 왜 그래야 했는지, 어떤 아픔이 있었는지 지금은 다 이해했고 그 아픔까지도 사랑한다. 어? 조정현의 '그 아픔까지 사랑한 거야'라는 노래가 떠 오른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친구와 애인을 넘나들며 적절히 대응하는 이 스텐스... 아내와 함께한 시간이 훨씬 더 길어진 지금 대단히 익숙하다.

실용주의... 그렇다. 내 아내는 실용주의자이다.


나에 대한 바람을 적은 말이긴 하나 편지 속의 그녀의 말이 너무도 소중하게 다가온다.

지금의 아내에게 내가 꼭 하고 싶은 말이기 때문인 듯하다. 함께 한 시간이 길다고 같이 산 시간이 오래라고 해도 내 언동보다 앞선 전광석화의 질책만 하지 말고


'가끔은 따뜻한 미소로 위로와 격려로 따끔한 충고로 그렇게 날 지켜(봐) 줘...'


이 대목에서 또 노래 한 구절이 떠오른다.

김장훈의 '나와 같다면'

'그대여, 나와 같다면 내 마음과 똑 같다면'

'그냥 나에게 오면 돼. 널 위해 비워둔 내맘 그 자리로...'



난 이렇게 부르고 싶다.


그대여, 네가 맞다면 네 마음도 또 맞다면

그냥 나에게 하면 돼. 날 위해 편지에 썼던 말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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