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

by 초동급부

삼철이에게...

집에서 쉬는 날은 시간이 금세 흘러 버려. 참 안타까워.
아까 네 전화받은 때가 4시 30분쯤 되었었지? 근데 벌써 12시가 후딱 넘어서 어느새 일요일이야. 아까 네 전화받기 전에 실은 잘려고 누워 있었어. 근데 너랑 통화하고 나니까 잠이 싹 달아나는 거 있지. 이런저런 생각에 잠도 못 이루고 근 1시간을 그냥 누워만 있었어.

그래 그 생각하고 있었다. 네가 오늘 나왔더라면 뭐 하고 있었을까 하고. 항상 똑같겠지, 우린.
밥먹구 차마시구 얘기하구... 그러고 보니까 우린 만나서 별루 할 일도 없고 한일도 없네. 너 옛날(?) 그전에 다른 여자들 만날 때는 뭐 했어? 그때도 이렇게 재미없게 보냈어? 나는 재미없진 않은데, 아니지 재미없는 게 아니라 그냥 좋은데, 너는 지루하고 따분하지? 그래두 반은 네 탓도 있는 거다. 어디 갈 거냐고 물으면 맨날 생각해 본다구 하구선 결국은 내가 가자는 대로 가잖아. 그러니까 재미없어도 할 말 없는 거야. 넌. 그치?

근데 오늘 나왔더라면 정말 좋았을 텐데... 그래도 다음 주에 나올 수 있는 게 못 나오는 것보다 좋긴 한데... 근데 말야. 아까도 얘기했지만. 좀 바쁘거든 회사가. 꾀부리지 말고 일했어야 했는데 자꾸 미루다 보니까 일이 자꾸 늦어져서 말야. 노력은 해 볼게. 만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널 볼 수 있는 시간이 짧아지잖아. 그게 걱정이야. 그래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야근하고 토요일은 가뿐한 마음으로 널 만날려구 생각하구 있는데 그게 말처럼 쉬울지 모르겠어. 혹시... 아냐 아무것두.
암튼, 내가 좀 늦는다고 삐치거나 그러면 안돼? 그럴 일도 없겠지만...

근데 난 죽었다. 월요일부터 야근하려면. 밤길도 무서운데... 잉~.
나 어쩌지? 너 또 나 놀릴 거지? 그러게 졸지 말고 일하랬더니 맨날 졸구만 있으니깐 일을 못 한 거라고 그런 말만 해봐라. 콱. 그러면 너 안 만나... 장난이야.
요즘은 졸지 않구 열심히 일해 워낙 일이 많아서 그렇지. 암튼 혹시 나 못 보더라두 재미있게 잘 놀다 들어가. 일요일은 너 아버지 생신이고 식구들 모이고 그러면 나오기 힘들 거 아냐. 월요일은 나는 출근하고 너는 복귀하고... 모르겠다. 확실한 것두 아닌데 자꾸 그냥 걱정이 돼서 말야. 나는 못 보더라도 나오면 좋은 거니깐. 근데 이번에 나오면 이젠 정말 5월이나 되어야 볼 수 있겠네.

어제 우리 회식했어. 금요일 날... 그래두 이번엔 저번만큼 깜찍이를 외쳐대지 않아서 다행히 술은 피할 수 있었어. 이번엔 신입사원 환영회했거든. 남자직원 1명과 여직원 1명, 모두들 능력 있고 똑똑한 사람들이더라.

간단하게 저녁먹구 나이트를 갔어. 마포 가든호텔 나이트 갔는데 완전히 깼다는 거 아냐. 왜 DJ들이 생일 축하 해주고 그러잖아. 근데 처음엔 35번째 생일을 축한다더니, 두 번째 39번째래. 정말 아줌마 아저씨들 밖에 없었어. 얼마 만에 가본 나이트인데... 그래도 나이트 가서 부킹 한 적 한 번도 없긴 하지만, 물은 좋아야 하는 거 아냐? 그치? 성진우도 나오고 또 개그맨 장용도 나오고. 그냥 그런대로...

근데 춤추면서 내 머리를 잡아당기는 바람에 머릿속이 쑤셔.
파마머리라고 이 사람이 잡아당기고 저 사람이 잡아당기고, 나중엔 피해서 구석으로 숨고 그랬어. 월요일 날 가서 누군지 걸리기만 해 봐라. 가만 안 둘 거야.

날씨가 많이 풀어졌대. 거기도 그랬으면 좋겠다.
항상 깨끗이 씻고, 밥 많이 먹어야지만 건강할 수 있는 거야.

1999. 1. 16.

P. S. 글씨 알아보기 힘들지?


나이트, 나는 대학원 때 처음 이곳을 가 보았다.

선배와 후배 나까지 셋이 룸에 있었고 웨이터들에게 손목을 붙잡힌 여성들이 연신 들어왔다.

선배는 내게 예쁠 경우에만 양주를 따라 줘야 한다며 입장할 때마다 신호를 보냈다. 그것을 가득가득 채워 혼나기도 했다. 들어오는 그녀들 중 다수가 내게 키를 물었는데 심지어 일어서 보라는 그녀들도 있었다. 나는 절대로 일어서지 않았다. 서는 순간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다른 두 사람에게 키를 물어보는 여인은 없었다. 그들은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나와 키가 비슷하거나 작음에 불구하고 매번 자동 기립으로 환대했다. 결국 물거품으로 돌아가고야 말았다.


이때 외에 이 깜깜한 장소에 간 기억은 없다.

DJ가 생일을 축하해 주고 그러는지, YS가 칼국수를 먹고 그러는지 난 모른다.

허나, 요것은 안다. 나이트에서 부킹 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주장을 굳이 적은 것은 내용상으로는 물론이고 문 문맥상으로도 사족이라는 사실 말이다.

또한, 이 편지를 받았을 때는 몰랐더라도 단 한 번의 경험만으로도 알 수 있다.


이곳은 적어도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이라면, 부킹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구조의 장소라는 것을...



요 요 빠마머리, 오늘 좀 캐물어야겠다.

머릿속이 좀 쑤실 것이다.


걸리기만 해 봐라. 가만 안 둘 거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