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마머리

by 초동급부

삼철에게.

오늘이 대한이래.
그래서 그런지 요 며칠 안 추운가 싶더니 오늘은 -6도였어. 하지만 그렇게 추운 줄 모르겠던데.... 아마 바람이 많이 불지 않아서 그랬나 봐. 안 그랬으면 꽤나 추울 텐데 말야. 오늘이 벌써 수요일이고 이번 주 토요일이면 네가 나오는 날인데... 안 나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어. 그럴 수도 있는 거잖아. 50:50이라며. 게다가 네가 확실하게 대답해 준 것도 아니고. 걸핏하면 말끝마다 안 나온다고 했으니까. 모르지, 나올 수 있는데 정말 안 나오는 건지 아님 나와서두 연락 안 하구 그냥 들어갈 수도 있는 거고.

가뿐한 마음으로 널 만나고 싶어서 야근도 하고 오늘은 일거리를 아예 집으로 가져왔어.
회사에서 야근할까 하다가 생각해 보니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거든. 근데 자꾸 마음만 조급해져서 탈이야. 졸립기두 하구. 눈이 토끼눈이 된 거 같애.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일해 본 적 별루 없었던 거 같은데...

내가 그랬잖아. 나 파마했다고 근데 내가 정말 특이하긴 한가 봐.
우리 자주 가는 슈퍼(회사에서)가 있는데 거기 주인아줌마가 생전 아는 척 잘 안 하는데 며칠 전 나를 보더니 머리가 참 특이하다면서 자기가 내 나이만 할 때에도 이런 머리가 유행이었다나. 그때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까지 윤시내가 이런 머리를 했다나. 어떻게 내 머리를 윤시내랑 비교하다니. 또 한 사람은 머리 좀 만져보자고 하질 않나. 우리 건물 수위 아저씨는 대놓고 물어본다. 내 머리 가발이냐구 어디 한번 만져보자구... 2달은 버티려고 그랬는데 자꾸들 그러면 이쁘다는 얘긴지 이상하다는 얘긴지 알 수가 없어서 고민만 되는데...
어쩌지? 네 생각엔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거 같애?
아냐, 아냐 그래도 1달은 버텨야 되니까 2월에 가서 다시 생각해 봐야지.

아, 피곤해. 편지 쓰다가 방금 엎드렸다 일어났는데 10분이 지나있네. 이런... 깜빡 잠들었었나 봐.
삼철아! 내 편지 재미없지... 솔직히 말해 봐.

1999. 1. 20.

P. S. 할말이 있었는데 생각 안 남.
다음에 얘기하지 뭐.


그녀의 빠마머리... 난 아직 기억하고 있다.

아주 작은 크기로 빠끌빠글하게 모든 머리를 파마한 것이었다. 마치 흑인들의 그것처럼 말이다.

이때 우리 집에 어떤 행사가 있었고 독특한 헤어스타일의 그녀도 참석했었기에 또렷하게 생각난다.

"머리가 우째 저런다냐" 가족 중 누군가 말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머리카락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당시 내 눈에는 나름 귀여웠다.


주변사람들이 자꾸 놀리고 나이트에서 이 사람 저 사람이 당겨보고 오랜만에 윤시내가 등장하질 않나... 만져보자고 하는 사람도 있고 가발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는데 이 고민을 해야 하는 건지... 당연히 이상하다는 얘기지...

어쨌든 나는, 네 편지는 참 재미있다. 가끔 이렇게 신박한 소식을 전해 주니 재미있을 수밖에... 나의 군생활에 유일한 활력소가 아닐 수 없었다.


얼마 전 편지들을 정리하면서 이 강렬했던 빠마머리가 담겨있는 스티커 사진을 챙겨 놓았다. 그런데 오늘 아무리 봐도 찾을 수가 없다. 백문이 불여일견이건만... 그래서 그나마 유사한 사진을 표지에 슬쩍 올린다.


요즘 주로 아내의 흑역사가 담긴 물건들이 자꾸 사라지는 것 같다.

요 빠마머리 수상해~ 수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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