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

by 초동급부
삼철에게...

무작정 어디론가 걷고 싶은 날이 있다면 바로 오늘 같은 날이야.
한 시간도 좋고 두 시간도 좋으니 아무 말 없이 옆에서 같이 걸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바라보는 곳을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오늘 같은 날은 정말 그럴 수 있을 거 같은데...

너 눈치챘는지 모르지만 난 운동 같은 거 싫어하거든. 걷는 것도 싫어하고 근데 참 이상하다. 오늘은 왜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아마 같이 걸어줄 누군가가 없기 때문 일 거야. 그래서 더 간절한지도 모르겠고. 사는 게 매일 똑같을 순 없는 건데, 그래서 가끔은 즐거운 날도 있어야 하는 건데 내 삶엔 그런 날이 없다.(이건 뭐랄까... 그래 내 생각이긴 하지만) 웃으며 살아도, 즐겁고 행복하게만 살아도 결코 길지 않은 세월이라는데 인생에 있어 과연 그런 날은 반도 채 안되지 않니? 너야 지금은 군에 있으니깐 당연히 짜증 나고 힘든 나날이겠지만 아무래도 제대하고 나면 많이 달라지겠다. 모든 것이 좋아 보이고 행복하고 즐겁고, 그래 넌 그런 날이라도 있구나. 제대하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낙... 그래 2년 후면 제대네.

근데 난 그런 희망도 없다. 젊은애가 참 궁상맞지?
즐겁다고 행복하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것두 역시 생각뿐인 걸, 마음속 저 깊은 곳엔 남모를 감정이 나를 뒤 흔들고 있는데.. 아니다 자꾸 그러면 안 되겠다. 생각만이라도 좋게 갖으려고 노력해야지. 희망이 없으면 만들면 되는 거고. 알면서 인생을 참 힘들게 살지 않니? 바보...

너 전화하면 내가 별 반가운 내색을 하지 않는다고 그러는데 너 그게 아닌 거 알면서 자꾸 그럴 거야?
역시 왜 남자가 여자보다 정신연령이 낮다고들 하는지 예전에도 느꼈지만 새삼 또 느꼈어. 3~4살 연상인 사람들도 그렇던데 한 살 어린 사람은 말하면 입만 아프겠지? 너 자꾸 그러면 나한테 누나라고 부르라고 할 거야. 꼭 한 살 어린 거 티 내고 있어. 보채고, 삐지고, 토라지고. 누가 네 애인 할지 걱정이다. 내가 보기엔 네가 마음이 넓어서 여자랑 안 싸우는 게 아니라 이제껏 마음이 넓은 여자를 만나서 그런 거 같은데.. 난 예전에 눈치챘다.

걸핏하면 안 나온다고 반 협박을 하지 않나. 너 안 나오면 누가 무서워하고 슬퍼할 줄 알고?
흥. 아냐. 너 나한테 연락 잘 안 하고 그래도 나 안 슬프니까 걱정 말고 그러고 싶음 그래. 알았지?
가끔 나와서 연락 안 해도 나 안 빼쳐. 정말이야! 난 마음이 너얿거든.
대신 꼭 이쁘고 맘씨 좋은 여자 만나러 가야 돼?
그러지 말래도 그러겠지만. 남잔 다 똑같애.
너두 내가 보기엔 별 수 없다. 잘 생각해 봐.

1999. 1. 21.


오늘은 무슨일 인거니, 울었던 얼굴 같은걸

그가 너의 마음을 아프게 했니, 나에겐 세상 젤 소중한 너인데...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가 있다. 지고지순하게 한 여자를 짝사랑하는 남자...

하지만 그녀에게는 이미 다른 남자가 있다.


가사를 찬찬히 보면 정말 가슴 찢어진다.


자판기 커피를 내밀어

그 속에 감춰온 내 맘을 담아

고마워 오빤 너무 좋은 사람이야

그 한마디에 난 웃을 뿐

혹시 넌 기억하고 있을까

내 친구 학교 앞에 놀러 왔던 날

우리들 연인 같다 장난쳤을 때

넌 웃었고 난 밤 지새웠지


연인 같다는 친구의 농담을 그녀는 그저 웃어넘기지만 그 한마디에 밤을 지새웠던, 절대로 연인이 될 수 없는 좋은 사람...


함께 걸어 줄 누군가가 필요한 은경의 외로움과 슬픔...

오늘 무슨 일이 있었나? 하는 의문이 들자 떠오른 노래지만 난 노랫말 속 좋은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그'에 가까운 것 같다.

이런 가사도 있다. 널 울리는 사람과 위로 밖에 못하는 나


정신연령이 낮아서 보채고, 삐지고, 토라지는 것도 모자라 나오지 않겠다고 협박까지 하고...


반면에, 군대에 있는 남친이 외출해 연락하지 않아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고 오히려 꼭 이쁘고 맘씨 좋은 여자 만나러 가야 한다는 마음이 너얿은 여자친구! 아니 누나?


27년이 지난 오늘에야 깨달았다.

그녀가 바로 내게 '좋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럼 끝까지 좋은 사람 했어야 하지 않은가?

제 몫을 저버린지 법적으로만 13년이다.



늘 너의 뒤에서, 늘 널 바라보는 그게 내가 가진 몫인 것만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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