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삼남매

by 초동급부

삼철에게.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음성에 남겨진 네 목소리가 기운두 하나두 없구 왠지 편하게 느껴지질 않아서 말야. 안 좋은 일 있었니? 그렇더라도 힘내. 체념하고 살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있겠지 뭐. 아까 그때 말야. 네가 전화 했을 때 나 컴퓨터 앞에 앉아서 숫자랑 씨름하느라 정신이 하나두 없었거든. 숫자 보랴 그거 보고 입력하랴 눈이 토끼눈이 돼서 벌게지고 어깨도 아프고 아침부터 완전히 막노동판 뛰다 온 사람마냥 여기저기 쑤시고 난리도 아니었어. 왜 하필 그 시간에 전화해서 그랬어. 조금만 5분만 늦게 했더라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뭐.

지금도 어깨가 아프다.
혼자 주무르자니 그렇고 그렇다고 엄마한테 좀 해달라려니 것도 그렇고. 그냥 이렇게 살아야지 뭐. 너라도 곁에 있었더라면 부려먹었을 텐데 말야. 그때 언제지? 네가 나 안마해준 적 있었잖아. 그때 정말 시원하던데. 근데 안마도 자주 하면 습관이 되어서 시원한 줄 모른대. 차라리 가끔 한 번씩 하는 게 낫지. 아이고 어깨야~

돼지 인형 생각나니?
네가 나 준 거 있잖아. 두 마리 꼭 붙여놔야 "아이 러뷰" 하고 소리 나는 인형. 네가 줄 땐 잘 몰랐는데 그 소리가 남자 돼지한테서만 나더라. 여러 번 해 봤는데 역시 여자 돼지(돼지라고 불러서 미안, 근데 마땅한 호칭이 없음)는 한 마디도 안 하더라구. 그 돼지 내가 네 조카한테 준다고 너 눈 엄청 흘겼었지. 근데 그거 산 거야? 설마 삼철이가 날 위해서 그런 거 샀겠어? 집에 굴러다니던 거 준 거지? 다 알어. 하지만 그런 거라도 상관없어 난. 마음이 중요한 거지. 근데 가만, 그거 버리자니 아깝고 누가 해 준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너 그거 나 준 거지. 너 이제 보니까 순... 에이 나뻤다. 이쯤에서 그만 놀려야 겠다. 삼철이 또 삐칠라. 근데 그거 진짜 버리기 아까워서 준 거야?

내일은 입춘인데 이렇게 추워서 봄이 올려다 다시 가겠다.
감기가 오려나 봐. 그래도 올 겨울은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잘 넘겼는데... 언젠가 한 번은 며칠씩 앓아 누웠었는데. 원래 안 아프던 사람들이 한번 아프면 되게 심하게 앓잖아. 그래두 난 끄떡없어.
너두 감기 조심해. 겨울 다 지나서 걸리면 억울하잖아.

오늘도 좋은 꿈 꾸고. 우리 꿈속에서 보자.
근데 너 내 꿈 꾸기나 하는 거야? 하긴 피곤할 텐데 꿈꿀 겨를이 어딨어.
눈 감고 일어나면 아침일 텐데...
그래도 은경인 네 꿈꾼다.

1999. 2. 3.


"아이 러뷰" 또는 "딸링 아이 러뷰"


짝과 만나면 이런 소리가 나는 인형이 한때 유행했었다. 돼지도 있었고 곰도 있었고 토끼도 있었던 것 같다. 편지를 읽고 나니 생각이 나는데, 내가 그녀에게 준 그것이 중고였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조카한테 줘 버리나... 맘이 중요하다면서...


서로 뽀뽀를 하게 만드는 돼지 인형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키자 현실 돼지 두 마리가 떠 오른다.


모 아니면 도인 성격의 나는 식생활도 비슷하다. 먹으면 왕창 먹고 안 먹을 때는 또 먹지 않는다. 식탐이 많지는 않다. 전반적으로 잘 먹고 많이 먹는다. 물론 우리 집에서 먹는 양이 가장 많기는 하다. 반면에 아내는 조금씩 자주 먹는다. 많이 먹지는 못해도 식탐이 대단하고 손도 크다. 수시로 배가 고프다며 이걸 먹고 저걸 먹자고 한다. 혼자 먹는 건 맛이 없다며 항상 "투게더"를 외친다. 내가 돼지라고 하자 예지(예쁜 돼지)로 불러달란다.


그런데...

우리 두 사람의 식습관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이 쭈니다.

얘는 우선 수시로 배가 고프다. 자주 먹을 뿐 아니라 많이 먹는다. 당연히 식탐이 풍부할 뿐 아니라 음식에 대한 관심도 많다. 저녁을 먹으면 내일 아침 메뉴가 무엇인지를 엄마에게 묻고 아침이 되면 그날 저녁메뉴를 묻는다. 주말이 다가오면 어떤 특별식을 준비하고 있는지가 또 궁금하다. 자기 전에는 엄마, 아빠의 점심 메뉴의 초성을 알려주면 맞추겠다고 한다. 엄마는 너무도 성실한 음식 탐구생활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며 초성퀴즈를 중단시켰다. 요즘에는 직접 메뉴를 확인한다. 그러고 나서는 "우아 맛있었겠다. 나도 먹고 싶다!" 단짠을 좋아하고 물질의 상태도 전혀 가리지 않는다. 고체, 액체, 기체? 아니 겔.

내가 다니는 회사는 수십 종의 음료가 항상 냉장고에 비치되어 있어 직원들이 얼마든지 마실 수 있다. 여름 한철에는 아이스크림도 제공한다. 과자나 간식 등도 넉넉한 편이다. 초등학교 5학년인 이 꿈나무는 나중에 아빠가 다니는 회사에 취직할 거란다. -_-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냉장고를 부탁해'이며, 축구선수에서 셰프로 꿈도 바뀌었다.

환상의 돼지 세 가족의 핵심 멤버이다.


쭈니는 웬만한 딸보다 딸 같은 아들이다. 가끔 엄마 냄새가 좋다며 엄마를 껴안고 연신 뽀뽀세례를 퍼붓곤 한다. 최근 부쩍 체구가 커진 아이가 이런 과도한 애정표현을 할 때마다 아내는 숨이 막힌다면 밀어내기 일쑤다. 주로 주말에 볼 수 있는 아주 행복한(?) 모습이다.


일요일인 오늘 이런 광경이 재현된다면 나는 한쌍의 돼지 인형을 생각할 것이다.

"마미 알러뷰~ 마미 알러뷰~"


꿀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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