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아 놓은 물고기

by 초동급부
삼철에게.

겨울이 다시 오려나 왜 이렇게 추운 거니?
물론 너 있는 그곳에 비하면 여긴 추운 것도 아니겠지... 그래도 너무 추워. 언젠가 -13도가 가장 추웠던 거 같은데 오늘은 그 정도까지 기온이 내려가지도 않았는데 추위는 그때보다 더한 거 같았어. 정말이지 이 겨울이 얼른 가야 내가 살지. 안 그러면 난 엄살떨다가 죽을 거다. 아마.

지금 시간이 꽤 늦었다. 오늘 너한테 보낼 초콜릿 정리하구 포장하구 그러느라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얼른 해서 부쳐야지 제 날짜에 받아 보지.) 그렇게 정성 들여 보기는 첨인데... 맘에 들지 모르겠어. 내 딴엔 한다고 했는데 아마 그저 그럴 거야. 나두 알어. 정성이야 마음으로 들였으니깐... 헤헤.
그래두 내가 그거 싸느라고 허리 빠지는 줄 알았어. 다른 건 그냥 대충 했지만, 은박에 싸서 다시 오팔 포장지로 싼 건 시간도 공도 많이 들였다.(그거 ABC 초콜릿 같은 건데 안에 땅콩 들어 있어. 맛있으니깐 많이 먹어.) 포장지 벗겨서 은박에 싸고 다시 또 포장하구, 다른 건 다 괜찮았는데 조금이라도 뜸 들이면 초콜릿 다 녹아버리잖아. 싸면서 몇 개 녹는 통에 그거 먹느라 나 살만 쪘을 거야. 아마.

삼철아! 나 치사하지?
그깐 초콜릿 한 번 보내면서 유세 꽤나 떨고 말야. 네 말대로 나이는 어디로 먹었는지 모르겠다.( --> 맨날 하는 얘기야. 그치?) 암튼, 난 내 나름대로 정성껏 한 거니깐 흉보지 마. 알았지? 네가 아니 너한테 해 준(네가 받았던) 것들에 비해 보잘것없고 하찮겠지? 담에, 이다음에 너 제대하고 나면 그땐 정말 이쁘게 해 줄게. 근데 주는 것도 좋지만 맘이 더 중요한 거 아니야? 그렇지? 그렇게 생각하면 될 거구.

이번 주말까지 춥다는데 내일두 회사 가기 싫어서 어쩌지?
어제두 잠을 설치는 바람에 몇 시간 못 자서 그런지 정신없어서 혼났는데. 낼두 큰일이다. 벌써 새벽 2시가 후딱 넘었는데,,, 회사 가서 졸면 다 니 책임이야. 너 땜에 이렇게 된 거 잖어...

날씨 많이 추워진다는데 감기 조심하구... 몸 건강하구.
그래 우리 언제 볼는지 모르지만 그때까지 군 생활 잘하구.
밤이 늦었다. 좋은 꿈 꾸고 항상 좋은 일만 있어라.
그럼 또 편지 쓸께. 잘 지내.


1999. 2. 2.


부지런하기도 하여라.

2월이 되자마자 내게 보내 줄 밸런타인데이 초콜릿을 준비하느라 몹시 분주했던 모양이다.


난 받는 것에 익숙하지 못하다.

자식 다섯을 키우신 아버지는 힐난과 질타 외에 다른 훈육방법을 모르셨다. 당신의 기분이 만사의 판단 기준이셨기에 5남매는 항상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모든 금전관리를 직접 하셨기에 손 벌리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난 학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 외에 여느 아이들처럼 아버지에게 무엇을 사달라고 졸라본 기억이 단 한 번도 없다. 아니, 학비를 받는 것조차도 무척이나 힘들었다.

그렇게 성장해 왔기에 다른 이에게 무언가를 받는다는 것이 어색했다. 사소한 것이라도 받으면 반드시 응당의 보답을 해야 했고 그렇지 못하면 몹시 불편했다. 그런 내가 일방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인 셈이다.


반면, 쌀이나 생수를 배달시키면 택배기사에게 미안하다며 반드시 식구 중 한 사람으로 하여금 물품을 직접 수령하게 하고 인사와 함께 1~2만 원이라도 더 주지 않으면 마음이 너무도 불편하신 부모님 슬하에서 자란 아내이다. 사위 생일에 잊지 않고 케이크 값도 챙겨 주신다


우리 두 사람은 이렇게 다르게 자라왔다. 아내는 챙기고 나누는 것을 참 좋아한다.

치사하지 않고 흉볼 것도 없으며 얼마든지 유세해도 된다. 그녀의 엄살 그리고 걱정과 달리 내게는 보잘것없지 않고 하찮지 않은 가장 소중하고 행복한 최고의 선물이었다.

무엇보다 이런 아내를 만나 나 또한 주는 기쁨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담에, 이다음에 너 제대하고 나면 그땐 정말 이쁘게 해 줄게.'라는 문서화된 그녀의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제대한 이후에는 좀 챙기다가 결혼 초기까지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다가 결혼 10년이 넘은 지금은 아예 안 준다.


잡아 놓은 물고기한테는 먹이 안주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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